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머무는바람 Dec 20. 2022

생인손과 내성발톱

조카 결혼식에 군에 간 큰아들이 휴가를 받아 합류하면서 오랜만에 4인 가족이 완전체가 되었다. 조카의 결혼도 축하할 일이지만 오랜만에 보는 큰아들 얼굴이 내겐 더 큰 축복이다. 짧은 머리도 쓸어보고 옷 갈아 입는 모습도 슬쩍슬쩍 흐뭇하게 챙겨본다. 거실로 나온 큰아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에 딱 들어온 발, 퉁퉁 부은 아들의 엄지 발가락. 아들은 내성발톱이라 자주 있는 일이지만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욱신거린다. 


아들의 내성발톱은 내 유전인자의 내림이다. 나는 내성발톱 뿐만 아니라 생인손도 자주 앓는다. 생각해 보면 가만히 두면 덜할 것을 꼭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이다. 손톱 주변의 거스러미를, 혹여 거스러미가 없을 때는 손톱으로 살살 긁어 뜯어낼 건덕지를 만들고는 톡톡 잡아뜯는다. 한두번 잘 되다가 어느 순간 깊숙히 뜯어져 나오면 그 후유증으로 생인손을 앓게 된다. 건들지도 못할 정도로 빨갛고 땡땡하게 부어오르는 생인손. 3-4일 고생하고 나면 아픈 기색이 좀 사라지고 하얗게 농이 앉는다. 그때쯤 바늘로 톡 터쳐서 고름을 쏙 빼내는 게 또 이상한 쾌감을 준다. 농이 다 빠지고 헐거워진 농자리가 좀 쓸쓸해지기도 하면서. 


내성발톱의 시초는 둥글게 둥글게 잘라내는 습관이었다. 둥글린 발톱은 자라면서 자신을 품어주는 살갗을 배신하고 파고 들기를 반복했다. 살을 뚫을 기세의 발톱 제거에도 나름 숙달이 되었다. 깊은 곳의 발톱을 들어올림괴 동시에 발톱깎기로 잘라내는 순발력. 아프면서도 뭔가 모를 희열을 느끼는 나는 좀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그러니 손톱, 발톱이 성할 리가 없다. 손톱 주변은 늘 뜯어낸 자국이고 발톱은 거친 둥근 면이 여기저기 잘린 모양이다. 


못생긴 손톱 발톱을 보면서 사는 일을 생각해본다. 사는 일에도 그저 그대로만 두어도 괜찮을 것을 욕심에 한 번, 혹은 호기심에 한 번, 덧대다가 고름 앓듯이 속 썩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적당히 한 두번 뜯어내고 멈추면 될 것을 멈추지 못하고 한껏 나아간 댓가를 치르고 난 농자리 같은 허허로움은 또 어떻구.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헐거워진 농자리와 잘려나간 발톱 자리엔 다시 새 살이 차오른다는 것을. 또 같은 실수 속에서도 새 살은 포기하지 않고 채움을 희망하리라는 것을. 사는 일도 다 그러하다는 것을.


아들이 발톱 치료에 나섰다. 엄지 발가락을 향해 깊게 숙인 등, 솜방망이에 빨간약에 후시딘을 졸졸이 펼쳐좋고선 사뭇 진지하게 살 속 깊은 곳의 발톱을 슬그머니 들어올리는 모습. 사는 일에도 가끔은 이렇게 진심일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12월의 주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