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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나노 Jul 11. 2020

내가 사는 세상

소중한 추억이자 새로운 도전, 속초

두근두근 세근

오랜만에 가슴이 콩닥콩닥 설레기 시작한다.

'자, 이제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되는 거야~'

6월 6일 토요일, 현충일이다.

현충일은 빨간 날. 고로 휴무이다. 오랜만에 이틀 통째로 쉬는 날이라 벌써부터 뭘 하면서 보낼지 고민 중이다. 수락산으로 등산이나 갈까? 아니면 여행을 갈까? 주변에 여행을 다녀왔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내심 부러워졌다. '그래!! 저번 주말에도 등산하였으니 이번 주말에는 여행을 가자!!'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을 하지도 않았다. 늘 나에게 국내 여행지 답은 정해져 있었다. 속초, 속초다. 그곳은 나에게 늘 가고 싶은 추억의 여행지이다. 그 순간, '카톡'하고 카카오톡 PC 알림이 뜬다. 내 친한 친구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안돼!! 이 시국에 뭔 여행이여 미친노마"

"야.. 조심하면 되지. 나 안전한 곳으로 갈 거야. 바다 있는 속초로!! 어때, 좋지?!!"

"니가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위험해."

"결제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만약 코로나 걸리믄 동선 너무 위험해. 참아요~"

"걍 떠날래..."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미 결정했고만, 위험한디ㅡㅡ"

"흑 나 슬퍼“     


2016년, 4년 전 이맘때일 것이다. 그때의 나는 홀로 상경해온 이곳에서 일터를 잡고 직장인의 삶에 하나씩 적응해가던 시기였다. 어김없이 주말이면 생기는 시간적 여유와 다달이 채워지는 통장잔고로 금전적인 여유까지 얻은 나였다. 직장인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첫 여행이었다.


대학 시절에도 딱히 그렇다 할 여행을 가지 못했다. 주중에도 알바, 주말에도 알바. 그렇게 매일 알바를 하며 생활을 해야만 했었고, 쉬는 날에는 친구들과 도시 내에서 놀기 바빴기 때문에 딱히 여행을 갈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알바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여행이나 다녀올걸' 너무나도 그 시간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서 첫 여행을 준비했다. 첫 직장에서 첫 여름 휴가를 받았고, 그동안 전라도에 살면서 너무 멀어 쳐다보지도 않았던 강원도를 택했다. 강원도 어디로 갈까 하다가 가장 유명한 강릉과 속초를 선택했다. 그리고 떠났다. 강릉에서의 2박 3일은 친구와 함께했다. 물회도 처음 먹어보고 강문해변에 양떼목장까지. 예쁜 추억들을 아주 많이 담으며 친구와 헤어지고 나는 홀로 배낭을 메고 속초로 떠났다.     


2016  대관령양떼목장


맞다. 혼자서 하는 첫 나 홀로 여행이었다. 무서웠다.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파티까지 무턱대고 예약을 해버렸는데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두려운 마음 안고 터미널에 도착한 버스에서 하차했다. 지도를 보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고 아무런 일정 없이 발 닿는 대로 속초 곳곳을 걸어 다녔다. 그리고 그날 밤, 게스트하우스 파티에도 참석했다. 파티에 참석한 소수의 인원만이 한 테이블에 모여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정확히 7명이었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도 있었고 지인과 함께 여행 온 일행도 있었다. 대학생, 간호사, 직장인, 바텐더. 우리 7명은 가지각색의 모습을 하고 한 공간에 머물렀다. 어색함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 어색함을 어떻게든 뚫어보려 대화를 하고 술을 마시며 밤새 시간을 보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밤새 이야기를 해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어둑어둑했던 밖은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했고 우린 남은 술을 들고 해변으로 향했다. 바다의 수평선 위로 물감을 잔뜩 쏟아부은 듯, 빨갛고 노란 예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황홀했고, 아름다웠고, 그 순간 세상의 행복이 나에게로 있었다. 그곳에서 마시던 소주는 사이다보다도 달콤했고 함께했던 이들은 소중한 순간을 함께한 특별한 이들로 마음속에 새겨졌다. 동영상으로 녹화한 듯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순간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를 되새기면 행복 열매가 온 몸속을 휘감는다. 그리고 입가엔 미소가 스르르 피어난다. 다 피어오른 해와 작별인사를 한 뒤, 우리 일행은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잠깐의 휴식을 가지고 굿바이 인사를 한 후 헤어졌다.     


나는 근처 카페로 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좋았던 전날 밤을 회상하며 당장 오늘은 무엇을 할지 고민 중이었다. 그 순간 나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불과 몇 시간 전에 함께했던 일행 중 한 사람이었다.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 것이다. 우연이라 더 반가웠던 것 같다. 어떻게 여기서 다시 만나냐며 신기하다고 몇 번을 반가워하다가 만난 동지들끼리 하루를 함께 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에서 또 다른 일행을 우연히 만나며 결국 모든 이들에게 연락을 돌려 즉흥 일박을 더 하기로 했다.

