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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an 31. 2022

어서와~ 한국은 두 번째지?(1)

덴마크 친구를 소개합니다

오래전 2008년 광화문에서는

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결정이 촉발시킨 시위가 몇 주째 이어지고 있었다.


그 근방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신호에 걸려 잠시 서 있는데 옆에 함께 서있던 덩치 큰 외국인이 말을 걸었다.


- 자전거 신기하게 생겼다. 그거 한국 거야?

- 아니, 영국에서 만들어진 거야.

- 접이식 인 거지? 접는 거 한 번 보여줄 수 있어?

- 그래.

- 오! 나 한 번 타 봐도 돼?


예상치 못한 요청에 당황해서 적절한 거절의 이유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타고 도망가면 어쩌지?’ 생각하며 마지못해 자전거를 넘겨주고 여차하면 쫓아갈 준비를 했다. 다행히 그는 내 사정거리 안에서 빙글빙글 타더니 곱게 자전거를 넘겨주었다.


- 고마워, 재미있는 자전거다.

- 응, 그런데 넌 어느 나라 사람이야?

- (한국말로 또박또박) 저는 덴마크 사람입니다.

- 하하하, 한국말 잘하네.

- (또, 한국말로) 저의 이름은 스노어입니다.

- 오! 발음 좋다. 여행 중인 거야?

- 응, 아시아와 불교에 관심이 많은데, 한국 사찰을 중심으로 여행하고 있어.

- 신기하네. 그럼 지금은 서울여행 중인 거구나.

- 응, 어제까지는 지방 어느 사찰에 있었는데, 집회 관련해서 스님들이 서울에 가신다고 하셔서 그분들 따라왔어. 혹시 너 이 시위에 대해서 좀 알아?


그 당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일이 벌어지자 한국의 종교인들이 광화문에 모여 평화시위를 위한 기도회, 미사 그리고 법회를 열었었다. 스노어는 지방 어느 사찰에서 출발하는 스님들 틈에 껴서 덩달아 서울로 오게 된 것이었다.


- 대통령과 정부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야.

- 그렇군. 그럼, 또 궁금한 게 있는데, 대통령 뽑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대통령이 싫다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온 거야?

- 그걸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너 시간 괜찮아?

- 응, 나 시간 많아


우린 종각역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 한국에서 술 마셔봤어?

- 응, 나 한국 맥주 좋아해.

- 그래, 그럼 맥주 마시자. 그리고 또 먹고 싶은 거 있어?

- 난 비건이라서 고기를 먹지 않아

- 비건? 비건이 뭔데?

- 채식주의자야

- 아! 음... 그럼 계란이나 생선은 먹어?

- 아니, 비건은 소, 닭, 돼지를 포함해서 거기서 나온 우유, 치즈, 계란도 먹지 않아. 생선과 해산물도 포함해서. 아마도 이 술집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없을 거야.

- (메뉴판을 보며) 정말 그러네. 여기 수 십 가지 메뉴 중에 고기가 안 들어간 건 은행 볶음 단 하나야. 그럼 이거라도 먹자. 그건 그렇고 비건이라고 하는 거 말이야, 그거 정말 가능한 거야? 너 그거 한 지 얼마나 됐는데?

- 고등학교 때부터니까 10년이 넘었네.

- 건강에는 이상 없고? 단백질은?

- 그래서 영양 불균형에 빠지지 않도록 늘 신경을 써야 해.

- 비건은 어쩌다가 시작하게 된 거야?

- 학교 다닐 때, 가축들이 어떤 환경에서 길러지는지, 어떻게 도축되고 가공되는지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 아! 알면 못 먹는 거구나.


비건으로 시작한 대화는 기후변화를 거쳐 한국사회&문화로 이어졌다.


- 한국 여행해보니까 어때?

- 너네는 정말 역동적이야. 늘 에너지가 넘쳐, 그리고 참 빨라. 우리랑 달라서인지 그런 면이 정말 인상적이야.

- 좋은 해석이네.

- 다른 해석도 가능해?

- 네가 본 그 열정과 에너지의 바탕에는 욕망과 불안이 있어.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경쟁에서 밀려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이 두 가지가 한국을 빠른 시간에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것들로 인해 많은 문제도 생겼어.

- 빈부격차 그런 거?

- 응, 맞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어. 너네 유럽에 비해 사회안전망도 미흡해. 경쟁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어. 너 혹시 밤에 가방 메고 돌아다니는 어린애들 본 적 있어?

- 응, 나 그거 알아. (이번에도 한국말로) 하궈언!

- 우와! 네가 그 단어를 어떻게 알아?

- 내가 한국에 왔을 때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그거였어. 밤에 어린 십 대들이 백팩 메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더라고. 너무 이상했어. 나중에 알게 됐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어. 근데 말이야, 학교에서는 공부 안 해?

