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실은' 꼴로 쓰여))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일을 솔직하게 말할 때 쓰는 말.
3. (('사실이지' 또는 '사실 말이지' 꼴로 쓰여)) 자신의 말이 옳다고 강조할 때 쓰는 말.
(부사)
1. 실지實地에 있어서.
- 표준국어대사전
'사실 있잖아', '사실은', '사실은 말이지', '사실 그렇지 않나요?', '사실'...
'사실'의 활용형은 매우 다양합니다. 나아가 일상 대화와 학술적 담론을 넘나들며 격과 때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보통은 '사실'의 첫 번째 의미인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뜻하여, 현실성과 실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부사격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일상 대화 속 거의 모든 '사실'과 그 활용형은 사실 불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실'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사실에 대한 집착과 사실을 통한 호소입니다.
사실에 집착하는 것은 일종의 왜곡된 과학적 사고입니다.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에 있어서 그것의 논리나 맥락, 상대의 입장은 무시된 채, 감각 가능한 사실을 요구합니다. 물론,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감각으로 느낄 수 없거나 수치화할 수 없는 문제마저도 감정적 공감이나 논리적 이해를 발휘하지 않고 사실만을 찾습니다. 그것이 주관적 의견이나 생각임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것마저 꺼립니다. 결국 지적인 협소함을 야기하며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의견을 공유하는 데 장애물을 만듭니다.
사실에 호소하는 태도는 사실에 집착하는 사고 때문에 발생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이 아니면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고려하지도 않으니, 습관적으로 '사실'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대화 중에서도 말입니다. 근거와 이유가 명확해야 자신의 말에 힘이 생긴다고 믿고, 실제로 그래야 대화에 참여가 가능합니다. 이때 흔히 등장하는 '사실'의 활용은 '사실 그렇지 않아?'입니다. '사실'이라는 실재성으로 별다른 근거 없이 (혹은 별다른 근거를 댈 수 없는) 생각에 대한 공감을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감정적 대화나 근거가 부족한 주장을 하려 할 때 흔히 등장합니다.
이 현상의 원인에는 자신이 믿고 있는 의견이나 주장이 사실이라고 오해하는 것도 한몫합니다. SNS의 알고리즘과 각종 커뮤니티가 익숙한 생각과 가치를 끊임없이 강화합니다. 결국 의견이나 주장은 확고부동한 사실로 자리합니다. 이는 대단히 위험한 현상인데, 느슨한 개별적 생각은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담론을 형성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결국 여러 생각을 공유하는 토론과 토의는 성립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이 ‘사실’이라면 타인의 생각은 ‘거짓’이 되고, 사람들은 굳이 ‘거짓’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사실'의 빈번한 등장은 모든 대화가 옳고 그름을 논하는 '시비是非의 장'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과학적이고 학술적 담론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정치적인 단어입니다. 말이 실재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이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생존하기 위해선 강한 힘을 가진 ‘실재하는 사실’에 의존해야 합니다.
의존. '사실'이 빈번해지는 대화에서는 '내 이야기'가 없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는 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사실'이기 힘듭니다. 그래서 사실에 의존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주관을 배제합니다.사실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말하는 이의 주관적 경험을 배제해야만 더욱 분명하고 단단해집니다.이런 점에서 보면,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억압된 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될수록 '사실'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사실'이라는 단어에는 공포가 전제되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공포입니다. 실재성을 강조하거나, 솔직함을 강조하면 ‘생각 말하기’의 공포가 줄어드는데, '사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합니다. 사실을 말했으니 자신의 말에는 실재성이 확보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내가 내 생각을 사실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공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사실'의 빈번한 사용을 지양해야 하는 이유는 대화의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사실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시시비비를 다루는 대화에서 빈번하게 ‘사실’을 사용하면 자신의 생각에 논리와 맥락은 거세되기 때문에 오히려 말은 설득력을 잃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실’은 실재성을 확인하기보다 실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예시로 '이게 팩트fact야!'가 있는데, 이 사례는 더욱 노골적입니다. 상대의 사실보다 나의 사실이 더 확고하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내 주장은 맥락이나 논리는 없고 오로지 (본인이 믿는) 실재성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고백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특정 주장의 '무비판적 노예'가 되었음을 고백하는 꼴이지요. 그래서 '사실'을 말할수록 말의 무게는 점점 떨어집니다.
사실에 대한 생각을 나누지 않는 대화에서는, 말 그대로 '불필요'하기 때문에 안 쓰는 것이 좋습니다. 주관적인 견해, 감상, 감정, 개인적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굳이 현실성과 실재성을 호소할 필요가 없습니다. 넋두리처럼 늘어놓아지는 '사실'로 인해 듣는 이는 피로감을 느낍니다. 따라서 그저 있는 그대로 사실에 의존하지 않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사실'에 집착하는 대화 분위기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힘이 대화 당사자와 당사자 간의 관계 안에 있지 않고 외부의 사물과 현상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사실은 어떤 다른 논리와 맥락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인데, 그만큼 '사실'이 많이 쓰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과 맥락이 녹아든 생각, 공감을 이끌어내는 말하기 능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실'의 쓰임을 살펴보며 의미가 남용되어 지나치게 자주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대체로 부사격으로 쓰이기 때문에 대체할 필요 없이 그저 안 쓰면 됩니다. '사실'이 많이 쓰이는 문장을 살펴보면 ‘사실'이 없어도 문장은 완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오히려 의미는 ‘사실’이 없을 때 더 분명해집니다. 불필요한 '사실'이 안 쓰이기를 바라며, 많은 분들이 '사실'을 쓰지 않고도, 두려움 없이 자기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를 자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