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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엔 Oct 07. 2020

성 다른 보호자

역 이야기 - 1. 온양온천역

 "내일부터 그만 나와 원래에 두배 넣었어."

 2000년도쯤에 성인이 돼서 보육원을 나와 어릴 적 수학여행으로 좋은 기억이 있던 온양온천역으로 떠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선택은 신이 도왔던 한수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너무 늦어 근처 모텔에서 숙박을 해결하고 내일부터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잠을 청했으나 보육원에서 정든 동생들이며 친구들 생각에 뒤척이다 밤을 꼴딱 새웠다. 퇴실 시각이 다가오자 나는 헝클어진 머리만 대충 빗은 뒤 일자리를 찾으러 나갔다.


 오늘은 한 8군데쯤 돌았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며칠째 거절당해 지칠 만큼 지칠 때 그를 처음 만났다. 첫인상은 과묵하고 여유 있어 보였다. 가게는 깔끔은 하나 오래돼서 낡은 느낌은 청소로 숨길 순 없었다. 마찬가지로 보육원을 나오면서 제일 좋은 옷을 챙겨 입고 나왔지만 물려받은 옷이 아무리 좋아봐야 새것처럼 보이겠는가 그래서 딱 봐도 고아인걸 숨기지 못했나 보다 이 가게도 뭐 이런저런 같잖은 이유로 거절하겠지 그래도 상처 받지 말자라고 맘막었을때 사장님이 말했다. "가유" 나는 며칠째 내 옷차림이며 행색으로 인해 거절당한 게 서러워 결국 폭발했다. "내가 뭐 훔칠까 봐 그래요?", "나 같은 애들이 밥 사달라 하면 안타까워는 하면서, 내 주제에 감히 밥 좀 벌어먹겠다는 건 아니꼬운 거예요? 난 뭐 평생 동냥만 하면서 살아야 해요?" 속에 그동안 응어리진 것을 다 토해 냈을 때 황당한 얼굴로 있는 사장님을 봤다. 아무래도 쟤가 뭔 말하는 건가 했을 거다. 하지만 황당한 표정과 달리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이 가게에 취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만들어줬다.


 "동냥 같은 소리 허네 땅 파서 장사 혀? 돈 주고 사 먹어 그리고 경찰서가 코앞이여 훔치긴 뭘 훔친다 그려유" 느릿느릿 하지만 가볍지 않은 특유의 충청도 어투로 귀에 때려 박았다. 불쌍해하는 눈빛,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몸짓 등 나를 낮게 보는 감정에 익숙한 나는 처음으로 보통 인간 대 인간이 나누는 감정을 느껴봤다. 그러곤 처음 느껴본 감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나를 보호하듯 저 사람을 경계하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럼 왜 일 안 시켜주는 데요!?"  그러자 다시 느릿느릿 사장님이 말했다. "아니 짬뽕을 한 번도 안 만들어봤담서유 우리가 이래 봬도 암나 안 뽑아유 경력 우대여~ 경력 우대" 나는 빈틈을 찾아 반격했다. "경력 '우대'니까 경력자 없으면 나도 기회 있는 거죠? 꼭 전화 줘요!"하고 나왔다. 만약 이전 가게처럼 늘 받아온  차별적인 시각에서 온 거절이었다면 내가 먼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 다른 감정을 느꼈고 나쁘지 않았다. 그 후 더 이상 다른 곳을 알아보지 않고 연락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3일이 지났고 돈이 다 떨어져 갈 때쯤 연락이 왔다. "낼부터 나와봐유 그럼"


 10시 오픈이면 나는 늘 9시에 도착했다. 그러곤 사장님한테 처음에 느낀 동등한 대우를 다시 느끼고 싶어 말을 자꾸 걸었으나 평소 말이 없는 사장님은 단답이나 시답잖은 농담 한두 마디 정도 하시고는 일만 하셨다. 하루 몇 마디 안되지만 그 시간들이 너무 재밌고 즐거웠다. 그렇게 그동안 받아왔던 감정들이 미화되며 가슴 한편에 추억으로 보관할 만큼 희미해졌을 땐 나도 어느덧 사람 대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능숙해서 단골들하고 안부인사도 하며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는 50대쯤 돼 보이고 누가 봐도 부티가 나는 아줌마가 씩씩대며 나를 불렀다. 나는 심상치 않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를 부른 손님의 남편은 이 지역에서 알아주는 유지였고 그로 인해 가게며 땅이며 이 집안 땅을 안 밟고는 못 지나갈 정도였다. 사실 난 이 사모님과 인연이 있었다. 과거 공주로 온 지 얼마 안 돼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모텔에 들락날락거릴 때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아마 '타지에서 온 젊은 여자가 새벽에 술 마시고 (본 건 아니고 나도 들은 건데 아님 말고) 모텔에 들락날락거린다'는 교묘히 말 만 살짝 바꾼 소문을 널리 퍼뜨린 당사자이다. 내가 확신하는 이유는 돈이 어느 정도 모여 월세방을 구할 때 건물주로 잠시 대면한 적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공실이 많음에도 명확한 이유 없이 거절당했을 때 확신을 했다.


