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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맘 Jul 31. 2021

절대 스스로 멍석 깔지 않는 남편

아빠의 역할

“감은 감인데 먹지 못하는 감은~?”

“장난감”     


남편과 딸아이가 식탁에서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다. 딸아이는 아빠에게 계속 또 문제를 내라고 성화다.      


“세균 중에서 대장인 세균은?

“대장균”



남편은 딸아이가 만든 수수께끼 책을 보며 딸에게 문제를 내고 있었다. 남편은 딸아이가 만든 문제가 어이없기도 하고 웃겼는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딸아이 또한 자신이 만든 수수께끼 책으로 아빠가 문제를 내주니 기분이 좋은지 깔깔거리며 답을 맞혀 나간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에 남편은 그만두지도 못하고 계속 문제를 내달라는 딸아이의 재촉에 다음 문제를 낸다.      


참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다.      



    

남편은 자신이 먼저 자처해서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는 타입의 아빠가 아니다. 신혼 때도 남편은 혼자 있는 것을 외로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게임을 하지 않는 남편은 그때그때 관심 있어하는 것들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겁게 채워나갔다. 그렇다고 남편이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주체적으로 만남을 주선하기보다 누군가가 만나자고 하면 기꺼이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남편은 종종 나의 직장동료들과의 합석 자리도 불편해하지 않고 참석해 즐겼다. 한마디로 남편은 누군가 멍석을 깔아 놓으면 잘 노는 타입이었다. 다만 스스로 절대 멍석은 깔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남편의 이런 성향은 결혼을 준비할 때도 똑같이 나타났었다. 예식장 선택부터 신혼여행지 선택까지 남편은 무엇하나 주도적으로 제안하는 것 없이 내가 하자고 하는 것들을 이견 없이 따라 주었다. 신혼살림을 준비할 때도 가전제품 하나쯤은 욕심부릴 만한데 남편은 뭐하나 욕심부리는 것이 없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몇 번은 싸운다는데 남편과 나에겐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없었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서도 한결같았다. 평일엔 둘 다 직장생활로 아이들과 밖에서 놀아줄 수 없기에 우리 부부는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갈지 남편은 의견을 내지 않았다. 주로 주말 계획은 내가 세워야 했고 남편은 싫은 내색 없이 어디든 우리 가족을 데려다주었다.   

   

남편은 한결같았다. 내가 말하기 전에 남편은 스스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놀아주라고 하면 싫은 내색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다. 어쩌다 남편이 일이 있어 주말에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가는 날이면 아이들이 밧줄 타기 등 나는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고 생각해 시도조차 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역시 남편과 아이들을 엮어 내보내길 잘했다며, 몸놀이는 아빠와 거침없이 해야 한다며 자족하기도 한다.       




뭐든 단점보다 장점을 보는 것을 택해야 마음이 편하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부름에 하던 것을 접고 응해주는 것 또한 남편의 장점이다. 아이들과 놀 것들을 스스로 찾아 해 주면 참 좋으련만 해달라고 하는 것에 싫은 내색하지 않고 하는 남편의 장점을 보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걸 이젠 안다.    

  

솔직히 난 아직도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것이 싫을 때가 있다. 어쩔 땐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어도 기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아이들의 부름에 등 돌리고 무시하며 설거지를 하는 날도 있다. 내가 언제부터 설거지를 이리도 좋아했었던지 모르겠다.  

    

수수께끼를 내달라는 딸아이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보던 책을 덮고 아이의 요청에 응해주는 남편의 모습에 아빠의 역할이 뭐 별거 있나 싶다.      


제 아버지는 제가 방에 들어가면 읽던 책을 덮으셨어요.
그런 태도가 최고의 옷이나 학원보다 소중해요.


최성애 박사님이 몇 년 전 인터뷰 한 내용이 생각났다. 우리 딸에게도 아빠의 사랑이 전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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