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일도, 슬펐던 일도
요즘은 본격적으로 일을 하지 않아 시간적인 여유가 좀 있다. 시간이 좀 생긴 김에 회사에서 요구하는 영어 말하기 자격증을 미리 따야겠다는 나름의 건설적인 계획을 세웠다.
시험은 틀 안에서 잘할 수 있는 요령을 익히면 들이는 시간 대비 많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유튜브로 시험을 미리 쳐 본 사람들이나 강사들이 주는 팁에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내가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을 단기간에 합격한 사람들의 영상을 찾아봤다. 그랬더니 녹음을 많이 해보고 그걸 다시 들어보면서 말하는 습관이나 어투 등을 바꾸어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자격증에 관련하여 추천받은 책을 한번 쭉 읽어보고 드디어 녹음을 하며 연습할 시간이 되었다. 핸드폰을 꺼내 녹음 앱을 켰다. 그런데 5년 전 녹음파일이 들어있었다. 이름이 너무 헷갈릴 것 같아서 파일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일이 너무 오래되긴 했지만 혹시나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을 수 있어서 내용을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 녹음 파일에는 나와 당시 팀장의 대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 팀장은 굉장히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어서 기분 좋을 때와 기분 나쁠 때가 참 달랐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심하게 폭언을 하기도 했는데, 아마 그때 그 사람의 말을 증거로 남겨두기 위해 녹음을 했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내용 자체는 별다른 게 없었다. 피식하고 웃고는 그 파일을 지웠다.
두 번째 파일은 심리상담사와 나와의 대화 내용이었다. 그때 회사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던 나는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아보았다. 회사 밖에서 받는 상담이었기 때문에 비용이 꽤나 비쌌고, 그래서 상담을 좀 더 알차게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상담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담 내용을 녹취했고, 당시에는 집에 가서 한번 더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팀을 옮기게 되면서 자연스레 이 부분도 상쇄가 되었다. 녹음 파일을 지웠다.
녹음으로 생생히 남겨져있던 당시의 상황을 들어보니 참 어려웠겠다 싶었다. 그런데 생각이 여기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금은 그 모든 세월을 다 지나왔고,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들과의 접점은 사라졌다. 물론 그 사람들과의 인연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내 삶에 어려움은 늘 있었다. 하지만 내 삶을 잠식할 것처럼 나를 옥죄었던 그 일들은 지금 모두 내 곁에 없다.
왜 힘든 일들만 있었겠는가. 좋은 일도 있었다. 첫 직장에서 처음으로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용돈도 드렸고, 동기들이랑 같이 여행도 갔다. 나 혼자라면 하지 못했을 업무들도 해냈고, 좋은 선배들과 리더들을 만나 격려받으며 일도 해나갔다. 승진도 했다. 이 모든 일들도, 그러나, 모두 지나갔다. 영원히 행복할 수는 없었다. 행복함 뒤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곤 했다.
내 삶에는 영원한 행복이나 불행은 없었다. 모두 다 나를 통과했다. 어려운 일이라도 힘든 일이라도 그걸 견디어 내면 더 나은 내가 될 수도 있었다. 좋은 일은 언제나 나를 좋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우쭐함에 젖어 추해지기도 했다. 돌아보니 중요한 건 그 일들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와 자세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는 좀 더 무던하게 이런 일들을 받아들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