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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앵 Dec 18. 2020

살인에 탁월한 조건, 無臭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늦은 저녁을 사들고 집에 온 뒤 손만 씻고 곧장 TV 앞에 앉아 습관처럼 채널을 돌렸다. 그러다 즐겨보는 영화채널에 도착했는데 어떤 영화가 막 시작하는 중이었다. 어쩐지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느낌의 영화일 것 같다는 예감이 제목과 영상에서 드러나있음에도 나는 리모컨 작동을 멈췄다. 잠시 머물다 가는 멈춤이리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그 길로 영화를 끝까지 시청하게 되었다.


리모컨을 내려놓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파리의 악취 중에서도 악취라는 생선시장에서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가 태어나는 장면때문이다. 하수구에서 건져온 것 같은 생선들과 그 생선들을 잡느라 같이 뒹굴고 온 듯한 사람들의 땀내, 썩은 이빨, 비린내로 절어있는 머리칼과 옷의 냄새가 브라운관을 뚫고 나왔다. 들이마시는 숨에 생생한 비린내가 폐 깊숙이 찔러 비위가 상해 먹던 샌드위치를 잠시 내려놓기도 했다. 그러나 장면 속 모든 움직임에서 오히려 생명력을 느꼈던 건 왜일까.


누구에게나 체취는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인만의 체취로 존재를 드러낸다. 나는 이것을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는 인기척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루누이는 그 인기척이라는 게 없었다. 처음 가죽 공장에서 배달을 나갔던 날, 사랑과 영혼 향수보다 그를 이끌었던 노란 자두를 파는 여인의 향기. 거기서부터 이미 예견되었던 무취의 그루누이는 축축한 벽 앞에서 첫 살인을 저지른다.


그는 온전히 아름다움만 담아낼 수 있었다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성이 결여된 그의 행동 앞에 어쩔 수 없는 우연들이 겹쳐 도달한 최선의 방법은 결국 살인일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비루한 삶의 그루누이조차 본능에 충실했으며 뜻하던 대로 아름다움을 작은 병에 가두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끝자락 무렵엔 영화 내내 끌고 온 그의 본능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자신을 욕하고 비난하던 자들을 무릎 꿇게 만드는 힘, 바로 무취의 인간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천하가 발아래에 있는 순간에 그루누이의 심연은 노란 자두를 팔았던 여인에게로 돌아간다. 여기서부터는 '그에게 체취가 있었다면'이 전제로 깔린다. 그에게 체취가 있었다면 그녀는 인기척을 느꼈을 테고 어딘가 모르게 가여운 그를 안아주었을 것이며 그랬다면 지금의 살인자는 온데간데없고 평범히 여인을 사랑한 한 남자만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군중 속에서 고독으로 외로이 서있는 그를 보며 보통의 사람들처럼 사랑을 했을 그루누이를 상상해 본다. 지독히도 애잔하다. 돌이킬  없으므로. 자기  안에서 처음 죽었던  여인이 사랑과 영혼이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그루누이. 비어버린 얼굴을 하고서 생각한다. 내가  일은 이제 향기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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