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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Oct 25. 2024

내 이름은 또리(2)

모모(1)-견생역전

모모는 나랑 동거하고 있는 견공이다. 견종은 시고르자브종으로 동물병원에서는 닥스훈트 믹스견이라고 했다. 나랑 출생 연월이 비슷하다. 내가 태어난 지 6개월 쯤 돼서 시골집(여기서, 시골집은 파파의 고향집이다)에 가보니, 6개월 정도 된 모모가 있었다. 모모라는 이름은 서울서 놀러 온 손녀 딸이 ‘모모’라고 지어줬다고 한다. ‘모모는 철부지’란 노래에서 따왔는지, 아니면 소설 ‘모모’에서 따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불러봐도 뭐~ 잘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다. 

나는 모모를 처음 만났을 때 예민하게 경계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들이 처음 모모를 만나자마자, 

“와아~! 귀여운 강아지가 들어왔네~ 너무 예쁘다”

나는 제쳐 두고 모모를 쓰다듬으면서 예뻐해 주는 게 아닌가? 속으로는 싫었지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딴 척을 했다. 수틀린 내 감정도 모르고 누나는 

“또리야! 모모 좀 봐, 너무 귀엽지 않니? 너랑 나이가 똑같대, 사이좋게 놀아봐”

신나서 모모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모모도 뭐가 그리 신났는지 천방지축으로 나를 쫄쫄 따라다니며 “끙~끙~” 거렸다. 그뿐인가? 내 등에 올라타며 놀자고 보채기까지 했다. 나는 별로 내 끼지 않아 곁눈질하며 피해 다녔다.       


모모는 여느 시골 개처럼 1m 줄에 묶여 일 년 열두 달 흙바닥에 살았다. 모모 말고도 시골집에는 족보 있는 다른 개들도 있었다. 모모의 역할과 임무는 대문을 지키며 잔반(짬밥)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런 밥을 처음 봤다. 녹슬고 다 찌그러진 양은 그릇에 잡동사니 음식을 대충 말아서 주는 밥이었다. 모모는 그런 밥을 꼬리를 360도 흔들어 가면서 감지덕지 받아먹고 살았다. 어떤 때는 오래된 짬밥에 다른 양념(구더기)이 섞여 있기도 했다. 짬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가끔 마미는 모모와 나에게 짬밥이라는 특식을 줄 때가 있다. 잔반은 아니고 소고기와 북어를 끓여서 거기에 밥을 말아 식혀서 준다. 나는 사료와 달리 자주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라 “오물~오물~” 거리며 먹는데, 모모는 “쩝~쩝~”거리며 잘도 먹는다. 먹는 속도도 무지 빠르다. 아무튼 그런 모모 견생의 모습을 떠올리면 안쓰럽기도 하다. 어느날 부터인가 파파마미는 모모를 위해 사료를 주문해서 시골에 보내주었다. 모모가 5살이 될 때까지 그렇게 했다.      

파파는 시골에 가는 날이면 흙마당에 묶여 있는 모모의 목줄부터 풀어 준다. 모모는 좋아서 펄쩍펄쩍 뛰어 다니며 자유를 만끽한다. 그래서 모모는 설날과 추석을 기다렸다. 1년에 한 두번 정도 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모모로서는 우리 가족을 기다리는 게 낙이 되었다. 우리 차 소리를 멀리서 듣고 펄쩍펄쩍 뛰며 반가워 했다.      

