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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야 Sep 02. 2022

2. 사실은 2, 우연, 내가 창업?

청년사업가 청년창업 말은 많이 들었지만?

나, 사실은 아직 20대야!


"와우! 너무 멋있고 좋아요. 레야님, 한번 서른 되기 전에 사장님 되어봅시다!"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청년창업'이라는 것을 고민하고 있을 때, 내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라?

나 지금 30살이고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데...?


눈 앞 테이블에 놓여 있는, 내 차트와 상담 기록을 보관하는 종이봉투를 보았다.

92년, 29세.


그 날, 진료 후 집에 와서 월초에 한달 치 처방을 받았던 내과 약봉투를 보았다.

본명, (만28세)


나는 그때, 어쩌면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고 깨달았다.




나는 나이 앞자리가 '2'로 바뀌던 설날, 미술학원에 아침부터 밤까지 박혀 있었다.

함께 수능을 보고 대학 원서를 낸 친구들은 모여서 이곳저곳으로 놀러 다니는데, 나는 거기에 함께하지 못하고 정말 질리고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미술학원에서 그림만 그렸다.

나는 미대입시생이었으니까.


수능 성적과 실기 성적만으로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미대 정시는 수능을 본 후 거기에 맞춰 우선 희망 학교들에 입학원서를 내고, 그 학교들이 고지하는 날짜에 가서 실기 시험을 치른다.

이 실기 시험이 가, 나, 다 3개 군의 4년제 3군데와 산업대 1~2군데, 그리고 혹시 몰라 추가로 지원하는 2년제 1~2군데 정도를 더해서 2월 초중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수능 직후부터 1~2월까지 내내 미술학원에서 집중 수업을 했다.

지금은 또 입시가 어떻게 바뀌었나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가 대학에 갈 때는 그랬다.


그리고 어찌저찌 대학에 가고, 이제까지 다녔던 학교와는 전혀 다른 학교, 전혀 다른 공부와 수업에 그저 감탄하며 학교를 다녔다.


학점이 잘 나오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 환경이 한없이 신기했고, 그래도 하루하루 나름 재미있게 살아갔던 것 같다.


대학도 졸업의 해가 점점 다가오고, 계속 학교를 다니는 건 답답해서 졸업전시회가 끝나자마자 취업계를 낸 뒤 학교 수업을 뒤로 하고 회사에 출근을 했다. (나 때는 가능했다! 지금은 안 되는걸로 알지만.)




그러니까 통상 우리가 말하는 나이를 기준으로,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을 때에는 알레르기도 우울증도 안정은 되었지만 그 사이 성인ADHD라는 새로운 스티커를 받았고, 그 즈음엔 그냥 스스로를 구성하는 정체성 중 하나에 만성질환자라는 단어를 넣어 두고 있었다.


뭐, 그럴 수 있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중에 언제는 안 그랬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냥 그러려니 한 것 같다.

원래부터 그랬는데 이름을 좀 더 정확하게, 그리고 무게감 있게 붙여주었을 뿐이다.

더 어릴 때와는 다르게 제대로 이름을 붙이고, 더 무겁게 무게를 더하고 일상 곳곳에서 더 신경 쓰고 관리를 해야 하니까, 그래야 일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한 단계 더 진지하게 생각했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제법 확실하게 먹혔다고 볼 수 있었다.

어떠한 것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 명칭을 직접 입으로 말하고 머리로 인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의 인지를 다르게 만들고 경각심을 더 키워주며, 그것들에 대한 관리를 조금 더 세심하게 신경쓰고 자기 자신의 컨디션과 변화를 더 꼼꼼히 체크하는 계기가 되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나름대로는 이것저것 많은 노력을 했고, 그것들이 어느 정도 나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본다.

우선순위를 잘 세우지 못하고 체계적인 정리가 어렵다면 그걸 조금 더 잘 할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도움이 될만한 툴을 연구했다.

약을 계속, 꾸준히 먹어야 하는 만성질환자인데 약 먹는걸 자꾸 잊어버리거나 먹었는지 아닌지 헷갈린다면, 어떻게 표시를 해 두거나 안 까먹을 방법이 없을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스스로 어떠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이만큼이나 생각을 바꾸어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한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던 간호사 지인이 말했다.

당시는 전 국민의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고, 지인은 근무하는 병원의 백신 접종 센터에서 일하는 중이는데, 백신을 맞으러 오는 사람들을 체크하는게 종종 너무 번거롭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연령대에 무관하게 사람들은 자신이 먹고 있는 약이나 받고 있는 치료, 받았던 여러 병원 치료의 이력 같은 것들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제 대부분은 백신을 최소 2차까지는 다 맞았을테니, 다들 백신을 맞을 때에 앓고 있는 병이나 복용 중인 약, 최근에 받은 수술이나 시술, 겪었던 증상, 갖고 있는 알레르기나 알레르기 경험 등등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적고 체크하는 문진표를 작성해 보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적었지만 다시 질문을 받거나, 잘못된 기입이라고 정정을 요청 받는 등의 차질을 겪었던 사람이 있다면 바로 지인의 고민과 맞닿은 사람이다.




우리 둘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1. 대중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병원의 전산은 이어져있지 않아서 환자 본인이 말을 해야 한다.

2. 만성질환자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그들을 모두 병원에서 밀접 케어하기는 어렵다.

3. 만성질환자는 생활이 힘들 정도의 중증이 아니라면 아프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4. 본인이 먹는 약이나 받고 있는 치료의 명칭, 시행한 기간 등의 정보를 사람들은 좀처럼 신경 쓰지 않는다.

5. 병원의 의료진과 일반 대중의 언어가 서로 달라서 신경 써서 전달하려 해도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환자가 자가관리를 한 것이 의료진과의 소통수단으로도 사용될수 있는 툴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걸 좀 만들어보려고요."


"같이 만들어요. 재밌겠다."


그렇게 즉석에서 2인 구성의 사업팀이 만들어졌다.

나에게도 밀접한 주제이고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지던 아이템이었기 때문인지, 머릿속에 큰 틀이 척척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청년 창업 같은 것이 시작되는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이미지인지는 언젠가 글에서 밝혀질것이다.



우연이었다.

우연히 곁에 있던 지인, 우연히 발견한 아이디어, 우연히 솟아났던 의욕.


하지만 이렇게 나타난 계기를 반드시 잡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나이의 앞자리가 3이 된 때, 그러나 아직 앞자리 2을 지키고 있을 때 만난 새로운 일이었다.


잘 해낸다면 내 삶에도 변화가 생기고, 더 활력 있는 나날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붙잡고, 먼저 시작했다.


하던 것을 유지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했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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