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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코치 Jan 14. 2022

그녀의 부고, 나의 두려움

세상을 떠난 벗에게 바치는 글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면 식탁 위에는 지난밤 가족들이 사용한 컵과 다 마시고 난 요구르트병, 바나나 껍질 등이 널브러져 있다. 거실과 식탁 위에 너저분하게 널려져 있는 것들을 치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가족들의 식사 준비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한숨을 돌리며 폰을 집어 든다.


“안녕하세요 신oo님 장남 김oo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곁에 있을 줄만 알았던 신oo님이  조금 갑작스럽게 별세하시어 삼가 알립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지?


순간 어리둥절하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신oo 샘이다.


신샘이 돌아가셨다니, 믿기지 않는다. 몇 달 전에 그녀의 직장 근처에 가게 되어 안부 톡을 나눴었다.

-저 근처에 왔다가 oo샘 생각나서 연락드려요.


카톡의 1이 사라지고 20여 분이 지난 후에야 그녀에게 답이 왔다.


‘네, 저 지금 병가 중이에요.’


순간 왼쪽 가슴 쪽이 따끔해지며 움찔하다. 그리고 가슴 중앙까지 둔탁한 느낌이 펴졌다.

자세히 물으면 안 될 것 같고 ‘별일 아니겠지’라는 마음으로 답을 남긴다.


-아 그러시구나. 그럼 건강한 모습으로 봬요


그녀와는 7년 전에 함께 명상했고, 직장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고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다.

모래가 마침 그녀 생일이라서 축하도 하고 안부도 물어보려 했는데 부고 소식을 받게 되다니…….

충격에 멍하게 앉아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무슨 일이 있냐고 말을 건넨다.


"oo샘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어. 

가끔 차도 마시고 밥도 먹으며 친하게 지낸 분인데......"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편과 아이들의 아침을 챙겨주며 바쁜 일상으로 돌아간다.


혼자라도 조문을 갈지, 부의금만 보낼지 결정을 하지 못한 채 어느새 이틀이 지나고 발인 날이 되었다.

눈을 뜨자마자 oo샘이 떠올라 아드님 계좌로 부의금을 보낸다. 고인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서 알지도 못할 텐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 남은 가족에게 당신의 아내가, 그리고 엄마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온라인 부고장에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경옥샘의 글이 보인다.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나도 조문 글을 남기고 거실로 나와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창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구름이 잔뜩 끼어 아침인데도 어둡다.

자신의 생일날, 한 줌 가루가 되어 돌아가는 그녀를 배웅이라도 하는 듯하다.

내 마음도 처지고 미뤄두었던 슬픔이 밀려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1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죽음은 여전히 나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 지천명이라 불리는 쉰 살에 접어들어서인지 나보다 몇 살 많은 언니라서 그런지 oo샘의 부고는 죽음을 내 삶의 경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예기치 않은 부고장처럼 내일 당장 죽음이 나를 찾아올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두려움이 가슴을 죄어오듯 엄습하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가족들을 챙겨 보내고 경옥샘에게 전화를 건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나는 어젯밤에 혼자 조문 다녀왔어요. oo가 당장 달려와 반겨줄 것 같은데 사진 속에서 웃고만 있어서 너 왜 그러고 웃고만 있냐고 한 참 원망하며 울고 왔어요. 사는 동안 내내 남편과 자식 걱정하고 뒷바라지만 하더니 이렇게 허무하게 갔네요. 가보니 남편과 아들들은 너무 말끔하고 귀공자처럼 부티가 나더라고요. 잠을 못 자면 푸석푸석할 텐데 그런 기색 없이 얼굴도 너무 뽀얗고 말쑥해서 놀랐어요. oo만 억울하죠. 직장 다니는 것도 너무 싫어해서 내년에 퇴직하면 이제 좀 쉰다며 좋아했는데 쉬지도 못하고 평생 일만 하다 갔어요. 직장 동료들이 보고도 자기 거치지 않고 상사에게 직접 하고, 점심도 자기들끼리 먹고 가서 오랫동안 힘들어했었거든요."


경옥샘을 통해 전해 들은 그간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서글퍼서 눈물이 났다.


“몇 달 전에 통화했는데 항암치료 후에 검사받고 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칼바람이 느껴졌다며 울더라고. 따듯한 위로도 받지 못한 것 같아요. 죽음을 앞두고 밤마다 혼자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파요. 생전에 만나서 위로해 주지 못해 후회돼요. 치료하면 나을 거라고 해서 그럴 줄 알았어요.”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더욱 메어왔다.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함께 죽음을 앞두고 느꼈을 두려움은 어떠했을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고 몸에 긴장감이 느껴지며 머리가 하얗게 된다. 머릿속이 암전 상태에서 가끔 번쩍번쩍 불빛이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oo샘의 부고는 함께 알던 많은 지인 중 나와 경옥샘에게만 전달되었다. 최근에 연락이 있던 사람에게만 알린 것인지 아니면 oo샘이 생전에 당신의 부고를 알릴 사람을 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oo샘이 생전에 정했다면 그녀는 그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내 이름을 본 순간 나는 그녀에게 어떤 사람으로 떠올랐을까?

그 순간을 떠올리니 가슴이 아려온다.


그동안 애쓰며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냐고, 수고가 정말 많았다고, 따듯한 위로의 말 한마디 전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에 사무친다.


지난해 봄 점심시간 그녀의 직장 앞에서 경옥샘과 함께 먹었던 따듯한 샤브샤브 국물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울컥 올라온다.


“미자샘, 하늘나라에서는 평안하길 바라요. 미자샘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저는 즐겁고 행복했어요. 소중한 만남을 선물로 주셔서 감사해요.”


© brett_jordan, 출처 Unsplash


나는 누구에게 부고를 알리고 싶을까?

그리고 나는 죽음을 맞는 순간 어떤 모습이길 원하나?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주는 엄청난 무게감에 삶은 상대적으로 가벼워진다.

돌아가신 엄마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백 년도 살지 못하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걱정하며 살았구나.”


그동안 참 많은 두려움을 품고 살았다. 두려움은 나와 가장 익숙하고 친하게 지낸 감정이다.

거부, 거절, 비난, 웃음거리, 실수, 실패, 잘못된 결정, 새로운 것, 진정한 감정을 내보이는 것, 관계가 끊어지는 것,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까,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등 두려움의 대상도 가지가지다.


그리고 두려움은 내 행동을 제한한다.

그런데 지인의 부고를 접하고 내 안에서는 이런 질문이 들린다.


'그래서 뭐? 그러면 어때?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아?'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에 돌아서지 않고, 경계를 넘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삶을 후회 없이 즐겼노라”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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