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too lazy to get married!
나와 M은 30대 중반의 동갑내기 커플이다.
알고 지낸 지는 14년, 연애는 9년, 동거한 지는 2년이 넘었다.
현재 경기도의 D 신도시에서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오랜 연애 기간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자주 받는다.
왜 결혼 안 해?
사실 나와 M은 서로를 이미 부부라고 여긴 지 꽤 됐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거나 서류에 사인을 하지 않았을 뿐.
문제는 어떤 곳에서는 부부로,
어떤 곳에서는 약혼한 사이로,
또 어떤 곳에서는 동거하는 연인 사이로
우리를 산발적으로 소개하게 된다는 거다.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않은 탓에
우리의 관계에 대해 구구절절한 설명을 남들에게 해야 할 필요가 종종 생기곤 한다.
부부라 함은 결혼식 또는 혼인신고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연애 중이라기엔 부부 같고,
부부라기엔 어딘가 불완전하다고 해야 하나?
누군가 나의 관계 상태에 대해 물었을 때,
"남자친구 있어요.", "근데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곧 결혼할 예정이에요.", "남자친구랑 동거 중이에요.", "약혼자랑 미리 살고 있어요.", "결혼했어요."
어떤 단어들을 선택해 조합하느냐에 따라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이 미세하게 달라진다고 느꼈다.
별거 아닌데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부부’라고 말하면,
“결혼한 지 얼마나 됐어요?”
‘약혼한 사이’라고 말하면,
“결혼식은 언제 해요?”
‘동거하는 사이’라고 말하면,
아직 서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커플인가 보다 여기는 것 같은 뉘앙스.
"손 잡고 식장 들어갈 때까지 남녀관계는 아무도 모르는 건데, 그러다 헤어지면 여자만 손해야."
라는 말도 들어봤다. 가끔 이런 건 상처가 된다.
누군가에게 우리의 관계를 굳이 설득할 필요는 없으니까.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요즘 많이들 그렇듯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결혼을 한다면 M이랑 하겠구나‘ 하는 직감은 사귄 지 2-3개월 만에 들었지만.
특히, 결혼식이라는 이 부담스러운 행사를 위해 거쳐야 할 절차들이 나는 버겁게 느껴졌다.
휘황찬란한 결혼식을 올리려는 건 아니지만,
가볍게 스몰웨딩을 선택한다 해도 말이 스몰이지
일단 사람들을 결혼 행사에 초대했으면 어찌 됐든 신경 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에겐 낯선, 부모님의 손님들이나 평소 왕래가 거의 없던 친인척을 내 결혼식에 초대한다는 게
왜 이리도 어렵게 느껴지는지. 특히, 스드메 과정은 내 성격과 맞지도 않을뿐더러
버진로드라 불리는 그 길을 예쁘게 보이며 걸어 나가야 한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이 준 청첩장은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두고
신랑, 신부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한다.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주책바가지처럼 눈물 흘리는 사람 중 하나가 나다.
그렇다. 결혼식 자체는 잘못이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결혼식이나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아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서로 함께하기로 했다면 부부 아닌가?
- 나: 결혼이란 건 뭘까?
- M: 부부라는 공식 인증 라벨을 받을 수 있다는 거 아닐까?
M이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 나: 그거 때문에 결혼하기엔 우린 너무 게으른 것 같아.
- M: 우리가 좀 게으르긴 해.
- 나: 남들에게 우리 관계를 굳이 설명하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너랑 내가 지금 이렇게 좋은데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이야.
- M: 맞아.
게으른 우리는 그렇게 인증받지 못한 채 하루를 또 함께 보내지만,
나와 M은 함께 만들고 싶은 우리만의 결혼과 가족이라는 것에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