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yeon Jul 26. 2023

(1) 폭식의 시작

폭식은 대학교 2학년, 21살 여름 멕시코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처음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 얻은 거처는, 밤이면 비가 들이쳐 책상이 젖을 정도로 허술하고 아주 커다란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꿉꿉한 옥탑방이었는데 그 공간 안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끌어안고 견디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어느 주말 오후, 냄비밥을 해서 참치에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었는데, 의식의 끈을 놓치고 냄비에 있는 밥을 다 먹었던 것이 폭식의 첫 기억이다. 

그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생활비로는 내가 계획했던 일들을 다 할 수 없었기에 식비를 늘 아꼈다. 평소에는 먹는 것을 아주 절제하는 편이었다.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도 속이 안 좋다며 혼자 밥을 먹지 않기도 하고, 슈퍼마켓에서 파는 식빵 한 줄로 한 주를 버틴 적도 있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머릿속에 나를 조종하는 무언가가 들어온 것처럼, 평소의 내가 아닌 것처럼 아주 많이 먹었다. 


한줌의 재로 스러지고 싶을 정도로 절절하게 외로웠다.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늘 긴장했다. 나를 쫓는 것도 없는데 늘 쫓겨다녔다. 멕시코까지 간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여행을 하고,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으며 친구를 만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세포 하나하나에 사무쳤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스페인어가 늘지 않을까 두려워 한국 사람을 만나는 일은 자제했다. 늘상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언제나 마음이 허했고 그 어느 곳에도 발을 붙이지 못한 채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혼자라고 느꼈다. 


나는 기질적으로 새로움을 즐기고 다양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나와 결이 맞는 환경 안에서 안정감 있고 단단하게 뿌리 내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도, 아집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거친 면 위를 스치며, 상처가 나고 아물며 더 강해지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그 상처에 점점 곪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타고난 민감함을 잘 돌봐주며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지금의 나에게 가장 돌아가기 싫은 삶의 한때를 꼽으라면, 멕시코 시절을 선택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