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 덕후가 보는 펜트하우스 2
*이번 글은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2> 2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 빠지기 싫다면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bhIg3XX3dM&t=458s
돈 명예 권력을 모두 가져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성악가 천서진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시즌 1 때 헤라 펠리스와 청아 예고에서 GTA 실사판을 찍은 덕에 밤의 여왕스러운 괴성을 자주 시전 했고, 공연을 며칠 앞두고 성대결절 진단을 땅땅 받고 온다. 목에 나쁘다고 매운 음식 튀긴 음식 안 먹으면 뭐하나...
역시 과도한 샤우팅은 건강에 해롭다.
보통의 성악가 연주자라면 공연을 취소하겠지만 자존심 대마왕 천서진은 대관료도 다 냈고 협연할 오케스트라도 들어왔다며 포기 못 한다고 한다. 사실 기자간담회 이후 자신의 몰락을 예견하는 기사가 떠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진짜 이유지만. 아무래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고 가문의 자랑거리로 만들려 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 남의 시선을 심하게 신경 쓰는 성격이 되었나 보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부모님들,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있는 그대로 자식을 존중해주길 바란다. 불행해지는 자식을 보고 싶지 않다면...
결국 천서진은 성악가로서의 생명줄을 끊어먹는 대리 성악가 섭외를 계획하고 만다. 공연 당일 무대 뒤에서 대리 성악가가 스테프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고 천서진은 립싱크를 시전해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로 끝나면 드라마가 진행이 안 된다. 무대 뒤에는 원래 섭외한 레슨 강사 대신 천서진의 철천지 원수 오윤희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고딩때 천서진에게 목 찔림+ 시즌 1 마지막 회에서 목을 찔러 요단강 횡단을 시도해 목소리를 잃은 줄 알았지만 로건의 도움으로 성대 수술을 받아 부활했기 때문이다. 대리 성악가가 후드모자를 벗자 전국의 시청자들은 일부러 삑사리 내서 천서진에게 개망신을 안겨주겠지라고 예상했지만 그렇게 나가면 막장드라마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천서진도 못 내던 돌고래 고음을 시전해 자기 없인 공연하지 못하게 만드는 약점을 잡아버렸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헉 내 최애도 립싱크 핸드싱크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겼다면 이참에 이 글을 끝까지 읽고 가자. 걱정을 싹 내려놓고 갈 수 있다.
우선 무대 장식 때문에 합창석에 관객을 안 받는 건 모동숲 돈나무를 잡을 수 있는 황금 기회를 놓치는 행위다. 천서진 정도 되는 성악가라면 팬 말고도 이름값 때문에 보러 올 일반인도 많아서 무대 앞만 바라보는 관객석으론 부족하다. 경험 없는 기획사가 멋모르고 메인 관객석만 열 순 있지만 그랬다간 합창석을 내놓으라는 댓글 폭격을 받아 안 여는 일은 없다. 관객 별로 없을 것 같은 예당 11시 콘서트, 합창석에서 들으면 솔리스트의 연주가 묻히는 협연 공연도 합창석을 파는데 톱스타 성악가의 20주년 공연에서 합창석을 꽁꽁 닫아놓을 리가 없다. 물론 천서진이 대리 성악가를 세우기 위해 공연장과 모종의 협의를 했다면 일리가 있겠지만.
그리고 그 많은 클래식 덕후 관객과 열성팬들의 귀는 속일 수 없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입막음을 할 수 있지만 관객들은 이해관계로 엮여있지 않은데 어떻게 그들의 입과 손가락을 막을 수 있겠는가. 한 술 더 떠 열성팬이라면 음악만 듣고도 우리 최애가 노래한(연주한) 음악인지 아닌지 알아맞히는 덕심의 귀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성악은 몸 전체를 써서 소리를 내고 기악은 악기의 부품들이 맞물려서 소리를 내 클알못이라도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기계를 최대한 안 쓰고 생귀로 직접 듣는 소리기 때문이다.
