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거절하는 인사

by 락희

“너 친구들 괜찮을까?”

어젯밤 일본 미야기현에서 발생한 7.2 강도의 지진 뉴스를 친구를 통해 들었다. 지진 소식을 전한 친구는 내가 일본에서 살다 온 사실을 아는 친구였다. 나는 지진이 발생한 곳은 친구들이 사는 곳과도 멀고 내가 살았던 곳과도 거리가 멀다고 친구에게 설명했다. 오랜만에 듣는 재해로 인한 걱정이었다. 막상 일본에서 살 때도 이러한 질문들을 받곤 했지만 일본인에게 지진으로 인해 괜찮냐는 걱정은 들어본 적 없었다.


일본에 산다는 것은 지진에 익숙해지는 일이었다. 그만큼 자잘한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그만큼 복구도 빠르니까. 그러나, 복구가 빠르다고 해서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함이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처란 영원히 치유되지 않기도 하니까. 소중한 것은 잃는다는 것은 생명의 죽음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인간은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그런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지진에 익숙해지는 건 이런 아픔에 익숙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나는 한국의 대학으로 입학했다. 그렇게 떠난 일본에 난 다시 일을 하러 갔다. 난 계속 도망치는 인간이었고 고통을 피해 도망친거다. 그런데, 도쿄는 고통 그 자체였다. 불안한 인간은 어딜 가도 불안했다. 도망칠 구석 따위 없었다. 난 매일 레드불을 먹지 않고는 출근을 못 했고 답답한 날들이 지속되었다. 그저 유일한 낙은 시네마테크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뿐. 한국에서는 일할 때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것이 심했다면 일본에서는 말으로는 나타내지 않는 규범들이 힘들었다.


그때 아마 y짱이 없었다면 이겨내지 못했을 것 같다. 내가 도쿄에서 일을 할 때쯤 y짱도 도쿄에 갓 상경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돌아가기 싫다고 말하며, 아니 돌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이런 걱정들만, 밤새 주고받았다. 아마도 무언가를 이루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무언가는 그토록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면의 평안이나 작은 깨달음 같은 것이어도 충분한 것.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이 힘들었다.


먼저 도쿄를 떠난다고 말한 것은 y짱이었다. 돈 걱정하면서 좁은 방에 사는 게 숨 막히다고.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우리는 그때 스트레스성 위염에 시달렸고 진통제와 소화제를 달고 다녔다. y짱은 피부 알레르기까지 심해져, 병원에 들락날락하며 적은 알바비에 월세까지 남는 게 없었다. 난 y짱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고 고향에 돌아가면 병원에서 검사를 꼭 받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사실은 부럽기도 했다. 나는 떠나지 못하는 데, 쉽게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y짱이 말했다. 같이 가자고. 월세가 도쿄의 반도 안 한다고. 날 두고 가는 게 신경 쓰인다고. 일을 구하기는 도쿄보다 힘들겠지만, 아르바이트하면서 즐겁게 지내지 않겠느냐고. 그런 걱정을 듣는 데,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찾는 것은 도쿄에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버티고 버텼던 날들.



지금은 그때로부터 7년이 지났고 난 한국에서 영화를 찍고 y짱은 놀랍게도 도쿄에서 건축회사에 다녔다. 정확히 무슨 회사인지는 모르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멀쩡한 건물을 헐고 짓는 탓(?!)에 할 일이 많다고 y짱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작년에 올림픽이 미뤄지면서 y짱은 도쿄를 떠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난 그때도 y짱의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었는데, y짱은 나를 먼저 걱정해주었다. 영화를 찍기 힘든 환경이지 않냐고. 너의 건강을 챙기고 다시 만나자고. 나는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도 모르고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

y짱은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 친구들의 연락을 모두 끊었다. 몇 달간 일본인 친구들에게 그녀의 소식을 물었지만, 도쿄에 있지 않았냐는 말만 돌아왔다. 그녀가 내게 안녕을 물었을 때, 어떠한 마음이었을지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가 되지 않기를. 우리가 다시 만나기를. 바이러스가 진정되면 기억을 되살려 방학 때 갔던 y짱의 집에 찾아가 그녀의 얼굴을 보는 날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소중한 마음을 잃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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