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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엔 Nov 03. 2020

남들에게 조금 불친절해도 돼

사람 이야기 - 2. 감정의 양

 폰 바꾸셨네요? 네 두 달전쯤 바꿨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던 폰인지 받자마자 이름도 지어주고 기스날까 강화유리 필름을 붙여주고 케이스도 비싼 걸로 구매하고 내려놓을 때도 살포시 내려놓습니다.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죠. 근데 지금은... 막던져요 ㅋㅋㅋ

소중한 건데 왜 던지시는 거예요? 음... 소중은 하는데 글쎄요. 이게 편해요..


 TV 프로그램 '안녕0세요' 보다 보면 정말 다양한 고민들이 등장하고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사연도 등장한다. 하지만 난 그중에서 가족에겐 소홀하지만 남들에겐 친절한 사연을 보고 반성과 함께 생각에 잠겼다. 


  이번 달 친절사원 : '신수현 '


직원: 이야 축하해 어떻게 입사하고 한 번을 안 놓치냐 비결이 뭐야?

수현: 비결? 그런 게 어딨어요...

직원: 그렇지 넌 착해 빠져 가지고 법 없이도 살 녀석이다. 한턱 쏴!!

수현: 그럴까요? 가시죠~!! (나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낸다.)

직원: 2차도 쏴야지!

수현: 오케이 가시죠!! (얼큰하게 취했다.)


아인: 이제 들어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다.)

수현: 어 미안...

아인: 뭐하다 왔는데.

수현: 아 몰라 피곤해.

아인: 오늘이 뭔 인지 알아?

수현: (쿨쿨쿨)

아인: 결혼기념일이야... 

수현: (삐비 비빅 알람이 울린다) 아 뭐야 왜 안 깨웠어. 엥? 어디 갔어? 아인아! 아인아! '아 속 쓰려 출근 먼저 하자, 그전에 편의점에 들려서~ 부장님은 헛개수, 차장님은 꿀물 좋아하시고, 대리랑 오사원은 토레따'

수현: 좋은 아침!

직원: 좋은 아침입니다.

부장: 이야 역시 신 과장은 4차까지 가도 끄떡없구먼 잘 마실게~

수현: (오늘도 완벽했다 2시까지 그이에게 연락이 없는 걸 빼면) 아니, 왜 전화가 안 되는 거야! 어린이집 끝날 시각이 다됐구먼 어디서 노닥거리는 거야 ㅡㅡ


부장: 신 과장 오늘 저녁엔 뭐하나? 내가 이번 프로젝트에 자넬 추천을 했는데 글쎄 전무님이 한번 보자시네?

수현: 아 정말요? 오늘 저녁 별거 없습니다!

부장: 하하!!! 그럼 이따 보지

수현: 넵 이따 뵙겠습니다. (나는 사회생활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남들이 다 좋아하니까 이건 그이한텐 비밀이지만 돈도 몇 번 빌려 준 적도 있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선 내가 주로 계산하는 편이다. 뭐 어떤가 그 돈이 그 돈인걸)


-7일 전

아인: 생활비가 부족하네?

수현: 아니 생활비가 벌써 떨어졌어? 내가 준지 얼마 안 됐잖아. 대체 살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아인: 얼마나 줬다고? 고작 몇십으로 애 어린이집 원비에 생활비를 어떻게 쓰니 그리고 그것마저 두 달 전에 준거잖아.

수현: (말을 말자) 자! 이걸로 제발 좀 아껴 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한테 제일 소중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이와 주로 하는 대화이다.)


 과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전무님과의 약속 시각이 다 되었다. 드디어 나도 줄을 잡을 수 있나 보다 줄 잡고 초고속 승진해서 돈 많이 벌어야지 라는 생각에 부풀어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 (삐리릴 딸칵) 안녕하세요. 행복어린이집이에요. 오늘은 아무도 안 오셔서 진수 어린이만 아직 원에 있어요... 저희도 곧 퇴근이라...

수현: 네? 그이가 아직 안 왔다고요? 아... 죄송합니다.

(통화를 건다. 소리샘으로..)  아니 연락이 왜 안 되는 거야. 대체 뭐 하는 거야. 이양반

부장: 자네 안 오고 뭐 하는 건가?

수현: 아 부장님 바로 가겠습니다. (뚜두두 소리샘으로...) 아 왜 연락이 안돼. 카톡 보내 놔야지 '나 무님이랑 회식 있어. 중요한 자리야 빨리 진수 델러가 빨리!'

선생: (1시간 뒤) "어린이집인데요. 아니 대체 아이 맡겨놓고 뭐하시는 거예요. 퇴근도 못하고 있어요! 빨리 오세요."

수현: 네? 그이가 아직도 안 왔다고요? 알겠습니다.

 저기 전무님 저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봐야겠습니다. (너무 어렵고도 아쉬운 한마디를 내뱉었다.)

전무: 어 그래요.

부장: 신 과장 여기가 어떤 자린 줄 알면서 일어난다는 거야? 빨리 와 앉아!

전무: 박 부장 됐어요. 바쁜 일 있다 잖아요.

(전무님 부장님 두 분 표정이 너무나 어두웠다. 불안했다.)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 애 찾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왔다. 아인이는 집 식탁에 앉아서 불도 안 키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평상시와는 다른 분위기였지만 지금 내 눈엔 그게 보일 리 없었다.


수현: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 혼자 속 편히 소주나 마시고 있는 거야? 대체 전화는 왜 안 받고 어린이집은 왜 안 간 거야!