드라마 세계니까 다음날 팬사인회 겸 기자간담회에서 극찬이 쏟아졌지 현실세계였다면 그날 밤부터 클래식 덕후들과 팬들의 전문가 칼럼 뺨치는 추론 글로 뒤덮일게 뻔했다. 공연 실황 음반은 세상 빛을 보지도 못하고 7회까지 갈 것도 없이 다음 회차에서 바로 은퇴했을 것이다.
역시 펜트하우스는 클래식 음악 드라마가 아니라 막장 복수 치정극이다ㅠ 고딩때 불렀다간 성악인생 하직하는 오페라 아리아를 Dog나 Cow나 불러대고 교내 경연대회 우승이 샤대 프리패스권이 되는 것부터 클래식 음악 쪽으로 고증은 옆집 멍멍이에게 준 수준이었다. 시즌 1 때 그런 항의를 받았다면 수정을 좀 하지 시즌 2 청아 예술제에도 국제 콩쿠르 단골 레퍼토리인 <꿈속에 살고 싶어라>가 나오니 작가가 클래식 음악보단 복수혈전에 온 신경을 다 투자하나 보다ㅡㅡ 가곡 가사들은 복수 치정극에 쓰기엔 너무 알흠답기만 해서 그런가?
압권은 시즌 2 4회였다. 어떻게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가 청아 예고에 재입학을 한단 말인가. 천서진네 집은커녕 한국 땅도 못 밟고 공연 여행을 다니면서 어쩌다 한번 한국에서 공연하면 팬들이 줄을 서는 성악가가 될 텐데....
콩쿠르에 우승해 청아 예고에 재입학한다는 서사를 쓰고 싶었다면 가상의 국제 콩쿠르를 만드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존재하고 한국인 우승자도 둘이나 있는 콩쿠르를 갔다 썼으니 클래식 음악바닥 종사자와 마니아들의 눈총을 받는 건 안 봐도 너튜브였다.
딴소리지만 저 다큐멘터리는 클래식 초보 수준에서도 재밌으니 보고 가자. (시청하기)
https://brunch.co.kr/@minicante/14
(브런치 작가 합격에 효자노릇 톡톡히 한 다큐 감상문)
이 글을 쓰기까지 아이디어를 내고 내용을 정리하는 동안 옥상집 시즌 2는 벌써 10회까지 공개되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가 하면 의붓딸이 친딸이 되며 한 회라도 까먹었다간 멍멍이판이되는 KTX급 전개 속도를 충실히 따라간 탓이다. 그런데 서사 우려먹기와 정신건강에 해로운 장면들이 개연성이 있어야 할 자리를 꿰찬 탓에 슬슬 더는 못 보겠다는 시청자들도 속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시즌 2에서 끝내거나 시즌 3은 시즌 1의 과거 이야기로 다뤄달라는 의견도 있으니 역시 매운맛 맛집도 계속 가면 질리는가 보다.
내가 작가라면 시즌 3까지 막장을 달리다 파국으로 끝나는데 사실 다 오윤희의 꿈이었다....로 끝내버리고 싶다. 꿈에서 깬 날 아침은 배로나가 20XX 년 예술의 전당 신년 음악회 무대에 오르는 날이고 오윤희는 객석 맨 앞줄에서 관람하는 장면이 마지막 회의 명장면이 되는 거다. 그게 진정한 퀸엘콩 우승자의 삶 아닌가. 더불어 오윤희와 천서진은 고딩때 '그 사건'없이 1등 2등 나눠먹기로 친한 동종업계 종사자로 지내는 사이로 만들고 싶다. 마음보 잘못 써서 자식들까지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는 세계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이다.
마지막 회답게 스타가 된 20대 후반~30대의 배로나는 실제 성악가가 카메오 출연을 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홍혜란 or 황수미 소프라노가 나오면 더 좋고. 하지만 두 분 모두 배로나와 이미지가 완전히 딴판이라 자칫하면 욕먹기 겁나 좋은 캐스팅이 될 수도 있다. 그냥 원래 배우가 하는 게 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