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래엔 Oct 13. 2020

못 뛰는 벼룩도 사실은 잘 뛸 수도...

사람 이야기 - 1. 이미지

 "역시 그럼 그렇지", "네가 공부를 한다고?", "쟤는 원래 저런 애야"

농담이든 아니든 우린 저 말을 한 번쯤 사용하거나 들어봤을 것이다.


 요즘 트렌드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게 대세긴 하나 정말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은 우선 내 주위엔 없는 것 같다. 그렇듯 우린 남을 신경 쓰고 받는 사회적 동물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그렇게 신경을 쓰다 보면 제멋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며 남 이미지를 만들어 주기도 나 스스로 만들어 내기도 하며 살고 있다.


 이미지가 형성될 때 남이 만들어준 이미지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깨기 힘들다. 예를 들자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달리기를 하면 반에선 중간 이상정도 하는 실력이고 수영은 반에서 져본 적이 없을 정도로 곧 잘할 정도로 운동을 못하진 않고 그냥 별로 안 좋아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운동을 못 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고 그 이미지를 만든 사람은 의외로 부모님이다.


 학교에 체육대회가 있어 온 가족이 온 날이었다. 내 동생은 평소에도 달리기며 축구며 운동을 좋아해 그날도 반에서 이곳저곳에 불려 나가며 대회를 즐겼었다. 그러다 친척들이 큰애는 왜 나가지 않냐라고 물을 때면 우리 부모님은 '얘는 운동을 못 해서...'라고 못을 박에 내가 변명을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나는 운동치가 돼버렸다. 그땐 어리기도 했고 운동을 못 하는 이미지라 굳이 좋아하지도 않는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단 생각에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할 게 없었다.


 문제는 수능 직후 운동으로 수영을 다닌다고 말했을 때였다. 그 자리엔 일가친척들이 다 모였었는데 운동에 대한 편견이 없던 나는 다이어트나 할 겸 수영을 다녀보겠다고 말했고 아빠는 친척들 다 있는 자리에서 "아니 돈 내고 허우적거리러 왜 가?"라며 악의 없는 농담을 던져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아빠는 분명 악의 없이 던졌으나  친척들 귓바퀴를 거쳐 혀로 나올 땐 가시가 달려 있어 맞았을 땐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아니 은재가 수영을 한다고?, 그냥 헬스나 하지 그랴?", "면허를 따던가". 운동에 대해 친척들이 생각하는 내 이미지를 한 번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순간 멍했고 바위같이 굳어진 내 이미지를 보고 계란이라도 던져야겠다며 말을 던졌다. "저 수영 잘해요"라는 말을 듣고 웃음바다가 되는 걸 보니 던진 건 계란이 아닌 탄성력 좋은 테니스 공이었나 보다 다시 돌아와 내 가슴을 명중시켰고 나는 무너졌다.


 '1년!' 어렸을 때 엄마가 무심코 한 말 '얘는 운동을 못 해서...'를 본격적으로 주워 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결과적으로 수능이 끝난 나는 수영을 다녔다. 첫날에 원래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물속에서 몸이 맘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호흡? 근력? 아니다 이미 낮은 원통 속에 갇혀 그 높이밖에 못 뛰는 벼룩처럼 나도 남들이 만든 이미지에 갇혀 정말 운동을 못 하는 애가 돼있었다. 그동안 남이 뭐라 하건 난 나 스스로를 믿으며 버텼다. 하지만 이젠 나조차도 날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잘했나?', '기억이 미화됐나.....?' 난 정말 갇힌 벼룩이 되고 있었다.


 '이야 좀만 하면 선수하겠는데?' 갇힌 원통의 뚜껑을 여는 전문가의 한 마디. 일반인이 무심코 닫은 뚜껑을 열 땐 전문가가 와야 겨우 열 수 있고 다시 이전처럼 뛰는 데 1년이 걸렸다. 결국 증명했고 '수영만은' 잘하는 애가 돼있었다. 맘 같아선 바위 같은 내 이미지를 부수고 싶지만 그러기엔 다른 실력들은 평범하거나 살짝 위 정도라 보여주면 장점은 바위 뒤에 숨고 단점은 극대화돼 희화화될게 뻔해 내가 던져 내가 맞을 테니스 공 같은 말들을 그냥 주머니에 넣고 수영만큼은 잘하는 애가 되기로 했다.


  예전에 과학책에서 벼룩에 관한 실험을 본 적이 있다. 실험 내용은 작은 원통에 벼룩을 가둬  놓고 며칠 두면 높이 뛰던 벼룩은 원통 높이밖에 못 뛴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과학자도 아니고 벼룩도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내가 그 벼룩을 본다면 "다시 이전처럼 뛰기 위해선 원통에 갇혀있던 시간의 몇십 배는 노력해야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뛸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마"라고 말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성 다른 보호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