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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할 윤 Feb 06. 2021

얼어 죽어도 타임스퀘어 카운트다운

독일 교환학생 비하인드 스토리#10 뉴욕 타임스퀘어 새해 카운트다운 후기

정말 추웠지만 정말 따뜻했던 뉴욕에서의 환상적인 카운트다운


"Happy New Year!!" 어느덧 까마득해진 2019년의 마지막 날, 나는 뉴욕에서 새해를 맞았다. 미국에서 살고 계신 이모가 독일에 있는 김에 미국도 한번 놀러오라고 통크게 비행기 표를 사주셨다. 나는 이모와 함께 2주동안 미국 동부를 돌아다니다가 마지막 여행지인 뉴욕에 도착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였는데 운좋게 연말에 뉴욕에 있게 되어 타임스퀘어 새해 카운트다운을 꼭 보고 가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tv에서만 보던 세계적인 현장이 현실이 되는 마법이란, 정말 환상적이었다. 소중한 경험을 얻은 대신 감기몸살을 얻어야만 했지만.


뉴욕 타임스퀘어의 카운트다운은 볼드랍(Ball Drop)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새해가 되는 순간 공 모형이 떨어지면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매년 백 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볼드랍을 보기 위해 타임스퀘어에 모인다. 그렇기 때문에 자리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카운트다운 전광판과 가까운 명당자리에 가려면 이른 아침부터는 줄을 서야한다. 사실 이보다 더 빡센 점은 줄을 서있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다시 맨 뒤 자리로 가야하기 때문에 자리를 잡은 순간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 이 얼마나 가혹한 규칙인가.. 그래서 명당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그날만큼은 거의 단식을 하거나, 진짜 부득이한 경우 기저귀를 찬다고 한다. 그 모든걸 감수할만큼 볼드랍이 환상적인걸까? 




나는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뉴욕을 구경하다가 저녁쯤에 줄을 서는 걸로 결정했다. 볼드랍도 물론 평생 해볼까말까 한 경험이지만 하루종일 화장실도 못가고 서있는건 절대 불가였다. 그리고 처음 와 본 뉴욕인데 아무 구경도 못해보고 가기는 아까웠다. 그래서 낮동안은 주요 명소를 돌아다녔다. 생각보다 훨씬 넓은 뉴욕에서 반나절은 제대로 구경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전망대라도 제대로 보고 가야지 했는데 연말이라 사람들이 줄을 너무 많이 서서 대기하다가 카운트다운까지 못 볼 지경이었다. 벌써 해가 지고, 나처럼 늦참하는 사람들이 점점 모이길래 후다닥 줄을 섰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모이기 때문에 테러가 날 위험이 있어 뉴욕 경찰이 총출동하여 삼엄하게 감시를 한다. 카운트다운 구역에 들어갈 때도 소지품 검사를 해야한다. 카운트다운이 펼쳐지는 메인 거리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고, 나는 메인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겨우 입장을 했다. 조금 멀긴 한데 그래도 시계와 폭죽터지는 것 정도는 볼 수 있는 거리라 만족했다. 오후 7시쯤 입장한 나는 영하의 추위 속에서 약 5시간의 기다림을 시작했다. 기모 스타킹 2개와 쫄티 2개를 껴입고 롱패딩에 핫팩까지 붙였지만 추위는 점점 살을 파고 들어왔다. 차라리 앉아있는게 낫지만 사람들이 빼곡해서 앉을 자리도 없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 무렵, 뒤에 있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분이 말을 걸었다.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하다가 미국에 놀러온 일본인이었는데, 메인 거리에서 친구랑 줄을 서다가 화장실 때문에 내 구역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용기있는 그녀 덕분에 춥고 외로운 기다림을 버틸 수 있었다. 지금도 너무 고맙다. 계속 서있다보면 옆 사람들과 스몰 토크를 하게 되는데, 추위 속에 존버(?)하는 서로를 응원하며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출처 : Billboard


9시쯤이 되면 세계적인 톱스타들이 와서 카운트다운 기념 무대를 한다. 내 자리는 무대와는 멀어서 작은 전광판으로 겨우 볼 수 있었는데, 여기 사람들도 떼창을 꽤 잘한다는걸 느꼈다. 공연 막바지 순서가 자랑스럽게도 BTS였는데 사람들이 BTS 노래를 다 따라 부르는 걸 보면서 한국인으로써 정말 뿌듯함을 느꼈다. '여기서 공연하는 탑 스타가 우리나라 가수에요~ㅎㅎ'라고 얼굴에 써붙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공연도 보고, 정신줄도 반정도 놓고 대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12시가 다가왔다. 이순간을 놓칠 수 없기에 핸드폰 카메라를 열심히 테스트하며 전광판을 보았다. 전광판에 숫자가 줄어들수록 내 심박수는 높아졌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Ten, Nine, Eight, Seven, Six, Five, Four, Three, Two, One! Happy New Year!!!"



내 생애 가장 떨리고 감탄스러운 순간이었다. 폭죽이 터지면서 전체 거리를 핑크색으로 물들였다. 거기 있던 모든 이들이 환호를 하며 서로에게 해피뉴이어를 외쳤다.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 음악을 틀고 춤추는 사람, 애인과 찐한 포옹과 키스를 나누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30분간 일본인 친구와 그 분위기를 즐기다가 늦기 전에 호텔로 돌아가야 해서 버스를 타러 갔다. 너무 신나는데 5시간의 긴장과 추위가 몰려오면서 몸이 엄청 힘들었다. 24살의 체력이었기에 가능했던 하루였던 것 같다. 그날 나는 인생의 소중한 추억을 얻으면서, 지독한 감기 몸살도 같이 얻어왔다. 그래도 인생에 길이 남을 경험을 했다는게 정말 행복했다.



이번 연말에 타임스퀘어 카운트다운을 보니 많이 낯설었다. 물론 사람들이 모여있긴 했지만, 확연히 수가 적었고 내가 느꼈던 현장만큼 신나 보이지도 않았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값진 경험들을 많이 한게 신의 한수라고 생각하긴 한다만, 내 추억들이 역사 속으로 남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빨리 코로나가 끝나서 내가 느낀 황홀했던 연말을 다른 사람들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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