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단절된 여섯 시간의 기록
넷플릭스에 비행기 안에서 볼 만한 영화가 다 다운됐나 확인하고, 남편과 곧 출발한다고 다녀오겠다고 연락을 한다. 습관적으로 네이버 창을 열어 이리 저리 둘러본다.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 비장한 마음으로 핸드폰 우측을 둘째 손가락으로 드래그한다. 그리고 사선으로 쭉 움직여본다. 비행기 모양의 아이콘을 누른다. 전봇대 모양의 아이콘에 불이 꺼지고, 비행기에 노란 불이 켜진다.
바빴던 핸드폰이 잠깐 쉬면서 충전을 하는 시간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내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다운받아온 영화를 보다 지루해질 때쯤 애써 가지고 온 책을 펴고 몇 장을 읽는다. 이때 책을 읽으면 정말 집중이 잘 된다. 비행기에서 책을 읽을 땐 천천히 읽으며 메모도 한다. 메모를 하다 보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면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다른 종이에 써 놓거나 핸드폰을 열어 메모를 남긴다. 잊지 않기 위해서다.
깜빡 잠이 들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불이 켜진다. 승무원들이 바빠졌다. 식사시간이다. 공항에서 충분히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음식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고파진다. 지난번 출장 때 특별 기내식을 시켜봤는데 나름 재미가 있었다. 음식이 가장 빨리 나오는 점도 좋다. 이번에는 기내 특별식으로 글루텐프리식을 시켜봤다. 닭고기 요리가 나왔는데 별 맛은 없지만 속이 좀 편안한 느낌이다. 같이 나오는 빵도 좀 특이하다. 그렇게 한참을 먹고 있는데 옆에 앉은 외국인 승객. 아니 국적이 다른 승객들이 승무원에게 물어봤다.
“채식 식단은 없나요?”
아뿔싸. 이 항공사는 엄청나게 다양한 채식 기내식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분들은 그걸 사전에 신청하질 못했다. 승무원이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고.. 어쩌죠. 저희는 미리 신청을 해야만 특별 기내식을 드려요.”
안타까웠다. 에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내 밥을 좀 더 많이 남겨놓을걸.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아직 먹지 않고 있던 과일을 좀 나누어 주었다. 승무원들도 신경이 쓰였는지 비즈니스석 간식으로 나가는 것 같이 보이는 과일들을 가지고 와서 챙겨주었다. 옆자리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 채식 기내식 종류가 정말 많은데 너무 아쉬워요. 저도 이거 미리 신청해서 다른 사람들이랑 다른 기내식 받은 거예요.”
“그러게요. 다른 사람이 대신 항공권을 발권해 주는 바람에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 몰랐어요. “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장실도 다녀온다. 건조해지지 않게 로션도 바르고 립밤도 한 번 발라준다.
영화를 보다가 피곤하면 조금 더 잔다. 비행기에선 자는 게 최고다. 정신을 차려보니 입이 말라있다. 비행기에서 쓰면 좋다던 가습마스크인가 하는 걸 다음 출장부턴 잘 챙겨봐야겠다. 물을 조금 마신다.
어느새 기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금 후면 공항이란다. 현재 시간은 몇 시 몇 분이고, 자기 항공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한다. 즐거운 여행 되시라고. 다음번에 또 뵙길 바란다고 한다.
오. 다시 문명과의 만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