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조(목적) 이 법은 종전의 제주도의 지역적, 역사적, 인문적 특성을 살리고 자율과 책임, 창의성 다양성을 바탕으로 (중략) 경제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환경친화적인 국제자유도시를 조성함으로써 도민의 복리증진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국제자유도시"란 사람, 상품, 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 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규제의 완화 및 국제적 기준이 적용되는 지역적 단위를 말한다.
방금까지 '지역'과 '역사'를 이야기하며, 경제와 환경이 조화를 이룬다는 국제자유도시의 의미에는, 바로 다음 조항에서 자본의 자유와 기업의 편의만 남습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수려한 자연환경'은 일종의 마케팅 요소로, 언제든 재단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작품 <Welcome>에 등장하는 대상 중, 본디 제주에 있던 것은 배경이 되는 바다와 'welcome'이라고 적혀있는 천을 물고 나는 갈매기밖에 없습니다. 오름 대신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유람선과 제주도 자생식물이 아닌 야자수는 어느새 제주에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지역적 특성은 상품의 국제적 이동에 힘입어 유구한 맥락은 적출된 채, 새로운 맥락이 제주의 지역적 특성을 대변합니다.
환영 문구가 표준어인 '환영합니다'나 토착어인 '혼저옵서예'도 아닌 'Welcome'인 점도 '국제'자유도시의 정체성에 걸맞습니다. '국제'의 의미는 언제부터 '탈자기脫自己'가 되었을까요? 국제자유도시의 '역사적', '인문적' 특성은 어디에 치워진 것일까요. 그렇다고 '혼저옵서예'라고 썼을 때, '역사적'이고 '인문적'인 토착성이 살아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관광상품화하여 소비 객체로 전락시키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혼저옵서예'라는 표현이 가진 토착성마저 재화 가치로 너무 많이 소모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승의_박제된 낙원 1_장지에 혼합 매체_130x194cm_2020
제5장 환경의 보전
제1절 자연환경의 관리, 보전
제354조(곶자왈 보전) ① 국가 또는 제주자치도는 제주도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 지대로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이하 "곶자왈"이라 한다)의 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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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도지사는 곶자왈 중 특별히 보전할 가치가 있는 지역을 도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곶자왈 보호 지역으로 지정하여 그 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곶자왈로 대표되는 제주의 주요 환경을 보호하는 공권력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관광호텔이 잘 보이는 곳에 격리하는 것입니다.다만 중요한 점은, 해당 지역은 자연환경이 보존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보다도 개발 가치가 없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개발하기 위해 벽돌을 쌓아놓은 곳 바로 뒤편부터 격리가 시작됩니다. 이 '비싸고 아까운 땅'을 '놀릴' 수는 없으니까요. 이미 인공수로가 있고, 자생식물이 아닌 야자수가 들어차 '곶자왈'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민망한 곳이지만, 관광지의 경치에 어울리는 식생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국제자유도시의 곶자왈은 비행기에서 쉬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며 개발 지역의 한가운데에 위치합니다. 그 안에서 갈 곳 없는 사슴 한 마리만 눈을 번뜩이며 우리를 쏘아봅니다.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슴의 유난히 하얀 눈두덩이는 높은 한라산과 그 뒤에 솟아오른 태양의 색을 닮았습니다. 철저하게 격리되고 이용되어도 화폭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을 발화하는 주체임을 증명합니다. 사슴의 발은 당장 갈 곳을 잃었지만, 머지않아 어딘가로 껑충 뛰어올라 여전히 살아있음을 똑똑히 보일 것입니다.
현승의_현수막_장지에 혼합 매체_ 73x117cm_2020
아름다운 곶자왈을 가진 드높은 위상의 국제자유도시의 이면에서,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제주도에 대한 중앙정부의 폭력적 태도로 인해 현지인의 현생은 투쟁으로 점철됩니다. 시커면 배경에 하얀 현수막만 도드라집니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현수막에, 수천 마디 말들이 그득합니다. 너무 많은 말들이 담겨있어, 오히려 아무 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수막은 일종의 '울부짖음'입니다. '울부짖음'은 '감정이 격하여 마구 울면서 큰 소리를 내다'라는 뜻과 '바람이나 파도 따위가 세차게 큰 소리를 내다'라는 뜻을 가집니다(표준국어대사전). 전자의 의미는 현수막을 건 사람의 감정이고, 후자의 의미는 현수막에 담긴 말이 퍼지는 방식입니다. 다만, 바람과 파도는 끝내 목적지 없이 흩어진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주의 거센 바람과 끊임없는 파도처럼 줄기차게 그 '울부짖음'이 울려 퍼진다면 모르겠지만, 현수막의 발화는 속상하게도 목적지 없이 흩어지는 속성만 닮아가, 그 모습만 남고 내용은 잊힙니다.
현승의_없는 낙원_장지에 혼합 매체_45.5x80.5cm_2020
그리고 죽은 자의 발화는 콘크리트 속으로 묻힙니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이 장면에서도 발화는 이어집니다. 제주공항 착공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4.3사건 희생자의 유해가 발굴됩니다. 하지만, 이를 콘크리트로 간단하게 덮습니다. 하루에도 수 십 대의 비행기가 오고 가는 활주로 밑에 해명되지 않은 죽음이 상존합니다.
콘크리트가 재갈을 물린 발화는 장면의 심연에서 새하얗게 침전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이면의 죽음과 발화. 이 작품의 해설을 들을 때야 작품 속에 숨겨진 '발화'를 알 수 있듯이, 이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이 소름 끼치는 잔인함을 누군가는 잊지 않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장지의 전체에 무언가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주파수가 맞지 않는 화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일그러짐입니다. 우리가 주시하는 장면과 이 장면에 숨겨진 '진짜' 초점이 어긋나면서 생기는 '깨짐', 혹은, 죽지 못해 썩지 못하고 땅속에서 이승을 부여잡고 있는 유해와 이미 하늘로 올라가 버린 넋을 잇는, 끊어지지 않는 한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승의_사소한 삭제_장지에 혼합 매체_53x45cm_2022
기억과 자연의 공통점은, 사소하게 지워지며 완전히 잊힌다는 것입니다. 곶자왈의 장면에 흰 물감이 한 줄, 두 줄, 켜켜이 쌓입니다. 지금이야 곶자왈 위에 흰 줄이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머지않아 장지 전체는 새하얗게 칠해질 것입니다. 힘 없이 하얀 물감이 흐릅니다. 점점 엉키고 있는 하얀 물감들이 단단히 서로를 붙잡아, 정말 모든 것을 덮고 잊어버리게 만들까 봐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