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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Mar 02. 2022

내가 나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
귀 기울일 깨끗한 존경

'깨끗한 존경', 이슬아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 이슬아, 헤엄, 2019.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존경의 순간이 얼마나 희귀한지를 안다. 깨끗한 축하와 깨끗한 용서만큼이나 흔치 않다. (7쪽)


<깨끗한 존경>은 이런 서문으로 시작한다. 깨끗한 존경과 깨끗한 축하, 깨끗한 용서는 분명 흔치 않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도 흔치 않다. 인터뷰이들은 이슬아 작가를 믿고,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존경의 마음으로 열렬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슬아 작가는 이 이야기들을 성심성의껏 옮겨적는다. 말을 글자로 옮기다가 혹여 먼지 한 톨이라도 묻지 않았을까, 자칫 삐뚤게 놓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나간다.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전하는 말과 글에서는 단단한 책임감이 묻어난다. “김한민은 책임감을 ‘반응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response+ability=responsibility인 거라고.(113-114쪽)” 이슬아는 최선을 다해 반응하고 “열렬하게 말하(37쪽)”는 목소리의 열기를 열렬하게 받아쓴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인터뷰이들의 “아주 일부만을 알지만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의 찬란함은 의심하지 않(7쪽)”게 된다. 얼마나 이슬아가 최선을 다했는지, 이들의 대화가 얼마나 촘촘하고 뜨거웠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 대화의 열기가 독자의 마음에도 옮겨 붙었기 때문에. 


네 명의 인터뷰이가 이슬아와 마주앉았다. 라디오 PD이자 작가인 정혜윤, 작가이자 활동가인 김한민, 영화인이자 작가로 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는 유진목, 연극배우이자 작가인 김원영이다. 유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정혜윤의 목소리로 미끄러지는 글은 김한민의 목소리를 빌려 동물의 이야기로 보다 넓게 확대된다. 유진목의 내밀한 가정사와 생활로 이야기는 보다 구체적으로 한 사람의 삶을 그려내고, 이 개인적인 이야기는 가장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사랑과 자기 돌봄, 최저한의 생활에서도 ‘나를 위한 신’이 되는 지점으로 딛고 일어선다. 김원영의 인터뷰에서 대화는 개인의 삶에서 개인의 몸을 향해 흘러간다.


인터뷰이들은 분명 이슬아가 아니었어도 양질의 이야기를 했을 사람들이다. 이미 양질의 이야기를 세상에 그득그득 내어놓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슬아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들과 마주앉았다면 이만한 이야기들을 듣지 못했으리라고, 혹은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어도 이만한 알맹이들을 손에 쥐고 돌아 나오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걸 이슬아는 해낸다. 믿을 수 있는 시각으로 다듬고 반듯하게 다림질해서, 그러나 왜곡 없이 내어놓는다. 그 반듯한 열심과 깨끗한 존경에 기대어 나도 맑은 존경을 한조각 베어물어 본다. 깨끗한 존경으로 살아온 이들의 말을 깨끗한 존중으로 담아낸 이슬아의 문장을 곱씹어보면서,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는 충분하지 않(6쪽)”을 때 이 문장들로 마음의 빈칸을 열심히 채워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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