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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연구소장 May 29. 2020

할머니가 하시는 '그 밥'

#3. 밥


 시골 할머니 댁에 가서 생일 식사를 할 때면 할머니께서는 평소와는 밥을 달리 하신다. 찹쌀을 넉넉히 넣으시고 온갖 콩을 넣으시지. 그냥 흰 쌀로만 한 밥과는 윤기부터 다르다. 뭐랄까 쫀득하니 끈기도 있고 콩들은 알록달록. 우리들이 서울로 올라가는 날 할머니께서는 또 ‘그 밥’을 하신다. 거기에는 또 한참 있다 봐야 하는 자식, 손자에 대한 사랑이 들어 있지.


 ‘또 언제 보나?’,

‘잘 올라가야 할 텐데.’,

‘차는 얼마나 막힐까?’,

‘힘든데 배가 든든해야지.’

 

 워낙 말씀이 없으신 할머니의 사랑의 표현 방법은 이렇게 한식의 기본인 ‘밥’에서부터 나오는 거다. 언제부터인지 엄마도 생일상을 차릴 때 별 반찬 없이 미역국과 ‘그 밥’을 한다. 차린 것이 많이 없어도 우린 뭔가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평소에도 흰쌀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콩도 좀 넣고 이것저것 넣는다. 쌀을 씻을 때 싱크대 근처에 잡곡들이 바로 보이지 않으면 까먹게 되어 엄마도 여러 통들을 마련해서 검정 쌀, 보리쌀. 찹쌀. 귀리 등을 놓고 자주 사용하려한다.




 콩은 깨끗이 씻은 후 불려서 물기를 쪽 빼고 냉동실 문 쪽에 놓아두면 바로 해 먹기가 좋더라. 완두콩이 껍질째 나올 때면 엄마는 한 망태 사 와서 껍질을 까두고 그대로 통에 담아 얼려둔다. 그리고는 그냥 밥에도 넣고, 카레라이스나 짜장밥을 해 먹는 날에도 넣곤 한다. 365일 매일매일 새롭게 반찬을 해 먹기가 쉽지는 않다. 다양한 밥을 이용하면 지루한 밥상을 날마다 바꿀 수 있어 좋고, 요리에 참여하지 않은 상대방에게는 성의 있는 식사를 준비한 마음이 보이는 부분이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영양가도 좋고 보기도 좋은 잡곡밥. 가장 하기 쉬운 ‘식단의 다양성’이다. 요즘은 연잎밥. 곤드레밥 등등 엄마가 모르는 여러 가지 밥들도 많더라. 잘 골라서 맛나게 밥을 자주 먹어라. 꼭 챙겨 먹어라.




+ 잔소리

 나이를 먹을수록 밥을 먹어야 든든해. 너희들은 빵도 잘 먹고, 떡볶이로 끼니로 잘 때우더라. 아빠, 엄마는 그런 걸 먹으면 밥을 또 먹어야 해. 나이 들어봐야 ‘밥 힘’으로 산다는 뜻이 몸으로 느껴지겠지. 지금 말해봐야 너희들은 몰라. 엄마는 너희들이 열 달씩 뱃속에 있다가 나오고부터 밥 양이 커졌다. 그것도 엄청 많이. 코르셋 한 번 입을 필요 없었던 허리 22의 홀쭉이 엄마 배가 ‘쫙악 쫙악’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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