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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픈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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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May 24. 2024

어떤 증상 같은 ‘말’들에 대하여

흔히 쓰는 말에 담긴 병리적 문제들

 말에는 이미 약속된 사전적 의미만 담겨 있지 않습니다. 말의 모양이 바뀌지 않더라도 그 의미는 장소와 시대를 반영합니다. 일상 대화에서도 당시의 상황과 뉘앙스, 분위기, 맥락에 영향을 받고, 화자의 기분, 성격, 상태를 담고 있습니다. 심지어 동시에 화자가 마주하는 청자의 기분, 성격, 상태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말의 안과 밖에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엮여있는 어지러운 의미들을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안다'고 표현하지 않고 '느낀다'고 말하면서 이를 강조한 것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여러분은 ‘느낀다’는 표현에서, 우리가 화자의 말을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나 이미 알고 있는 단어를 재확인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는 의도를 알아차립니다. 


 즉, 대화 중에 의식적으로 신경 쓰지 않는 층위인 감정이나 감각 등에서 공감하거나 감응하며 의중을 공유해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을 뜻하며, 방금도 그런 과정을 통해 '느낀다'의 의미를 직감적으로 이해하셨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느껴지는' 말의 의미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개별적 사례들이 쌓여 용례가 누적되면서 많은 이야기가 얽히기 시작합니다. 특정 상황에 특정 단어나 표현이 사용되는 과정에서 그 말에 정서와 의미를 덧붙여집니다. 말은 우리가 주로 노출되는 사례, 상황, 감정, 정서와 교감하고 나아가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 층위에서 말에 덧씌워진 정서와 의미를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특정한 말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말에 엮인 정서와 의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과 집단의 의식적, 심리적, 정서적 증상과 같습니다.


 앞으로 「아픈 사전」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에 엉겨있는 의식적, 심리적, 정서적 증상들 중에 병리적인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본래 그 단어와 표현이 가진 의미를 확인한 후, 용례를 살펴보며 그 안에 담겨있는 좋지 않은 정서와 의미, 상황 등을 곱씹고 나아가 그 말을 대체할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한 가지 강조하는 점이 있다면, 「아픈 사전」에서 다루어질 용례적 의미와 정서, 상황에 대한 판단은 극히 제 주관적인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의 의미는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기에 제가 '그 말'의 의미와 맥락을 무시한 채 언제나 '그 의미'라고 단정 짓지도 않을 것입니다. 제 경험에서 느꼈던 어떤 말의 '특정적인 활용적 의미'와 '주로 발견되는 병리적인 정서'를 분석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앞으로 「아픈 사전」에서 다루어질 글은 우리의 말이 가진 증상에 대한 이야기하는 동시에, 제가 가진 말에 대한 증상을 고백하는 글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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