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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Nov 12. 2022

시대를 횡단하는 SF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알렉산더 케이, 동아시아서포터즈 서평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알렉산더 케이, 허블(2022).

신간 도서들을 둘러보다 보면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들의 신작뿐만 아니라, 새로운 표지와 번역으로 갈아입고 독자들을 찾아온 고전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 각광받고 있는 작가들의 신작을 따라읽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이미 한 차례 흘러간 이야기들을 다시 다듬고 되짚어 세상에 꺼내놓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새 옷을 입은 오래된 이야기들을 읽을 때면 유독 이런 점들에 눈길이 쏠린다.


알렉산더 케이의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도 마찬가지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1970년에 발표된 소설은 2022년에 이르러서야 출판사 허블의 '워프WARP'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명 애니메이션 <미래 소년 코난>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소설이다. 우리가 지금 이 소설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판사와 역자는 그 이유로 '애니메이션과 원작 소설의 차이점'에 주목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색채와 달리, 원작 소설 속 세계는 우울하고 잔혹하다. 세상은 이미 전쟁으로 한 차례 멸망했다. 무인도에서 홀로 생존해온 코난이 마침내 구조되었을 때, 코난을 기다리고 있던 세계는 풍요롭고 안전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멸망 위에 세워진 착취와 차별의 디스토피아였다. 이 반전으로 인해 코난의 무인도 생존기는 제국주의적 체제와 산업 문명을 치열하게 톱아보는 SF적 이야기, 그리고 평범하고 순박한 소년 코난이 한 시대의 소년 영웅으로 거듭나는 신화적 이야기로 거듭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쟁과 재난 이후의 희망을 이야기한다면, 알렉산더 케이의 원작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디스토피아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전쟁 이후에도 반성 없이 타 민족을 착취하는 모습은 제국주의의 연장선상처럼 느껴지고, 민족 간의 극렬한 이념적 대립은 작품이 집필될 당시의 냉전 상황을 연상케도 한다. 애니메이션 <미래 소년 코난>과 원작 소설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은 모두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희망이 아름다운 인간성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뜻한다면 알렉산더 케이의 희망은 인간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 불확실성은 때때로 인간을 좌절과 절망으로 내몰기도 하지만,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누구나 성장할 수 있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은 작품 집필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한편,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를 통해 무분별한 기술 발전에 대해 유효한 경고를 전달하고, 주인공 코난의 성장기와 모험담을 통해 흥미진진한 재미를 선사하며, 열린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어 독자들이 결말을 더 깊이 음미하고 고찰해볼 여지를 남겨놓는다.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이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아마 이 복합적인 요소가 모두 어우러진 결과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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