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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엔 Oct 20. 2020

 대화 부족 1부_(편하게 해주는 불편한 사람)

회사 이야기 - 신입이 보는 상사

"몇 살이야?", "애인은?", "애인은 몇 살?", "결혼은 언제 하게?", "빨리하는 게 좋아!", "집은?", "무슨동?", "아버진 뭐 하시고?".......(중략)


 대화 호구들이 주로 하는 호구조사식의 대화이다. 아쉽지만 회사에 입사하면 제일 많이 들을 말이기도 하다.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 나의 개인정보들도 있지만 회사에서 제일 '을'인 내가 뭘 어쩌겠는가 성실히 대답을 준비해야지 그렇지만 내가 신입 땐 미처 준비도 못 한채 갑과 대면했다.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박성수입니다!"

첫 출근이라 30분 일찍 와버린 탓에 차장님과 단둘이 20여분을 보냈고 불편한 물음표로 맞아 죽기 전에 주임님 대리님 과장님 순으로 들어왔고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리님은 육아휴직으로 오늘까지 나오시고 주임님은 한 달간 교육을 가신다고 했고 교대근무를 안 하시는 과장님은 마주치기 어려웠다... 그렇다 난 아버지 뻘 되는 차장님과 꼼짝없이 단둘이 한 달을 보내야 된다.


 다음날이 왔다. 눈이 떠지자마자 갑갑했다. '흠... 아빠뻘이랑 단둘이라... 먼저 인사를... 아... 불편해...' 망한 시험 점수를 들고 집에 가는 느낌으로 회사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긴장 풀고 편하게 있어~", "혹시 초코바 좋아하나?", "죄송합니다. 견과류 알레르기가...", "아하 그렇구먼 음.. 알레르기..", "극복해보겠습니다.", "아 아니야 뭔 극복을 해" 이 짧은 대화가 끝난 후 차장님은 정적을 못 견디겠는지 담배를 피우러 가시고 나는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두어 시간 지나고 점심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고의 점심메뉴가 뭘까 고민하고 있었다. '초밥은 양이 좀 적겠지?, 그럼 파스타... 에이 아니야. 음... 뼈해장국은... 국물이 좀 튀려나? 오케이 제육볶음이다!' 메뉴를 정하고 숙제를 마친 마음으로 차장님을 기다렸으나 오시자마자 차장님은 찌개가 어떠냐 물으셨고 나는 찌개가 별로였지만 거절 못하고 원래 먹고 싶었던 것처럼 찌개 집으로 향했다. 찌개를 앞에 두고 차장님은 나에게 업무에 대한 노하우와 조언들도 아낌없이 하셨다. 그러나 신입인 내가 하는 일, 알아야 할 지식의 양이 찌개를 먹을 수 있게 끓일 시간을 넘지 못했다. 다시 정적이 있었고 나는 찌개가 빨리 익기 기다렸다.


 한 절반쯤 먹어을 때 차장님은 정적을 못 참으셨는지 다시 호구 조사를 시작하셨다. 아버지 직업, 어머니 나이, 차종, 아파트, 집안 등등하다가 물어볼 소재가 떨어질 때쯤 내 반지를 쓱 보고선 "결혼했다 했나?"라 하시며 여자 친구 이야기가 시작됐다. 평소 나와 내 여자 친구는 결혼에 대해 깊게 대화를 나눈 결과 결혼은 필수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게 답했다. "아니요 아직은 생각 없고 서로 결혼을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차장님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그럼 안 한다는 건가?", "아니 그 뜻이 아니라....", "(내 말을 끊으며) 아니 4년 사귀었으면 식만 올리면 되지... 빨리하는 게 좋아", "(아 말을 말자) 넵 알겠습니다." 나는 불편한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어 내 생각을 그만 보여주고 그의 장단에 맞추었다.


 예전에 훈련병 시절 부대에 대통령이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도청 위험 때문에 대통령을 주관자라 부르라고 했었나? 암튼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주관자랑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불편할 거라 생각했던 게 나의 오판이다. 현재 이 김치찌개 집에서 가치관이 너무 다른, 고작 이틀 본 사람에게 내 모든 신상정보를 파악한 당한 채 식사를 하는 게 더 불편했다. 


 이 대화 이후론 그는 20년 지기 내 친구보다 나를 더 안다듯이 대했다. 다행히도 심성 자체는 착하신 분이어서 편하게는 대해주시며 업무에 관해 이것저것 알려 주셨으나 업무처리 과정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스타일은 여러 가지 창을 띄워놓고 멀티태스킹을 하며 동시에 여러 함수를 써가며 약간씩 처리하였다. 하지만 차장님의 스타일은 그렇게 하면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 하나하나 정확하게 하는 걸 원하셨고 나는 과거 저 세대의 사람들과 대화를 실패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그냥 앞에서 대충 넵넵 거리곤 뒤에서 다시 내 방식대로 했다.