한명이 빠진 6명이 모였다. 오빠들은 렌트를 하고, 시장에 들러 하루 치 옷을 사 입고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감히 홀로 온 여행에서는 바다에 들어가 수영할 엄두로 못냈을 텐데 그 바다에서는 혼자가 아닌 무려 6명이 만들어낸 우리라는 공동체였다. 근처 민박집에서 방 두개를 잡고 바다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정말 좋은 날들이었다. 환상적인 고갈비의 맛도, 선선한 바람도, 온몸을 감싸는 바다 내음도, 세상을 비추는 불빛들의 향연까지도 모든 것이 완벽 그 자체였다. 생전 처음 도전이었던 나 홀로 여행이 이렇게 완벽하게 끝날지 누가 알았던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날들이었고 온통 처음 접하는 공간에 아예 초면인 사람들과 전혀 가식 떨 필요 없이 속초의 기2016억을 새롭게 써 내려갔다.

     

2016 속초에서의 마지막 밤_등대해수욕장


그 기억이 마지막이다. 이후로는 상황들이 계속되지 않아 나 홀로 여행을 가지 못했다. 가끔 시간이 생겨서 여행을 가더라도 국내가 아닌 해외여행을 선택했다. 슬슬 자리를 잡으며 안정기에 접어들다 보니 나에게도 여유가 생겼나 보다. 과거의 추억들이 생긋생긋 다시 피어오르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중 여전히 따뜻한 기억으로 자리 잡은 속초의 기억들이 나를 그곳으로 자꾸 이끈다. 하지만 갈 수가 없었다. 뭔가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홀로 여행을 해야 하는 것도 무섭고 새로운 사람과 알 수 없는 대화를 해야 하는 것도 두려웠다. '혼자 가서 심심하지 않을까?''뭘 하면서 놀아야 하지?' 쓸모없는 걱정들만 내 앞을 가로막았다. 특히 더 걱정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의 내가 다르게 느껴지기에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선 너무나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결국, 많은 걱정에 사로잡혀 오랜만에 예약했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날짜 며칠을 남겨두고 예약취소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오늘, 나는 다시 예약 버튼을 눌렀고, 마지막 결제 단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래, 새로운 도전이야. 다시 해보자' 했지만, 결국엔 또 취소다....

또다시 친구의 카톡 메시지 알림이 뜬다.

"겁나 절망하넼ㅋㅋㅋ 그럼 다녀와,,, 마스크 쓰고 손 소독제 챙기구..."

"너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또 망설여지잖아ㅠㅠ 결제까지 가기 전에도 엄청난 고뇌를 했었는데 다시 되돌이표 됐어ㅠㅠ"

"그럼 가지 마!! 좀만 참아! 코로나 좋아지면 그때 가."

"힝 ㅠㅠ 알겠어. 등산이나 가야겠다ㅠㅠ"


언제쯤 갈 수 있을까.

가장 그리운 곳이지만, 가장 조심스러운 곳.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두려운 곳.     

직장인이 되면서 변해버린 현재의 내 모습을 돌아보며 나는 2016년, 그 때의 모습을 자주 꺼내 본다. 몰랐기에 순수했고, 당돌했고, 겁이 없었고, 모험을 즐겼던 나였지. 스스로에게 늘 만족했고, 당당했고, 자신감으로 차 있었던 그때의 내가, 나는 그립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생활을 할수록, 겁은 늘어갔고 자신은 없어졌다. 참으로 모순 아닌가. 사회적 경험은 늘어가는데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다니. 알 수 없었다. 모르기에 그때의 나에겐 더 많은 길이 있었던 것 같다. 과거의 가장 자신감 넘쳤던 그 순간의 가장 행복했던 추억. 속초. 그러기엔 속초는 나에게 가장 어렵다. 언젠가는 무조건 그때의 그 코스 그대로를 밟으며 추억해나가고 싶다. 같은 게스트하우스, 같은 파티, 같은 식당, 같은 해변, 같은 거리를 걸으며 그리웠던 나와 다시 한번 더 가까워지고 싶다.


그때의 추억, 단지 한 가지의 추억 때문에 나에게 속초는 아름다운 도시, 그리운 도시가 되었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그들에게 여전히 그리운 마음을 전하며 그날을 나는 자주 꺼내어 본다. 아무리 꺼내어봐도 닳지 않길래, 아무리 추억해봐도 행복하길래 나는 자주 그 기억들을 회상해 본다. 그리고 감사드린다. 그 순간을 행복하게 기억되도록 함께해준 이들에게. 그리고 그 순간을 완벽하게 즐겼던 그 시절의 나에게. 어디선가 행복하게 사시기를. 언젠가는 꼭 우연히 만나 안부 인사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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