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의 추억
어느새 수능의 추억이 된 이야기다.
학교 특성상 수시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둘째는 꼭 수능을 봐야한다고 일찌감치 일러두었었다.
수험표가 목적인가 싶었지만 아들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고3을 마무리하면서 꼭 해야할 것이 있었으니 그 첫번째가 수능 시험장의 긴장감을 느껴보는 것이요 두번째가 그 수능장에서 도시락을 까먹어보는 것, 마지막 세번째가 수능이 끝나고 나올 때 교문 앞에서 부모님과 포옹해보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참 무슨 저리 단순한 소망을 곱씹는가 일면 고개 갸웃거려지는 일들이었다.
어쨌든 그쯤이야 뭐! 5시부터 일어나서 소고기 된장국을 맑고 순하게 끓여내고 아들들의 인정을 받은 오므라이스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보온 도시락에 낑겨 넣었다. 줄줄이 비엔나 햄은 다리 네 개의 꼬마 문어로 변신시키고 참 오랜만에 학부모 퍼포먼스를 그럴 듯하게. 만족스러웠다. 그날은 오전 수업이 있는 날이라 남편에게 아들 이동을 바통 터치하고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씻고 나왔는데 몇 통의 부재중 전화, 둘째였다. 불길함.... 부리나케 전화를 걸었다.
"아 엄마. 다른 게 아니라 아빠랑 나오면서 도시락을 놔두고 왔네. 엄마 일찍부터 준비한 건데 너무 속상해하지 말구요. 아빠가 편의점에서 이것 저것 사다주셨어요. 이따 봐요."
아니, 내가 수능 도시락을 두고 가는 사연의 주인공이 된 것인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통화내내 거실 입구 화분 옆에 오도카니 놓여있는 저 도시락. 저걸 손에 쥐어줬어야 했는데, 도대체 남편은 애 데리고 가면서 그걸 확인 안하나, 속상한 마음에 이탓저탓 애매한 남편만 마음 속으로 들들 볶아댔다. 그렇게 웃지도 울지도 못할 시간이 흐르고 둘째가 나올 4시 반에 맞추어 날 것처럼 차를 몰았다. 교문 포옹은 이루어주리라, 마음이 급했다. 띠리리링~~또 둘째다. 헉! 지금 시간에 웬 전화?
"엄마, 한국사 안 보는 사람은 지금 퇴실하래요. 언제쯤 오셔요?"
"30분은 걸리겠는데? 어쩌지?"
"오래 걸리네요. 그럼 학교 옆 카페에 가 있을게요."
그렇게 교문 포옹은 카페 포옹으로 대체되었다. 결국 두 가지 다 이루지 못한 셈, 그래 하나라도 얻으면 되는 거지. 수능장의 긴장감, 첫번째 소망애 대한 감회를 물었다.
"근데 엄마, 수능장 분위기가 내가 생각하던 그런 분위기가 아니더라구요. 우리 교실에는 특기생이나 특목고 애들을 몰아놔서 그런 긴장감이 없었어요. 쉬는 시간에 복도 돌아다녀 봤는데 다른 교실 애들도 다들 나와서 얘기하고 그냥 그렇던데요? 그 세 가지 중에 하나두 이룬 게 없네. 하하하"
결국 도시락은 해발 고도 500 지점을 설핏 넘어서는 학교 입구 차 안에서 두 모자가 해결을 하였다. 보온력이 떨어진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인생을 말한다.
"엄마 세상에 쉬운 일이라곤 없는 것 같아요 그쵸?"
"그렇지. 그래. 엄마가 너 세 가지 소망을 너무 우습게 봤다. 세상에 우스운 일이 어디 있다고...."
세상에 우습고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내가 그렇듯이 다른 이들의 삶도 그렇다.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다. 수능일만 되면 아들과 난 세상살이의 겸손함을 새기고 또 새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