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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엔 Sep 29. 2020

갑질 하는 회사는 나쁜 회사다?

회사 이야기 - 1. 회사 시스템

 96kg에서 88kg까지 빼는데 고작 4주 걸렸다. 그러나 '그걸 왜 네가 안 해'에서 '안'이라는 이 한 글자를 빼는데 4년이 걸렸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현재를 방황하고 있을 때 돈이라도 벌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지인의 소개로 모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그 회사는 전기회사로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에 전선과 전기설비를 설치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내 주 임무는 커피를 타며 전날 상사가 작성하지 않은 업무내용을 대신 작성하고 심지어 과장님이 몰고 간 회사차의 불법주차에 대한 경위서까지 대신 작성하는 업무를 도맡아 했다. 사실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군대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부조리함을 알지 못했고 더 열심히 커피를 타고 대필하고 칭찬받았다. 그러나 부조리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만족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열심히 회사생활 중에 드디어 내 밑으로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자라 한국문화를 잘 모르는 친구가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입사하자마자 원초적인 부분부터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식사자리에서 같이 먹는 반찬을 각자의 침이 묻은 젓가락이 닿기 전에 미리 빼놓는가 하며 같이 쓰는 컴퓨터로 뭔 작업을 시키면 마우스 청소는 물론 자판까소독한 후에 사용하곤 했다. 모두들 유난 떤다고 비난했고 그의 행동이 옳고 그른지를 파악도 하기 전에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조롱했다.


 그렇지만 나에게 그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모세와도 같았다. 그는 커피를 타도 자신의 것만 탔고 업무 협의서에 대신 작성하는 것은 거부했고 상사의 경위서를 대신 쓰는 것은 강하게 부정했다. 나는 그의 모든 행동이 옳고 그르다고 감히 판단은 못 하겠으나 경위서를 대신 쓰는 것은 명백히 그른 행동이다라고 깨달을 때쯤은 너무 늦었었고 나도 그들에 속해 있어 그가 등 떠밀려 퇴사할 땐 다음 타깃이 내가 될까 두려워  방관했다.


 하지만 회식마다 계속되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 준 이의 뒷담은 견딜 수가 없었고 술기운까지 겹쳐 조용히 꿈틀거렸다. "박 과장님 그가 살아온 환경이 아무리 달라도 이렇게 뒤에서 흉보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몇 날 며칠 뒷담 화하는 술자리 내내 머릿속에 있던 말을 꺼내 보였고 역시 나 같은 일개 사원이 윗물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어제까지 칭찬하던 팀장이며 과장 대리까지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내가 애초부터 맘에 안 들었대나 뭐래나... 내가 보기엔 그냥 약점만 보이면 무는 굶주린 이리 들 같았고 다음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양 같아 보여 안쓰럽기도 했다. 결국 난 퇴사를 각오하고 커피를 타지 않고 대필은 개나 줘버렸다. 그러니 다음 타깃이 될 양대리가 '네가 안 하면 이걸 누가 해?'라며 나를 제일 신나게 물었고 더는 싸우기도 싫어 이리 이빨을 지닌 양들 속에서 탈출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쩌겠는가.


 떠난 뒤로 나는 뒤도 안 보고 취업공부에 매진했다. 졸업 전에 다행히 모 기업에 취직을 했다. 취직하고 제일 놀라웠던 건 '왜 이걸 김사원이 해요?'였다. 그렇다 회사 내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사원인 내가 할 , 과장이 할  또는 개인이 할 , 팀이  일이 정해져 있어 눈치를 보며 남은 일을 내가 떠맡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실수로 인한 피해를 대처하는 방법도 달랐다. 전 회사에선 모든 일을 내가 떠안고 실수를 하면 책임자가 없어 결국 대신 일했던 내가 책임을 물게 되어 오히려 대신 일 시킨 사람한테 이렇게 밖에 못 하냐며 혼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현재는 신입 때 어쩔 수 없이  하는 실수 조차 내가 쓰면 대리가 확인하고 과장이 승인하고 고치고 차장이 다시 확인하는 구조로 큰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그럼 전 회사 사람이 나쁘고 이기적이어서 갑질 하고 군림하려 했던 걸까? 아니면 현 회사 사람이 다 천사라 이런 걸까? 둘 다 아니다 그냥 사측과 노측이 소통을 많이 나눴나정도 차이인 것 같다. 장유유서가 정서적으로 박힌 유교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직장상사가 걸레를 들으면 안절부절 못 하는 게 부하직원의 마음이다. 하물며 업무에서도 담당이 명확하지 않으면 부하직원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노하우가 많고 효율이 좋은 고급인력이 할 일을 실수가 잦은 저효율 인력으로 대신하니 회사 전체적으로 손해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회사 분위기는 안 좋아지고 시스템을 바꿔야 개선되는 문제를 역설적으로 다들 예민해져 이성적인 판단보단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밑에 사람을 더 쪼이고 갑질 하고, 밑에 사람은 갑질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 결국 제일 약하고 모르는 사람을 총알받이로 내세운다. 우린 체 게바라 같은 혁명가가 아니므로 절을 바꾸지 못하고 결국 새로 온 중이 절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담당 분배가 시스템적으로 잘 구축되어있는 집단에선 담당을 효율적으로 잘 나누기 위해 직원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므로 원활하게 대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 나는 불평불만 없이 부조리에 녹아  수동적인 일들만 했던 예전과 달리 회사에서 가장 많은 의견을 내고 불편함을 건의하는 능동적인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라는 옛말은 모든 회사에서 정말 옛말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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