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엘리베이터에 이게 왜!
스노어랑 Vordingborg 역에 도착한 후, 나는 무거운 자전거 케이스를 끌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스노어는 그런 나를 멈춰 세우며,
스노어 – 우리 계단으로 갈래? 네 자전거 케이스는 내가 들어줄게.
나 – 저기 엘리베이터 있는데 왜?
스노어 – 엘리베이터 상태가 좀 안 좋아.
나 – 무슨 뜻이야?
스노어 – 오줌이 있어?
나 –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오줌이 왜 있어?
스노어 – 난민들...
나 – 난민들이 뭐?
스노어 – 아니야, 그냥 내가 네 가방을 들어줄 테니 계단으로 올라가자.
나 – 아니야, 이거 무거워. 그냥 엘리베이터 타자.
엘리베이터에 오줌이 있을 리 없다 생각했다. 여긴 선진국 덴마크니까. 나의 고집으로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고 스노어는 당황했다.
그냥 스노어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엄청난 지린내가 방심하고 있던 나의 콧구멍 깊은 곳을 찔렀다. 바닥에는 끈적한 그것이 반짝이고 있었다. 스노어는 민망해했고 나는 당황하지 않으려 애썼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대화를 멈추고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 숨을 참았다.
바깥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스노어에게 물었다.
– 이게 난민들 때문이라고?
– 응
– 난민들이 덴마크에 오기 전에는 이런 일 없었어?
– 응, 없었어.
– 그러니까 난민들이 그런 거다?
– 응.
– 그런데 너 난민 정책에 찬성하지?
– 응. 아직까지는.
– 오! 너 방금 '아직까지는'이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 국가들이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었잖아.
– 응, 그랬지.
– 그런데 너도 힘들구나?
– 응, 맞아. 아, 아니! 아니야! 아직까지는 괜찮아. 우리는 더 받을 여력이 있어. 더 받아야 해.
– 엘리베이터에 오줌을 싸도?
– 사실 그것뿐만은 아니야. 많은 변화가 있었어.
사실 좀 놀랐다. 스노어는 내가 지금껏 알고 지낸 사람들 중에서 우리 할머니 다음으로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난민문제 앞에서 흔들렸다. 스노어네 집에 머무는 동안 함께 외출을 할 때면 그는 값비싼 물건들을(아이패드 같은) 쿠션이나 담요로 덮어두고 집안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조명도 몇 개 켜놓았다. 왜 그러냐는 나의 질문에는 조용한 목소리로 한숨 쉬듯 '오, 난민들'이라고 하면서.
내가 스노어네 집에 방문한 2013년은 유럽의 난민문제가 주요 이슈로 자리 잡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2010년 12월에 튀니지에서 시작한 혁명의 불꽃은 주변 나라들로 옮기 붙더니 저 멀리 시리아까지 번졌다.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난민들은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거나 육로로 터키를 지나 유럽으로 향했다. 그러다 수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배가 뒤집혀서 죽고, 트럭에서 질식해 죽었다.
한국에서 난민문제는 그냥 유럽의 이야기일 뿐 우리의 관심 밖 영역이었는데 2018년 제주도에 500명의 예멘 난민들이 도착하면서 큰 사회적 논쟁이 일어났다.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2021년 1월부터 6월까지 난민 인정률은 0.4%(5533건 중 21건)였다. 1994년 난민심사 제도를 도입한 후 역대 최저치다. 난민 인정률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각각 3.6%, 1.6%, 1.1%로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를 했고 그 이후 혼란을 피해 탈출하는 난민들의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2022년 현재,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주변국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리고 이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