 그러던 중 결국 내방식을 고수하던 모습을 차장님께 들켰고 차장님은 "아직도 그 방식대로 하네?"라고 짧게 말하신 뒤 의외로 별말 없으셨다. 그날 난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하루 종일 눈치를 살폈고 마침내 불편한 기운이 차장님에게까지 미쳤나 보다 "박사원 오늘 저녁이나 할까?" 점심을 먹다가 기습했다. 얼떨결에 대답하고 혼자 혼내려나? 화내려나? 단둘이 회식이라니? 등등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고민했다. 그렇게 차장님은 회식자리에서 먼저 운을 뗐다. "내가 많이 불편하지?" 나는 술기운에 솔직하게 말했다. "네 조금 불편합니다." 그러자 차장님은 자기는 옛날 사람이고.... 등등 뻔한 얘기를 시작하셨고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적절한 타이밍에 대답만 기계처럼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이 사람하고 대화를 해봐야겠다 라고 생각이 드는 한마디를 하셨다.


 "나 좀 가르쳐 줄 수 있나?" 저 세대한테 들을 수 없던 말을 듣고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나는 과거에 저 세대들과 정말 많은 대화 했고, 의견을 표출했으며 결국 전부 실패했다. 예전 회사에서 회사 파일을 정리하는데 관행 어쩌고 하면서 '굳이 그런 잡일은 퇴근 후에 해!'라고 박박 우기셔서 4시에 업무가 끝나도 6시까지 쉬다가 6시부터 파일 정리하고 퇴근한 경험, 빠른 길을 알려줘도 네비보다 뛰어난 본인이 원래 알던 길이 아니었는지 큰소리치며 본인 길이 맞다고 해서 돌아가야 하는 낭비, 술은 권하진 않지만 잔 돌리기(본인이 마신 잔을 남에게 권하며 주고받는 술 문화)는 권하는 이상한 문화 등등 기분 나쁘지 않게 의견 표출을 했지만 전부 각각의 돼먹지도 않는 이유를 대며 거부당하는 걸 느꼈을 때 나는 귀 닫고 입 닫고 '네네' 거리며 지냈던 것 같다. 그렇게 저 세대는 대화가 아닌 웅변만 한다고 고정관념이 박히고 지냈었다.


 대화(의사소통) 즉 서로 말하고 듣고 이해하고 고치고 고쳐주는 아주 기본적인 시스템, 그렇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회를 당연하게 받이 게 되는 이상한 시스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내게 차장님의 '나도 배우고 싶다'는 한마디는 저 세대가 전부 그런 것은 아니구나 라며 고정관념이 약간은 허물어졌고 대화가 하고 싶어 졌다. "차장님 사실 저는 차장님 세대와의 대화에 선입견이 조금 있습니다. 제가 그들과 다른 의견을 제시했을 때 그들은 제 의견이 아닌 태도나 평소 행실을 등의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항목들 위주로 여론조작을 하며 제 의견이 무효화당한 것을 보며 많은 좌절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차장님과 생각이 달라도 제 의견 피력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과 같으실 거라 판단한 것에 죄송합니다."이라 말하자 차장님은 "그랬었군. 나도 어려웠어. 그리고 그들도 그럴 거야. 우린 대화를 배운 적이 없거든 까라면 까는 세상에서 30년을 살아왔어. 반대로 생각하면 그 방법을 30년 동안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지 근데 더 무서운 건 이제 나는 어디서부터 뭐가 잘 못 된 건지 모를 정도로 순응이 됐어. 자넨 아직 순응되기 전이니까 알 걸세. 뭐가 어떻게 잘 못 되었단 걸.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에게 항상 말해주게 만약 내가 잘 못 가고 있다면... 욕만 아니면 다 들어주겠네." 그는 진심이었다.


 나는 저 세대의 고정관념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저 말을 듣고 나도 반성하게 됐다. 그간에 그 세대와의 대화 실패를 이유로 지금 차장님에게도 같은 잣대로 시도도 안 해보고 귀 닫고 입 닫은 건 내가 싫어하던 그 세대들이 하는 짓과 매우 닮았었음을 발견했다. 지금 이 회식자리 대화가 아니었다면 나도 귀 닫은 그들처럼 됐을 거라 생각했고 그걸 알게 해 준 이 사람에게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 대화는 상호 소통이다 말하고 듣기다. 사실 다 알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이유로 다 그렇게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귀 그만 닫고 다 같이 대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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