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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 농장에서 결혼한 도시 여자

오이와 시작된 인생의 반전 

<비혼을 선언하다>

마흔이 되던 해, 비혼을 선언했다. 그런데 이천의 오이농장에 효도 한번 하러 갔던 것이 내 결혼생활로 이어질 줄이야. 과연 내가 이 시골에서 살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지만, 회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곳이 여기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생겼다.

콜센터에서의 4년은 늘 출근과 퇴근 후 술잔에 기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몸이 망가지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떠나고 싶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37세에 도전했던 카페 사업은 접게 되었고, 다시 콜 센터에서 일하며 단조로운 일상이 계속될 뿐이었다.


<그를 만나다>

2016년 5월, 엄마는 이천에 아는 분이 있는데 가보자며 나를 다짜고짜 끌고 갔다. 사실, 나는 비혼을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효도 한번 하자는 마음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난곳, 오이 농장이었다. 다행히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오이가 이렇게 크고 있다니 신기했다. 키가 큰, 듬직한 농촌 청년을 보며 “이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을까?"라는 생각이 휙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우리는 9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도 내가 결혼할 것 같지는 않았는지, 어떤 사람은 금반지를 주겠다, 또 항상 바지만 입던 어떤 사람은 치마를 입겠다, 별별 약속을 다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참 웃긴 일이다. "내가 진짜 결혼을 안 할 줄 알았나?"

하긴 그동안 내가 비혼식을 한다고 하면서 떠들고 다녔으니 말이다.


<내가 어른이 되게 한 결혼>

결혼 후 나는 시어머니께 요리와 살림을 하나하나 배워갔다. 주방 일이라곤 설거지밖에 모르던 내가 쌀 씻는 방법까지 배우게 될 줄이야!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그렇게 주방에서 배우던 나는, 시어머님을 당황케 하는 사건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씨감자를 휴게소에서 파는 버터구이 감자처럼 만들어버린 일, 무를 죄다 뽑아놓은 일 등등.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시부모님은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셨고, 우리는 시부모님과 함께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왜 사람들은 시부모님과 같이 사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걸까? 모두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인데.

난 많은 것들을 어머님께 배우면서 그야말로 전원생활을 즐겼다


<안 했으면 어쩔 뻔>

5년간 오이하우스를 운영하다 남편이 취업하게 되면서 우리는 분가를 했다.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씩 이천에 있는 집에 가며 여전히 그곳에서 안정을 찾곤 한다.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며, 시부모님 댁에 가서 휴식을 취하는 나날이 이어진다. 

결혼이 내 인생에 가져다준 변화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힐링을 위해 떠난 길에서 사랑과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었고, 그 안에서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인생의 계획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성장이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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