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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를 멈춘 이유

'딩딩대학'을 시작한 이유 ( MBC 딩딩대학 염규현 )

by 염띠

기자 시절, 전문가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에 나는 관련 분야 최신 논문이나 외신 기사를 습관적으로 검색하고는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취재했다고 자랑삼아 늘어놓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그런 사전 작업은 더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한 목적보다는 전문가와의 관계 설정을 위한 목적이 더 컸던 것 같다. 좋게 말해 관계 설정이지 비틀어 보면 일종의 '기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 전문가와 미리 공유한 질문 외에 추가로 던질 돌발 질문거리를 이런 식으로 몰래 챙기고는 했던 것이다.


“교수님, 혹시 오늘 아침 월스트리트저널 1면 기사 보셨나요?”


예를 들어, 어느 경제학 교수와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 전문가는 대체로 그런 질문엔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무리 해당 분야에 해박한 전문가라도 그날 나온 모든 뉴스나 팩트를 업데이트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허를 찌르는 것이다. 이런 경우, 기자가 자연스럽게 현안을 업데이트해주면서 질문을 풀어가면, 전문가가 기자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인터뷰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뭔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면서 입체적인 인터뷰를 한다는 느낌을 나름대로 받을 수 있었다. 기싸움에서 선전한 기분 말이다.



" 교수님! 혹시 월스트리트 저널 1면에 나온 기사 보셨나요? " 허세와 구분하기 어려운 기싸움을 벌였던 적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업데이트의 힘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보다 적게 아는 사람, 나만큼 아는 사람,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 이렇게 세부류로 나눌 수 있다. 나보다 적게 아는 사람에게는 그냥 기본 정보만 알려줘도 충분하다. 그 자체만으로도 효능감을 느낀다. 그리고 나만큼 아는 사람에게는 기본 정보에서 한발 더 나아간 통찰을 제공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통찰을 취재하는 것은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에 물어 물어서 어떻게든 노력하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때로는 길 위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통찰을 얻기도 했다.



문제는 맨 마지막 부류다. 이미 나보다 많이 알고, 통찰력까지 가진 사람에게는 무엇을 줘야 할까? 어떤 정보에 효능감을 느낄까? 바로 이럴 때야말로 업데이트가 유일한 무기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가지지 못한 시간을 써서 정보의 시간차 우위를 점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단독 기사가 아직도 힘을 갖는 이유일 것이고, 아무리 지식이 해박한 전문가들도 긴급 뉴스 속보만큼은 귀를 기울이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나는 비록 단독 기사는 쓰지 못했지만 그렇게 시간을 더 써서 업데이트로 버텨왔던 것 같다.



업데이트는 참으로 쉽고도 어렵다. 때로는 인내심도 필요하고.



그러나, 업데이트는 수명이 짧다.


업데이트는 분명 모든 사람을 주목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인 무기지만, 그 경쟁력은 한계가 분명하다. 시한부라는 게 문제다. 아무리 참신한 업데이트라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처럼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신문 기사야 그나마 줄글이라도 남아 기자에게 문학적 성취라도 남겨줄 수 있는데 특히, 방송 뉴스는 바로 다음 날만 되어도 바로 수명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료로서 가치는 차치하고서라도 정말이지 뉴스는 유통기한이 짧아도 너무 짧다. 심지어, 날씨 기사나 주식 시황 기사 같은 건 불과 몇 시간 만에 수명을 다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전파를 타고 휘리릭 증발하는 기분까지 든다. 이렇듯 손에 잡히지 않는 업데이트와 사투를 벌이며, 1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수명이 긴 콘텐츠를 남기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래서, 13년 만에 업데이트를 멈췄다.


지난해 MBC에서 사내벤처를 모집한다고 했을 때, 마음속에서 창업의 욕망이 들끓었던 이유는 일확천금도 퇴사도 아니었다. 바로 업데이트를 멈추고, 이젠 좀 수명이 긴 콘텐츠를 해보는 것.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바로, 이 꿈 때문이었다. 더 이상, 시간차 경쟁력이 아니라 콘텐츠 그 자체만으로 진검승부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VC들이 스타트업 투자를 결정할 때, 창업자의 진정성에 유독 주목한다고 하는데, 돌이켜 보면 나의 이 간절한 욕망이 심사위원들에게 오롯이 전달되었던 것 같다. 우리 팀은 지난해 사내벤처 경연에서 1등을 했고, 3억 원의 창업 자금을 투자받아 ‘초딩 중딩도 이해할 수 있는 교양 수업’ 지식 채널 〈딩딩대학〉을 1월에 설립했다.




그렇게, 만난 세상은 콜로세움이었다.


업데이트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빨리 앞질러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먼저 검색해서 먼저 정리한 뒤에 먼저 설명해주면 그걸로 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내 비슷한 정보들이 쏟아지긴 하지만 어차피 모두가 곧 증발돼 사라지니 나는 그저 또 다음 이야깃거리를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수명이 긴 이른바 ‘에버그린’ 콘텐츠를 만들려고 보니 그만 숨이 턱 막혀오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콘텐츠의 수명이 길어진다는 건 나만 해당하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만든 콘텐츠뿐 아니라 과거부터 무수히 업력을 쌓아온 강자들의 콘텐츠 또한 죽지 않고, 눈을 시퍼렇게 뜨고 쟁쟁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쟁자들의 콘텐츠도 죽지 않고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나는 콜로세움에 던져진 신참 검투사처럼 그렇게 눈앞의 수많은 맹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업데이트가 지도의 영역을 넓히며 정글을 헤치고 나아가는 거라면, 그 반대의 세상은 이처럼 한정된 원형 경기장 안에 모두가 모여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관중이 소리를 지르며 그 경쟁을 바라보고 있다. 시시각각 늘고 주는 ‘좋아요’와 조회 수의 향연은 누가 승리했는지, 누가 또 무대에서 퇴장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래서, 쉴 새 없이 몽둥이를 휘두른 지난 6개월이었다. 지난 2월, 첫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한 채널에는 어느덧 200개가 넘는 콘텐츠가 쌓였고, 구독자 1만 명이라는 작은 반환점에 깃발을 꽂았다. 5명으로 시작한 직원 수도 어느덧 13명으로 늘어났다.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업데이트를 멈춘 세상은 온통 불확실성 투성이였다. 다른 한편으로, 불확실성은 나에게서 반복되는 일상을 완전히 제거해주었다. 내일, 다음 주, 다음 달, 내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울퉁불퉁한 삶이 얼마 만이었던가.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20대의 불안은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나는 지금 한쪽엔 니체, 그리고 한쪽엔 노자를 끼고,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나답게 살고 있다. 나답게 살아내고 있다. 이 치열한 원형경기장에서 과연 살아남게 될지 지금 알 수는 없다. 모든 게 불투명하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안다. 그것은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바로 도태된다는 것. 언제든 이 콜로세움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가는 곳마다 허공에 칼을 휘두르는 마음으로 이렇게 외친다.


“딩딩대학! 구독과 좋아요, 알림설정은 필수!”

* 본 원고는 방송기자연합회의 격월간지 <방송기자> 7,8월호 방송계 신문물에 실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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