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으로 전송 중
예전에 엄마가 그런 말을 한적 있어요. 넌 우리 엄마가 보내준 천사 같아. 이상하게 전 그 말이 슬프더라고요. 여기서 엄마는 할머니일 테고 제가 아는 할머니는 엄마가 중학생 때 돌아가셨으니 기일 언저리 때 말고는 할머니 얘기를 잘 안 하는 엄마도 엄마를 생각하는구나 처음 깨달았던 것 같아요. 당연한 건데 너무 늦게 알아챈 게 미안할 정도로요.
저는 정말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데 딱 하나 알고 있는 아주 짧은 일화가 있어요. 목욕탕을 가면 병으로 말라가는 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저 사람보다 내가 마르냐고 엄마에게 물으셨대요. 엄마는 이 얘기를 하기 전에 꼭 자기가 저 사람보다 뚱뚱하냐고 저에게 물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을 쳐다보고 비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저는 항상 인상을 찌푸렸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두 개의 질문 사이에 이상한 괴리를 느껴요. 분명 웃었는데 슬픈 것처럼요.
그러니까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엄마는 씩씩하고 외롭지만 강한 사람으로 잘 컸어요. 누구도 자신을 보살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 도시락을 싸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느즈막에 대학을 가고 간호사가 되었어요. 밀어줬다면 더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됐을 거라고들 얘기해요. 근데요. 엄마는 지금도 큰 사람이거든요.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아쉽겠지만 저는 현재에 만족해요. 여기서 더 커졌더라면 제가 감당 못했을 것 같아요.
세월은 참 무심히도 흘러 어느새 엄마는 할머니 나이를 훌쩍 넘겼고 저도 할머니가 엄마와 지낸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네요. 저는 예전보다는 철이 좀 들어서 엄마한테 잘하려고 해요. 정말 할머니가 보낸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어요. 천사까진 아니어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악마 정도는 될 거예요 아마.
잘할게요. 할머니가 엄마랑 보내지 못한 시간만큼 제가 더 잘할게요.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이 말이 하고 싶어서였어요. 어쩌면 할머니가 보낸 (따뜻한) 악마일지도 모르니 충실히 임무를 수행할게요. 아무튼, 엄마를 늘 지켜봐 주세요. 다치지 않게. 아프지 않게. 너무 일찍 데려가진 마시고. 저 25살이거든요.
진짜 진짜 아무튼, 할머니 거기서는 꼭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