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없는 결혼을 위해
연애한 지 8년 만에 상견례를 하게 됐다.
이 만남의 목표는 '결혼식 없는 결혼'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연애하는 동안 'NO 결혼식'을 계속 외쳐왔건만,
양가 부모님은 은근히 상대 부모가 반대해 주길 바라고 계셨다.
"우리는 괜찮은데... 그쪽 부모님들은 아닐걸?"
이제 실전의 시간이 왔다.
쐐기를 박아야 한다!
PPT를 만들어서 발표하자!
나와 M은 파워포인트를 켰다. 아주 비장하게.
회사의 중요한 성과 보고서처럼
결혼식 없는 결혼을 위한 ppt를 만들기 시작했다.
부모님들에게 우리만의 결혼 플랜을 소개해야만 했다.
그 플랜이란 결혼식을 하지 않는 대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것!
우리끼리 혼인 서약하고,
맛난 거 먹고, 바닷가에서 춤도 추면서
한 가족이 된 걸 축하하자! 어때?
상견례 당일,
식사가 한창 무르익어갈 때쯤,
우리는 주섬주섬 노트북을 꺼내 밥상 위에 올렸다.
모두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표정들이셨다.
- 엄마 : 노트북을 왜 가져왔나 했더니, 무슨 목적이 있었나 보네?
- 나 : 흠, 앞으로의 결혼 계획에 관해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타이틀 : 결혼 계획 발표
짝짝짝! 어색한 박수소리가 나왔다.
2. 연애 히스토리
나와 M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했다.
우리가 어떻게, 어디서, 얼마나 만났는지… 풋풋했던 시절로 분위기를 워밍업 해주었다.
연애할 때의 사진들을 쭉 돌아보며 우리의 첫 만남에 대해, 우리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 했다.
‘대학교에서 같은 전공 수업을 듣다가
친구로 5년을 지냈고,
졸업 후에 눈이 맞아 현재 8년째 연애 중‘
- M의 엄마 : 어머, 너네 8년이나 됐니?
다정해 보이는 우리의 연애 사진들을 흐뭇하게 바라봐주셨다. 사실 연애 이야기를 부모님한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한 적이 없다보니 이번 기회에 한번 정리를 해드린 셈인데… 좋아하셨다!
3. M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M을 포착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M을 좋아하는 이유,
M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면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보는 M에 대해 이야기했다.
4. 나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M이 보는 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서로에 대한 마음과 진심이 부모님들에게 전달되었던 것 같아 좋았다.
5. 선포 : 결혼식 없는 결혼!
훈훈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결혼식 없는 결혼'이 튀어나오자 순간 부모님들이 웃음을 터뜨리셨다.
결혼식 대신 해외로 웨딩 여행을 갈 거라는 선포와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드렸다.
6. 환상심기
우리가 하고 싶은 우리만의 결혼식을 설득하기 위해
최대한 아름답고 낭만적인 해외 바닷가 스몰 웨딩 사진을 보여드렸다.
또한, 데스티네이션 웨딩, 웨딩문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설명드렸다.
"해외로 가서 우리끼리 바닷가에서 소소한 식을 올리고,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음악에 맞춰 춤추며 서약할 거예요!"
7. 밑밥 던지기
웨딩 여행의 후보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후보지는 발리, 하와이 같이 여유 있고 평온한 휴양지로 선택할 예정"
"다만, 비행시간이 너무 길면 힘드실 수 있으니 후보지를 더 찾아볼게요!"
*비행시간: 발리: 7시간 10분, 하와이: 7시간 45분
"웨딩 여행은 내년 초, 기간은 4박 5일 정도"
토론의 시간이 되지 않도록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한, 여행 옵션에 대해서는 최대한 열린 결말로 마무리 지었다.
자칫하다가 서로 의견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 괜히 기분만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그때, "이렇게만 하기에는 좀..."이라는 말이 나왔고,
우리는 바로 "잠시만요! 그럴 줄 알고~" 하며,
한국에서 애프터 파티를 열겠다고 말씀드렸다.
식사 자리 겸 손님들 초대해서 함께 즐 길 수 있는 이벤트를 열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부모님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우리 엄마와 M의 엄마가 의견을 냈다.
(집 안에서 결정권이 거의 없는 아빠들은 미소만 지을 뿐)
- 엄마 : 아... M의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찬성입니다.
우리 엄마가 세게 나와서 순간 나는 긴장했다.
- M의 엄마 : 아... 그게... 저도 뭐 반대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요.
M도 나도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나 두 분 논쟁이라도 하시는 건 아니겠지 하며 조금 긴장했다.
- M의 엄마 : 청첩장 같은 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집 안 어르신들이 M이 언제 결혼하는지 궁금해하시는데, 그래도 공식적으로 '결혼합니다'라고 보여드릴 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 M의 아빠 : 외국에서 한다 요 한 줄이라도 들어가면 괜찮지 않을까요?
휴, 다행이다!
- 나 & M : 좋은 의견 감사드려요! 적극 반영하겠습니다(청첩장 정도야!)
해외라도 참석하겠다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에서 하는 애프터 파티 때 친지들도 초대할 수 있는지 등 Q&A 시간이 잠시 이어졌지만,
차차 고민하는 걸로 하고 다행히 PPT를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럼 슬슬 여행 준비를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