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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Jun 13. 2024

내가 되기 위한 투쟁

버지니아 울프

No need to hurry.

No need to sparkle.

No need to be anybody but oneself.


서두를 필요 없어요.

반짝일 필요 없어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영국, 1882-1941), 사상가, 작가, 비평가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1월 25일 런던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문학가이자 철학자인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Leslie Stephen 밑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많은 양의 장서를 접했습니다. 레슬리 스티븐은 정통신학에 회의를 품은 불가지론자로 매우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었으며 정치, 종교, 문예 여러 방면에서 두루 활약했습니다. 특히 1882년 <영국 인명사전>의 초대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첫 26권의 제작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영향으로 버지니아 울프 역시 신과 사후세계 보다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는 가치관을 갖게 됩니다.


 그는 딸 버지니아에게 아낌없이 지적 자산과 책을 제공했습니다. 그 덕분에 버지니아 울프는 1897년 킹스 칼리지 런던에 입학해 역사학, 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를 공부했습니다. 대학에서 여성 고등교육과 여성 인권 운동의 초기 개혁가들을 만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할 즈음 아버지의 지지를 받아 버지니아 울프는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즈음 그의 가족은 켄싱턴에서 보헤미안 블룸즈버리로 이사합니다. 그리고 친언니인 모더니스트 화가 바네사 벨Vanessa Bell을 비롯한 형제자매, 지성인 동료들과 예술, 문학 모임인 '블룸즈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을 결성합니다. 이후 1912년 레너드 울프Leonard Woolf만나 결혼합니다. 그는 아내의 집필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부부는 1917년 호가스 출판사Hogarth Press를 설립합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대부분의 저서는 이 출판사를 통해 출판되는데, 블룸즈버리 그룹과 호가스 출판사는 당시 문화 예술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동시에 사회적 권위와 낡은 관념들을 조롱하며 악명도 쌓았습니다).


 1905년부터 여러 잡지에 문예비평을 기고, 1915년에는 드디어 그의 첫 소설인《출항 The Voyage Out》을 출간하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무렵에 버지니아는 런던 문예계의 주요 인물로 자리 잡습니다. 그러던 중 1920년, 숙모인 메리 비턴Mary Beton이 사고로 숨지면서 그의 유언에 따라 매년 500파운드의 유산을 받게 되는데, 이 유산 덕분에 버지니아 울프는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고 이는 1929년에 출판될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에 큰 영향을 줍니다. 1925년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이 출간된 후, 1927년 《등대로To the Lighthouse》, 1928년 《올랜도Orlando》, 1931년 《파도The Waves》가 연이어 출판되며 호평을 받습니다.


 하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 증세로 고통받았습니다. 1895년,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으면서 처음으로 정신 이상 증세가 나타났고, 1904년에 아버지도 사망하면서 증세는 악화되어 투신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우울증, 신경증과 함께 자신의 신체에 대한 병적인 수치심과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의붓 오빠에게 어린 시절 당한 성추행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언제나 함께하던 언니 바네사가 결혼하고, 오빠 토비Thoby Strphen가 병으로 사망한 뒤 증세는 심해졌습니다. 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를 평생 지극정성으로 돌보았고 이는 버지니아 울프의 유서에도 잘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결혼 직후인 1913년에도 수면제를 통한 자살을 기도합니다. 그래서 레너드가 생계수단을 마련할 겸 줄곧 정신 질환을 고통받는 아내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호가스 출판사를 차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1941년 3월 28일, 우즈 강으로 산책을 나간 것이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이었습니다. 20일 후 발견된 그 코트에는 돌이 가득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자신이 되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 싸움은 자기 내면과 외부 환경 양쪽에서 이어지는 치열한 난전이었습니다. 내적으로 수치심과 혐오감이 동반하는 정신 질환 증세가 언제나 그와 함께 했지만 항상 그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하게 존재하기를 바랐습니다. 한편, 그의 외적인 세상은 여성을 온전한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영국에서 처음 여성 투표권이 인정되던 시기가 버지니아 울프가 숙모의 유산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즈음이었다는 은 새삼 여성인권운동의 큰 발자취들이 아주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줍니다.


"여성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의 돈'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을 살펴봅시다. 저서 중 유일하게 'One'과 'Own'으로 자기가 강조된 작품입니다. 이 책은 좁게는 버지니아 울프 자신이, 넓게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에 상당의 돈이 필요하다고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의 무능함이 아니라 여성이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과 안정적인 경제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여성이 자기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남성과 같은 자립적인 삶의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죠.


 나아가 이는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언급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만의 방은 '내가 온전히 자신으로서 내적으로 안정되고 숙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뜻합니다. 더불어 500파운드의 돈은 '외부환경에 자신이 추해지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력'을 뜻합니다. 즉, 《자기만의 방》은 자신만의 공간과 경제적 안정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이 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여성의 투쟁이자 그러한 공간과 경제적 안정을 확보할 기회를 뺏어 여성이 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 대한 고발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시도는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 기법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를 상징하는 표현 기법 중 하나는 단연 '의식의 흐름'입니다. 특별한 줄거리 없이 두서없이 떠오르는 등장인물의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을 고스란히 서술하는 기법으로 1910년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보통 몇 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나 행동을 위주로 문학 작품이 진행되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정말 오롯이 지금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한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기법은 한편 매우 난해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의식의 흐름 기법은 앞서 말한 것처럼 외부의 사건이 아닌 인물의 내면 자체에 집중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런 표현 방식은 순간에 집중하여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태도와 맞닿아있습니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표현을 살펴보면, 이 의식이 '누구'의 의식인지 서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생략된 '누구'는 'oneself'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 '그 자신의 의식', 자기 자신의 의식을 따라가는 서술 방법이라는 뜻이죠. 이런 표현 기법마저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쓰는 버지니아 울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유서에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을 보아 더 이상 집필활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아가 1941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입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가 마지막 산책을 하던 시기는 영국 전역에 독일이 언제 공습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팽배한 기간이었습니다. 당시 엄습하던 전쟁의 공포도 자살의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아마 버지니아 울프에게 전쟁은 죽음의 공포를 넘어, 살아있더라도 자기 자신으로서 살 수 없는 극단적인 세상의 표상이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자살은 미화될 수 없으나, 그의 마지막은 더 이상 글마저 쓸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어떠한 방법으로도 자기 자신을 지키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되는 극한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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