시골에 살던 시고르자브종이 어떤 연유로 우리 집에서 나와 동거하게 되었는지 궁금할 것 같다. 마미는 늘 집을 다 지으면 모모를 데리고 오자고 했다. 나는 흠 찍 하며 속으로 “안되는 뎅...” 했지만, 그러지 말자고 설득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한 지 2년이 지난, 설날 무렵이었다. 모모나 나나 6살이 되던 해였다. 파파마미가 설날을 겸하여 미리 일주일 당겨 시골로 갔다. 그동안 가지 못하다가 2년 만에 모모를 만나게 된 것이다. 모모는 여지없이 개 울타리 안에서 파파마미 차를 보고 역시나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마미는 여전히 잘 살아 있는 모모를 보고 아주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5년 동안 다른 여러 마리의 개들이 살다가 다 떠났지만, 모모만이 생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개들은 그 집(큰집) 아들이 족보 있는 견종이라하여 어디선가 입양해 오거나 새끼들을 분양해 들어온 개들이었다. 그 중에 한 마리만 다른 사람에게 입양 보내졌고, 나머지 아이들은 심장사상충으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그냥 대충 대문 앞에 묶여 살았던 모모만 살아 남았으니, 다행이라 여겼던 것이다. 아마도, 1년에 한 두 번 만날 수 있는 우리 식구들을 기다리는 희망을 품고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역시, 파파가 모모의 목줄을 풀어 주니, 모모는 너무 좋아서 뱅뱅 맴돌고 펄쩍 점프하면서, 입맞춤하고 난리법석이었다. 예년과는 달리 자기를 데리고 가달라는 간절한 몸짓을 하는 것 같았다. 마미는 

“아, 저놈은 다른 개들은 다 죽어 나갔는데도 여전히 살아 있어!”

무심코 던진 시골 큰 엄마의 말에 바로 데리고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저희가 모모 데려 갈께요!”

라는 마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골 큰 아빠는 나무로 된 사과 상자에 모모를 집어넣었다. 모모는 짐작했다는 듯 얌전히 사과상자에 들어 앉았다. 물도, 먹을 것도 없이 모모를 넣은 사과 상자는 바로 차 뒷좌석에 실렸다. 그날 모모는 견생 처음, 차를 타봤을 것이다. 오로지 우리 가족과 살고 싶었던 희망으로 버텼던 견생 역전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모는 자기를 데리고 간다는 기쁨에 겨워 사과 상자 속에서 응아가 마려워도 목이 말라도 기특하게 두 시간 동안 찍~ 소리도 내지 않고 묵묵히 실려 왔다.      


모모의 첫 견생 역전의 첫 경험은 험난했다. 한번도 해본 적 없던 털깍기와 목욕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용실에 도착하자마자 사과 상자에서 꺼내어진 모모는 겨우 참다가 상자 안에서 한 덩어리 싸고 남은 응아 할 곳부터 찾았다. 시원하게 응아를 하고 나니, 새로운 냄새에 잔뜩 긴장한 채, 자기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처분만을 기다렸다. 마미의 표현에 의하면, 겁에 질려 몸을 떨고 있었다고 한다. 오로지 믿을 것은 자기를 꼭 안고 있던 파파의 팔 뿐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희한한 소리를 내는 기계(바리깡)를 들이대고 털깍기가 시작되니, 모모는 놀라 자빠지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경험했던 거지만... “나의 견생의 끝은 여기까지인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얽히고 설킨 쇠사슬 목줄 자리의 털이 깍일 때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럼에도 찍~ 소리도 내지 않는 모모를 보고 마미는 안쓰러워 했다.     

털을 몽땅 밀린 모모는 발가벗긴 것처럼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목욕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샤워기로 온몸에 물을 적시더니 거품 나는 무언가로 묻히고 몸을 문지르기 시작하니, 견생 역전을 바라보던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체념이 답이라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모도 나처럼 목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목욕’이라는 사람의 언어를 제일 싫어한다. 마미가 “목욕하자!”라고 하면 사나운 눈을 하고 으르렁 댄다. 

“싫어! 싫다고요!”

라고... 어쨌든 그날 어스름 저녁에, 모모가 견생 역전의 희망을 품고 파파 품에 안겨 우리 집에 도착했다. 반면, 나는 벼락에 맞아 넋이 빠진 것같이 어안이벙벙하여 차마 짖을 수도 “키잉~킹~” 거릴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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