- 하지.

- 그런데, 왜 또 학교 끝나고 공부하는 곳에 가?

- 다른 애들보다 잘해야 하니까. 그게 한국이야. 경쟁이 효율을 높이고 사회에 활력을 준다는 거지. 너네랑 많이 다르지?

- 응, 많이 다르네. 거의 정반대야.

- 덴마크는 경쟁 안 해?

- 물론 우리도 하지. 그런데 교육과정에서의 경쟁은, 음... 아마도 없는 거 같아.

- 없는 거 ‘같다’는 건 뭐야?

- 생각 안 해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경쟁을 부추기거나 강조하는 교육은 안 받은 것 같아.

- 시험 안 봐?

- 물론, 우리도 시험 보지. 하지만 시험은 각 학생들이 과정을 잘 이해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야. 선생님은 시험을 통해 자신의 학생들이 수업을 얼마나 잘 소화했는지를 파악하고.

- 그러네, 많이 다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덴마크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요즘 덴마크에는 어떤 이슈가 있어?

- 코펜하겐에서도 최근 아나키스트들의 시위가 있었어.

- 아나키스트라니? 그런 사람들이 있어? 그게 덴마크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는 거야?

- 아나키스트들의 마을도 있는 걸.

-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 응,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서로 잘 지내고 있어. 이번처럼 정부와의 마찰이 있긴 하지만.

- 신기하네. 아참, 그쪽 나라들은 세금 많이 낸다는 얘기를 들었어.

- 응, 소득에 약 30~40%

- 그럼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동기가 약해지지 않을까?

- 그런데 우린 나름대로 꽤 '잘 사는' 나라에 속해있어. 어쩌면 좀 전에 네가 말한 욕망과 불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적성에 맞는 일, 그리고 내가 잘하는 일 하면서 사는 거지. 그게 생산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야.

- 어쩌면 그게 덴마크에 경쟁력일 수도 있겠네.

- 물론 덴마크에서도 그런 사회보장제도 때문에 나태함이 문제가 되곤 해. 우파 정당들은 항상 복지지출 축소 이야기를 하거든.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체적으로 잘 작동되는 것 같아.


우린 그날 이후 몇 차례의 만남을 더 가졌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스노어는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고,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가 머물러 있는 동안 용산에서는 경찰과 철거민들의 충돌로 사람들이 죽는 일이 있었고, 그 뉴스를 본 스노어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 이후, 나는 스노어에게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설명할 일이 많아졌다.


- 네가 덴마크로 돌아가서도 연락하게 우리 이메일 주소 교환할까?

- 응, 그러자 너 페이스북 해?

- 그게 뭔데?

- 최근에 새로 나온 애플리케이션인데, 너도 하나 만들어봐. 이메일보다 더 편할 거야.


나의 페이스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덴마크로 돌아간 스노어는 그곳에서 학업을 마치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스노어는 ‘덴마크의 겨울 출근길 사진’인데 내가 흥미로워할 것 같다며 사진 한 장을 보냈다.

- 사진 잘 봤어. 그런데 말이야. 너희 덴마크 사람들은 자전거를 너무 사랑하는 거야, 아니면 교통비가 너무 비싸서 그런 거야, 그것도 아니면 직장이 가까운 거야?

- 모두 맞는 말인 것 같아. 나도 여기 뜨거운 여름에 저 사진을 보니 좀 신기하긴 하다.

- 너도 덴마크에서 저렇게 자전거 탔어?

- 응

- 와! 설명 좀 더 해줘.

- 글쎄, 뭐라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만큼 우리에게 자전거는 친숙한 교통수단인 거야. 어려서부터 일상적으로 탔으니. 우리에게 자전거는 그냥 생활의 일부인 거야.


한국은, 특히 서울은 언덕이 너무 많아 자전거 타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저 사진 앞에서 '언덕'은 그저 핑계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이 덴마크 사람들에게 저런 날씨에도 자전거를 타게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얼마 후 인터넷에서 우연히 코펜하겐 자전거 도로 사진을 한 장 보게 되었는데,

도로를 횡단하는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한 공간인 듯한데, 자전거 관련 인프라가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 궁금했다. 스노어에게 사진을 보내 물어봤더니, 그냥 흔한 자전거 도로라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 후, 시간이 날 때면 덴마크의 자전거 문화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사진들을 발견했다.

서울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교차로에서 잠시 멈춰야 할 때, 인도 턱에 까치발을 딛곤 하는데 사진 속의 시설물은 그런 라이더를 위한 배려인 듯하다.

도대체 저 나라는 어쩌다가 저렇게 수준 높은 자전거 문화를 가지게 되었을까?

이렇게 덴마크라는 나라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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