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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n 22. 2023

문화라는 신비를
진화론으로 밝혀내다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케빈 랠런드, 동아시아 서포터즈 서평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케빈 랠런드 저, 김준홍 역, 동아시아(2023).

다윈은 <종의 기원(1859)>을 통해 진화론을 이야기했다. 진화론은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지금의 겉모습과 신체 구조를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는 있지만,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다른 삶을 살게 되었는지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때문에 다윈은 <종의 기원> 이후에도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1871)>,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 등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탐구했다고 한다. 진화생물학자케빈 랠런드는 다윈이 미처 대답하지 못한 이 질문을 30여년 간 탐구하고, 자신의 결론을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에 담아냈다.


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인류 문명의 시작을 '부러진 다리뼈'에서 찾았다.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흔적이 남아있는 다리뼈에서 보듯, 다친 사람을 돕고 돌보는 마음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랠런드라면 조금 다른 대답을 했을 것이다. 랠런드는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인간 문화를 만들어낸 건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라고 대답한다.


랠런드는 '모방'의 힘에 주목한다. 커다란 변화나 사회적 혁신은 한 명의 천재가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따라하는 모방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뛰어난 모방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뛰어난 눈썰미와 섬세한 근육을 이용해, 동물들보다 훨씬 적은 횟수만 관찰하고 더욱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유전자의 힘이다.


하지만 유전자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초적인 석기를 제작하는 일만 해도 판돌의 어느 지점을 어떤 각도로, 어느 정도의 힘으로 타격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교한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한다. 랠런드는 단순 모방만으로는 도구를 제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정교한 모방을 위해서 비법을 전수하는 '가르침'의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언어가 등장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대를 이어 전해지는 가르침과 언어는 곧 문화를 만들어냈다.


모방에 능한 유전자는 인간의 문화를 만들어냈고, 인간의 짝선택과 주거 환경, 생활 습관 등은 다시 인간의 유전자에 영향을 끼쳤다. 현대 유럽인의 밝은 피부색은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것이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낙농업이 발달해 다양한 유제품을 주식으로 삼는 중동 지역에는 유제품을 소화할 수 있는 유전자가 발달했지만, 아시아나 미국 등 유제품을 상대적으로 덜 섭취하는 지역에서는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중동보다 훨씬 높다. 또 인간이 음식을 불에 조리해먹기 시작하며 인간의 턱 근육은 차츰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유전자가 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문화가 유전자에 다시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유전자―문화 공진화'라고 한다.


문화는 더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게 하고,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학습은 공동체 안의 문화를 굳건하게 보존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보존되는 문화는 서로 결합하거나 변화하며 사회적 혁신을 만들어낸다. 발달한 문화를 가진 공동체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몰려들며 변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랠런드는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공위성을 만들었고, 마천루를 쌓아올렸으며 위대한 예술 작품도 만들어낼 수 있었으리라 이야기한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지 약 180년이 지난 지금, 케빈 랠런드는 다양한 동물들을 경유해 우회하는 방식으로 인간 마음의 기원을 밝혀냈다. 랠런드의 연구 결과는 그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책을 읽으며 더욱 감탄하게 되었던 부분은 랠런드의 꾸준한 과학적 호기심과 폭넓은 연구, 그리고 섬세한 태도였다. 래런드는 대학원생이던 시절부터 이 주제에 호기심을 가지고 무려 약 30년 동안 관련 연구를 계속해왔다고 한다. 또 아홉가시큰가시고기와 세가시큰가시고기 등 물고기를 실험해 종마다 모방 능력에 차이가 있음을 깨닫고, 수학적 시뮬레이션 방법을 통해서는 인간의 모방 능력이 사회 발전도에 끼치는 영향을 발견해내는 등 전세계 연구자들과 협업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폭넓은 주제로 접근하고, 도출해낸 결과를 유의미하게 조합하여 마침내 원하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무척 감탄스러웠다. 또 진화론이 오랫동안 우생학과 인종 차별이라는 오해를 뒤집어썼던 만큼, 인간과 동물의 능력 차이를 비교하는 데 있어서도 자칫 종차별적인 논지로 기울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조심하고 고심하는 태도도 인상깊었다. 책의 내용만으로도 신선하고 흥미로웠지만 저자의 학자로서의 태도와 진지함에 있어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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