아인: 얼마나 중요한데? 넌 매달 중요했고, 매주 바빴고, 매일 소홀했어. 난 그러면서도 매달 응원했고, 매주 외로웠고, 매일 기다렸어. 오늘 딱 하루... 안 기다렸는데 그게 그렇게 잘 못 했어?

수현: 그럼 난 놀아? 먹여 살리잖아. 내가 가장이잖아. 그리고 왜 하필 오늘인데 오늘 드디어 전무님이랑 겨우겨우 안면 텄는데. 차라리 어제 그러지 왜 하필 오늘인데!

아인: 어제? 어젠 기대했고 오늘은 실망했어. 그래서 오늘인 거야...


 저 말을 끝으로 아인이는 눈엔 눈물이 맺힌 상태로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뒤 짧게 '우리 생각할 시간 좀 갖자'라고 했다. 아예 흐느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웃는 얼굴도 아닌 애매하면서 단호한 표정을 보고 나는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 그렇게 하고 그이가 떠난 뒤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는 우리 회사의 연차가 이렇게 많고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매년 나오는 연차, 아프면 쓰는 병가, 애들 놀아주라고 나오는 돌봄 휴가, 검진받으라는 공가, 더 놀라운 건 그냥 사전에 등록만 하면 그날은 쉬어도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시켜 먹는다고 마냥 편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처음 1주일은 시켜먹었다. 근데 시켜먹는 것조차 설거지거리가 나오고 쓰레기 버리는 건 더 귀찮았다.

 세 번째는 빨래할 때 흰옷 하고 색깔 옷을 같이 돌리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건 별로 알고 싶지 않던 상황이라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네 번째는... 다섯 번째는... 등등 과장 살짝 보태서 100가지쯤 만들어 갈 때쯤 아인이한테 연락이 왔다. 그동안 아인이와 아주 연락을 안 한건 아니었지만 먼저 연락이 온건 한 달만에 처음이다. 15년 전쯤 처음 아인이를 보고 사귀자고 한 달간 매달린 적이 있다. 그러다 한 달만에 선톡이 왔었는데 그때가 생각날 만큼 만감이 교차했다.


 나 제육볶음 먹고 싶어 만들어 줘. 이따 갈게


 연애시절 내 자취방에 아인이가 놀러 왔을 때 처음으로 해준 요리이다. 그렇게 난 요리를 미끼로 아인이를 계속 꼬셨고, 아인이 생일엔 미역국이며 불고기, 잡채 등 거하게 한상을 차릴 수 있는 실력까지 갔었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볼까?' 나는 곧장 마트로 가서 제일 신선한 돼지고기와 양파 등등을 사서 양손 가득 차에 싣고 집으로 와 요리를 시작했다. 거의 다 완성될 때쯤 소주 2병을 들고 아인이가 한 달만에 집으로 왔다.

수현: 어 왔어? 좀만 기다려 금방 끝나.

아인: 알았어.

 요리가 완성되고 아인이가 첫 입을 먹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 기획안을 부장님이 검토하실 때보다 더 긴장됐다.

수현: 맛이 어때?

아인: 옛날 생각나네... 그땐 자주 먹었는데... 맛있다. 자기도 얼른 먹어.

 우린 말없이 밥을 비우고 있었다. 그렇게 반쯤 비워갈 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수현: 우리 못 본 지 한 달 정도 됐나? 어떻게 지냈어?

아인: 기차 타고 바다도 보고 산도 가보고... 자긴?

수현: 나야 뭐. 회사, 어린이집 반복이었지. 아 그리고 저번에 얼핏 말한 그 프로젝트 강대리가 하기로 했어.

아인: 그래? 아쉽겠네?

수현: 글쎄.. 아쉬울 줄 알았는데 뭔가 엄청 개운해 ㅋㅋ 그리고 빨래도 고 유치원도 알아보고 영어학원도 알아봤고 근데 영어학원비가 글쎄 110만 원이래 미쳤어 아주 그리고 요 앞 정육점 고깃값 올라서 조금 멀더라도 미현동 마트로 가야겠어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혼자서 한 달치, 못다 한 수다를 다. 그제야 아인이가 웃는다.

아인: 이제 자기 같네 연애할 때 말 엄청 많았던 거 알아?

수현: 내가 그랬나?

 그렇게 우린 화해했다. 못 본 한 달간 아인이는 집을 나와 이곳저곳을 걸었다고 했다. 결국 그이는 멀어지기보단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걸었나 보다 그리고 난 그이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게 잘 단장하여 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화해랄 것도 없이 우린 다시 15년 전 그때로 돌아갔다.

8월 친절사원 : '강진현'


아인: 이번에 친절사원 놓쳤다며?

수현: 그렇게 됐네?

아인: 안 아쉬워?

수현: 8월은 원래 자두 철이야. 자두 좋아하지? 자! 이거 먹어.

 입사 때부터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던 친절사원을 처음으로 놓쳐봤다. 놓치면 뭔가 큰일이 날 줄 알았는데 까 보니 별거 없었다. 반면에 이번에도 안 놓쳤으면 그땐 정말 큰일이 났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웃음은 공짜다'라는 글을 봤다. 맞다 공짜다 돈이 안 든다. 하지만 감정이 소모된다. 나는 여태껏 감정은 무한한 줄 알고 살았다. 근데 돌이켜보면 감정은 유한하다. 밖에서 다 쓰고 들어오면 집에서 사용할 감정이 남아있질 않는다. 그래서 밖에서 조금 불친절하기로 했다.


감정은 유한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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