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경쟁과 진정한 자립심.
막연하게 유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설렜던 것은 내가 얼마큼, 어떤 걸 배우게 될까에 대한 설렘이 아닐까 싶다. 나도 정말 많이 궁금했던 부분이고 사실상 유학을 하는 동안에는 이런 걸 배우고 있구나! 하고 깨닫기는 쉽지 않다. 유학이 끝이 나고 졸업을 하는 그 순간,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배움들은 서서히 내 표면으로 올라와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 오늘은 졸업하고 나서 계속 내가 깨닫고 있는 내면의 변화들에 얘기해보려 한다.
1. 선의의 경쟁이란 게 있을 수 있구나. 이렇게 치열할 수 있구나.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보냈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라는 것엔 정말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중고등학생 때를 생각하면, 끔찍하긴 했지만 '그래, 그렇게도 해봤으니,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미국에서 겪은 치열한 경쟁은 사뭇 달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를 했던 이유는 '미움받기 싫어서'였다. 담임선생님들은 조금이라도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나 공부에 관심 없는 친구들을 '문제아'취급했고, 대우가 달랐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게 참 싫었던 것 같다. 정말 나 자신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 살기 위한 공부였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유학은, 디자인이 과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일까? 고민하던 찰나에, 치열한 선의의 경쟁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아트센터에서의 4년은 정말 치열했지만, 다른 친구들 때문에, 선생님들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정말 흔히 말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고, 딱히 선생님 칭찬을 받기 위한이 아닌, 그런 경쟁.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서로 열심히 하다 보니 복돋와주면서 함께 치열해지는 경쟁. 정말 치열했지만, 중고등학생 때처럼 불행하진 않았다. 다시 돌아가라면 돌아갈 순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았기에. 하지만 중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릴 때만큼 끔찍하고 힘든 기억이 아닌 뭉클해지는 기억으로 남았다는 게 다른 점 같다.
2. 정말 나는 혼자라는 것.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달려와 줄 이가 없다는 것.
나는 미국에 친척도, 친구도, 아는 사람마저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한창 유학 준비에 들떠있었을 때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유학을 간 내 친구가 그러는데 말이야, 그 외로움과 나 혼자라는 것이 사무칠 때가 너무 많아서 그렇게 서럽다더라. '아, 지금 이 길바닥에서 당장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달려와 줄 가족이 없고, 나에게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내가 속해있는 이 사회는 눈 깜짝할 게 아무것도 없구나' 그런 상황은 생각지도 못했던 전제의 상황이었다. 막상, 유학을 결정하고 나면 공부할 것과 새로운 문화에 대한 기대감만 앞서서 이런 현실적으로 부딪힐 내 감정의 상태나, 멘털이 흔들릴 순간들까지 상상해보지는 못한다. 그런데 이 외로움이라는 것이 나도 모르게 나를 잠습해오더라. 정말 서서히, 강렬하게, 스스로조차 눈치채기 힘든 방식으로...
나는 유학초반에 다행히 룸메를 지금까지도 절친일 정도로 좋은 사람을 만났다. 그래서 아마 적응하는 게 훨씬 덜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친구가 여기저기 파티도 많이 데려가고 가족처럼 날 챙겨주니, 정말 가족 같아져 버렸다. 그런데 그 룸메가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욕으로 향하면서 고독한 외로움이 찾아왔다. 돌이켜보니 2년 동안 나도 모르게 묵혀져 있었던 것 까지 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외로움은 무서우리만큼 이상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한참을 뒤에야, 지나고서 생각해보니 나는 그때 남자 친구가 집착과 언어폭력이 심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너무 외로운 나머지 내가 폭력적인 연애에 놓여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자존감이 낮았던 적이 없던 사람인데도, 나를 너무 좋아한다고 해주는 단 한 사람이 이 외 딴 나라에 생기자 걷잡을 수 없이 빠졌던 거다. 게다가, 새롭게 친해진 한국 언니는 힘들 때 교회를 가보자며 평생을 무교였던 나를 교회로 데리고 갔고 나는 교회만 가면 그렇게 늘 펑펑 울었다. 해방감도 들고 위로도 되면서 그렇게 또 그 언니에게 마음을 많이 줬던 것 같다. 그러다 그 언니는 방세를 가지고 결국 내 뒤통수를 쳤다. 경찰을 부르네 마네 생 난리를 치면서 해프닝은 일단락이 됬지만, 나는 그 언니가 나에게 부은 폭언때문에 한달을 꼬박 나홀로 불면증과 공황장애로 고생했다.
사람이 의지할 데가 없다 보니, 참 마음이 이상하게도 흘러가고 있었던 거였다. 한국에서도 인간관계가 제일 힘들었었지만, 타지에서 그나마 믿고 의지했던 인간관계에 트러블이 생기면, 그 파장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부모님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힘든 내색을 최대한 덜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내 감정에 무뎌졌고, 안으로 삭히는 법을 배웠고, 그로 인해 어쩌면 '진짜 홀로서기'를 시작한 것 같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너무 많이 만났고, 이제는 무슨 일이 생겨도 달려와 줄 이들이 너무 많이 생겼지만 타지에서 그렇게 나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을 만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나'라는 사람이 정말 많이 자랐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유학은 학문의 배움 그 이상으로 나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