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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yeon May 14. 2023

결국에 길은 열린다

『숲의 요괴』 마누엘 마르솔(그림) 카르멘 치카(글)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깊은 산속이에요.”


무언가에 몰입하면서 달려가다, 문득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성을 잡을 수 없을 때가. 외로움 반, 두려움 반이 섞인 감정 속에서 그때서야 우리는 좌우를 돌아보게 된다. 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있는지.


빠른 배송을 위해 매일 산을 넘어가는 배달부 마르솔은 용변이 급해 차에서 잠시 내렸다 숲에서 길을 잃는다. “이 길은 아니야.” “이 길도 아니야.” 길을 찾아가는 과정 안에서 그는 필연적으로 주변을 보게 된다. 깊은 산속의 나무와 꽃, 독수리, 시냇물, 돌멩이와 물고기… 어느 순간 등장한, 해맑은 얼굴로 땅에 드러누워도 보고 꽃향기도 맞고 시냇물에서 장난도 치는, 귀여운 요괴는 마르솔 안에 내재되어 있던 또다른 모습일 것이다. 


요괴가 빠져나간 나무 사이로 마르솔이 나오는 듯한 섬세한 연결성 안에서는 마치 꿈에서 깬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마술적 요소가 현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삶을 보는 시야를 확장시키는 스페인 문학의 매력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가는 길이, 그리고 그 안에서 보이는 것들이 삶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감각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이곳에는 너무도 많지만 당장 해야 하는 일들에 치여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지낸다. 마누엘 마르솔의 그림과 카르멘 치카의 글은,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잠시 멈춰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을 흠뻑 느끼는 순간이 필요하다고 명랑하게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예기치 않은 순간 내가 멈춰 서게 되었다면, 그것은 삶이 주는 선물일 지도 모른다. 


“오,” 

“그러니까… 이 길이었어.”

결국에 길은 열린다. 모든 것이 지나간 후, 노을 진 하늘의 선명한 색감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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