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노는 동안 귀를 쫑긋 세우고 배웠습니다.
미국에서 아이들과 놀이터에 나갈 일이 많아질 무렵,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과 사소한 다툼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떤 말로 중재를 해야할지 정말 난감했다. 한국에 살았으면 "그러면 안 돼요. 사이좋게 놀자. 얘들아~" 라고 웃으며 말하며, 우리 아이도 보호하고 남의 아이에게도 상처주지 않게 잘 이야기 할 수 있었을 텐데...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던 나는 어떤 뉘앙스로 또는 어떤 표현으로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내가 하는 어줍쟎은 영어가 의도와는 다르게 강한 어조로 "하지마!!" 또는 "안 돼!" 이렇게 들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서 였다.
그래서 언젠가 부터 나는 놀이터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는 다른 엄마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다른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 듣고 따라하면 되겠지 싶었다.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또는 우리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어떤 말로 바로 잡아야 하는지 그런게 궁금했다.
꽤 오랜 기간 살펴보았지만 내가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은 대부분 남의 아이에게 주의를 주거나 안 된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가 놀이터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면 그 부모에게 가서 살짝 언질을 해서 부모가 자식을 타이르게 하지 남의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는 별로 듣지 못했다.
반대로 만약 내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거칠게 행동하면 부모들은 이렇게 외친다.
"Hands to yourself." (or " Hands on your body")
"Everything to youself."
"Play nicely"
"Share with your friends"
"Don't push him!"
이런 표현 뿐만이 아니다. 나는 내가 쓰던 대부분의 영어 표현을 놀이터에서 배웠다. 미국 사람들은 옆에 사람이 있으면 멀뚱하니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잠깐 만난 사람이더라도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이걸 Small talk이라고 한다) 놀이터 가장자리에 서 있는 어른들은 대부분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신데 아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서로 말을 걸기도 좋고, 대화거리가 있어 보통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일상의 대화에서 책에서는 배우기 힘든 문화를 배울 수 있었고, 그들의 예의를 배울 수 있었다.
워낙 영어실력이 비루해 정말 백짓장같은 상태로 미국에 가서 살아남기 위해 귀를 기울여 하나씩 표현을 익혀갔다. 아이 셋을 키우며 책상머리에 앉아 영어 공부할 정성도 시간도 없어서 귀로 듣고 입으로만 따라하며 배운 영어라 나는 지금도 내가 쓰는 말들의 정확한 철자를 잘 모른다. 우리도 외국인과 이야기 할 때 알아만 들으면 말 끝마다 틀린 말을 고쳐주지 않듯이 그들도 마찬가지 였다. 내 친구들은 대강 하는 내 영어도 적당히 이해만 되면 제대로 된 표현으로 고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 내 영어는 언젠가 부터 발전하지 않았다. 대충 뜻은 통하게 말은 하는데 이게 맞는 표현인지 자연스러운 표현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것에 궁금증을 갖고 답답함을 가질 무렵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한국에 와서 한 동안은 한국말 쓰니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영어는 들여다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지낸지 3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그나마 입으로만 쬐금 하던 영어도 머릿 속에서 희미해져 간다. 다시 미국에 놀러 가면 스타벅스에서 커피나 시켜먹을 수 있을까 싶다. 최근 우연히 'Sophie Ban'이라는 유튜버를 알게되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영어 선생님이시다. 미국에 살며 부딫히는 여러 상황들에 대해 영어를 알려주시는데, 내가 매일 겪던 상황들에서 쓰던 표현들을 다시 들으니 반갑기도 하고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도 한다. 미국 시절을 추억하며 출퇴근시간에 짬짬히 듣는 중이다. 얼른 코로나가 끝나 미국에 살던 동네 놀러가 놀이터 가장자리에서 친구들하고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