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에게간택되다
요즘, 나는 고민이 많다. 마미와 파파가 새로운 존재를 집안으로 들였기 때문이다. 3년 전에 시골집에 살던 모모를 데리고 왔을 때도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번에는 과히 충격적이다. 개과가 아닌 고양이과를 들인 것이다. 나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아니 싫어한다고나 할까? 어린시절 고양이와의 첫 대면이 공포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8년 전 아파트에 살 때의 일이다. 저녁 산책을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아파트 놀이터를 지나가는데 서너 마리의 고양이가 등을 높이 올리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놀이터 건너편으로 내 달 렸다. 나를 데리고 산책 시키던 누나는 영문을 모른 채 줄을 잡고 딸려 왔다.
“왜 그래? 또리야! 왜 그러는데?”
(“고양이들이 무서워서 그래, 누나!”)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내달렸다. 헐레벌떡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다음부터 놀이터 쪽 길로 가는 게 꺼림칙했다. 산책할 때마다 고양이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가족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적당히 놀이터 쪽으로 안가려고 줄을 당겼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드디어 눈치를 챘다. 마미가
“또리, 고양이들을 무서워하는구나! 어쩌누?
덩치는 산만한 게,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ㅋㅋ”
라고 놀렸다. 나는 씩씩거리며 마미를 째려봤다.
“아니, 아니라구요! 아니라니깐!”
아무튼 마미는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데 선수급이다. 그래서 나를 다짜고짜 안으려 하면 “크엉!”하고 튕기기도 한다.
아무튼 말이 길어졌다. 다시 집으로 들어온 고양이 얘기를 계속해야겠다. 그 아이는 태어난 지 3개월 정도 된 새끼고양이다. 마미와 파파는 걔한테 아예 이름까지 지어줬다. ‘모리’라고 모모와 내 이름인 또리의 끝 자를 붙인 거라나 뭐라나?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었다. 마미가 말했다.
“어디서 새끼 고양이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어디지?”
그러면서 찾아 나섰다. 나는 어디서 고양이 냄새가 나는지 알고 있었다. 이참에 고양이를 쫓아 버려야겠다는 생각에 냄새나는 빈집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고양이가 아니었다. 너무 작고 여린 노랑고양이였다. 내가 컹컹 대니, 벌벌 떨면서 구석으로 몰려 하악질을 해 댔다. “쬐그만 게 하악질이라니! 제법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린 것을 위협하자니, 이 또한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마미의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또리야! 안돼, 안돼”
겁을 잔뜩 집어먹은 새끼고양이는 얼른 나무데크 밑으로 숨어 버렸다. 새끼고양이의 위치를 알게 된 마미는 저녁마다 우유와 고양이 캔을 근처에 가져다 두었다. 나는 “그렇다고 설마 데리고야 오겠어?”라 생각하면서 알면서도 모른 채 했다.
그런데 “아뿔싸!” 먹이기 시작한 지 달이 되어갈 무렵, 이~노~움이 마미를 따라왔던 것이다. 마미는 문밖까지만 오려니 하고 그냥 들어왔는데 계속 “니야옹~ 니야옹~”하는 것이었다. 안쓰럽게 보다 못한 마미가 문을 열자, 드디어 문 안쪽으로 입성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 끝났으면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쫓아버렸을 텐데, 다용도실까지 아예 점령해버린 것이다.
그 후, 나와 모모는 밖으로만 나가면 뒤로 돌아가 다용도실 앞에서 마구 짖어댔다. 그럴 때마다 마미와 파파는 우리를 혼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마미의 새끼 손가락을 물어버린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실수였다. 마미와 파파가 다용도실에 자리 잡은 모리를 집중 케어하느라 모모와 나에게는 소홀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만, 하물며 우리와 친해지라고 우리 앞에 안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와 모모는 너무 당황하여 마구 짖어댔다. 나는 안고 있던 모리를 입으로 낚아채려 했다. 마미는 모리를 감싸 안았다. 결국 마미의 새끼 손가락이 내 이빨에 걸려 상처가 나고 말았다.(병원가서 3바늘 꿰맴) 순간, 마미는
“아~악~!”
소리를 지르며 얼른 모리를 다용도실에 데려다 놓고 숨을 헉헉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가 지혈을 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잔뜩 겁을 먹고 구석에 틀어박혔다. 파파가 다가오더니
“이놈!, 마미 손을 물다니!”
하면서 엉덩이를 펑펑 때렸다. 나는 서럽기도하고 놀라기도하고 억울하기도하고 미안하기도하여 그냥 맞고만 있었다.
다들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인가?”
골똘히 생각하며 구석에 쭈그리고 있었다. 잠시 후, 파파가 다가오더니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나는 “휴우~!”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지만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온갖 알 수 없는 꿈이 나를 괴롭혔다.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