 "짬뽕 먹다 이 나가것어! 짬뽕에 뼈인지 돌인지 이 딴 게 여기에 왜 굴러 들어와 있는겨! 여기 10년 단골인데 너 들어오고 맛이며 위생이 달라진 것 같어!!" 나한테 얘기하는 건지 짬뽕을 말하는 건지 교묘하게 윽박지르는 걸 듣고 있을 때 나는 이제는 희미 해질 정도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다시금 세어 나와 비 맞은 강아지처럼 기가 죽어 고개를 팍 숙이고 죄송하다고 말하려던 찰나에 평소 말도 없는 사장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고개 들어!", 나는 놀래서 사장님 한 번 보고 사장님을 뚫어지게 노려보는 아줌마를 봤다. "아니 뼌지 돌인지 똥인지 뭐가 나온 건 죄송 혀 근데 사장을 찾을 것이지 직원을 잡긴 왜 잡는데유!", "그리고 맛이 바뀐 거면 딴 데 가유! 진짜로 맛이 바뀐 거면 알아서 망하게 냅둬유~ 언제부터 내 장사를 도와줬대유?" 라고 사장님은 나를 처음 봤을 때처럼 사람 대 사람으로 평등하게 대했다. 사장님의 이러한 태도는 평소 계급 꼭대기에 있어 대우받는 게 익숙한 사람에겐 예상치 못 한 상황이었고 "흠. 어디 두고봐유"하곤 생각보다 얌전하게 떠났다. 그 후 난 사장님께 감사하다고 했지만 사장님은 "도와준 거 아녀, 내가 할 일 한겨. 그리고 짬뽕도 내가 고 죄송도 사장인 내가 하는겨. 네가 하면 월권이여.'라고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시고는 또 말없이 일만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섭섭함을 느끼는 걸 보니 이제 나는 내가 사장님과 사람 대 사람 평등한 관계를 넘어 친구처럼 가깝고 소중한 사이가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공과 사를 지키며 몇 개월이 지났을 때 가게 앞이 웅성거렸습니다. '그동안 찾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부자 짬뽕-'


 "사장님!! 가게를 정리한 다뇨... 진짜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래도 5년을 넘게 일했는데 한마디 상의도 없이..." 말을 차마 맺지 못 한 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사장님은 여전했다. "그렇게 됐어. 다다음주면 가게는 문 닫을 거여. 너는 내일까지만 나와"라는 말을 듣고 나는 일도 마치지 않고 곧장 공원으로 가 한참을 울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원래 내가 살던 삶과 너무나도 다른 삶을 보여줬던 사람이라 더욱 애틋했던 걸까?', '다들 원래 이 정도 이별은 아무렇지도 않아하며 사는 건가?', '내가 친구 만들겠다고 감히 욕심을 부린 결과인가?' 해결책도 안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멀리서 사장님이 비닐봉지에 뭘 가득 담아 내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자! 쿨나우드! 이거 맞나 모르것네 영어라 알아볼 수가 있어야지" 내가 사장님한테 지나가는 말로 맛있다고 했던 맥주였고, 처음으로 나눈 사적인 대화였다. "참내 5년 넘은 직원한테 가게 정리한다고 말하는 건 까먹고 좋아하는 맥주 기억하는 건 또 뭐람..." 생일 때 선물 못 받은 아이마냥 툴툴거렸다. 각 2캔쯤 먹을 때 사장님이 정적을 깨고 입을 뗐다.

 "짬뽕이 오갈 때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음식이랴... 난 이 짬뽕으로 아들만 셋을 키웠어. 엄한 아빠였지. 엄마 없이 키운 티 안 내려고 더 혼내고 따뜻한 말 한번 못 해주고 그랬던 것 같어... 그래도 남자애들이라 그런지 어찌저찌 잘 크더라고 어색해서 할 말도 없지만 전화도 가끔 오고 용돈도 주는 거 보면 아주 못 키운 건 아닌 거 같어... 근데 자식뻘 되는 여자애는 더 어렵더라고 책도 읽고 인터넷에 물어봐서 배워도 몇십 년간 해오던 습관이란 게 있는데... 머리는 알겠는데 말이 안 나가는 걸 어뜩 혀.... 아참 내 정신 좀 봐 가게 문 열어 놓고 그냥 왔네 여기 뒷정리하고 내려와. 이거 봉투 받고..."

  사장님은 말하다 어색함을 느꼈는지 대충 말을 끊고 봉투만 남긴 채 내려가셨다. 봉투 안에는 내 월급에 2배 되는 현금 뭉치, 체크카드 한 장, 짤막한 쪽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쪽지에는 '매달 월급날이 용돈 날이여. 넉넉하진 않지만 대도시로 가서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어봐. 퇴직금이여 그리고 짬뽕 필요하면 한번 전화해보든가' 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곧장 대도시로 나가 대학교를 알아봤다. 보호자(?)가 매달 주는 용돈은 학비를 내기엔 넉넉하진 않지만 개인 생활비로 쓰기에는 적당했고 밥먹을땐 더 이상 단돈 500원에 메뉴를 바꾸는 일은 없어졌다. 그리고 매일 전활 걸어 '밥 먹는데 김치가 맛있어서 짬뽕이 필요하다는 둥, 아메리카노가 써서 필요하다는 둥' 별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하면 반응은 별로 없지만 부재중 한번 없이 내 얘기를 들어주곤 했다. 그렇게 특별하고 긴밀한 관계 속에서 오는 미묘한 감정교환에도 경계하며 스스로 벽을 치지 않는 게 익숙해질 때 나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됐고 내 스물여덟 평생 가장 행복하고 황홀한 날에 내 오른손엔 보호자가, 저 앞엔 반려자가 기다리며 나를 보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에서 아무런 조건, 대가 없이 지지해 주고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엄청난 행운일 정도로 어렵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만나게 된다. 나는 아쉽게도 대부분의 사람처럼 태어날 때 만나진 못 했다. 하지만 늦게라도 만났고 만약 나와 같은 사람을 본다면 신이 막 태어난 아이에겐 감당하기 큰 행운이라 인생 어딘가에 분명히 잘 놓아뒀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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