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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킴 Jan 28. 2022

진리가 여성이라면...

니체와의 토리노 데이트 5

이탈리아의 그 어느메?...



니체의 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모든 가치의 전도’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모든 상식을 다 깨부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너무 당연시되던 것들을 그 근본부터 파고들며 새롭게 해석하고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의 전환을 가져온 사람이 바로 니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모든 인식은 해석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 각자의 눈 속으로 들어온 이 세계는 수만 가지의 빛깔로 채색된 풍경일 수 있다. 천 개의 눈에 담긴 천 개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굳게 믿어왔던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고 해체시킨 철학자가 바로 니체다. 아니, 니오다.


지오: 니오, 사람들은 ‘프리드리히 니체’ 하면 ‘신은 죽었다’라는 말과 ‘허무주의’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귀하의 책을 안 읽어본 사람도 이 짧은 명제는 다들 알고 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유명하지요.


니오: 내가 정말 그렇게 유명해졌습니까? 내 그럴 줄 이미 알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군. 그런데 ‘신죽음’이 내 철학의 다가 아닌데 그 명제만 기억한다니 그건 좀 서운하네.


지오: 그러니 오늘 니오의 생각들을 직접 들어보고 싶은데. 책을 통해 만난 니오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니오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신죽음'에 대한 것도 그 한 문장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뿐만 아니라 니오의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들도 그렇고 내가 오늘 질문이 좀 많을 것 같은데 어떡하죠? ㅎㅎ 부디 수다쟁이라 타박하지 마세요.


니오: 그럽시다. 그 궁금증 다 풀어드리리다. 뭐든 물어보세요. 자, 그럼 뭐부터 하실 테요? 시작해보시지요.


진리가 여성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떠한가? 모든 철학자가 독단주의자였을 경우 그들이 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혐의는 근거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그들이 진리에 접근할 때 가졌던 소름 끼칠 정도의 진지함과 서툴고 주제넘은 자신감이 바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졸렬하고 부적당했다는 혐의는 근거 있는 것이 아닐까? 여성들의 호감을 사지 못했던 것은 당연하다(선악의 저편 서문).


지오: 니오의 책 [선악의 저편] 서문에 보면 진리를 여성에 비유한 게 참 인상 깊었습니다. 여자들은 자신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쫓아오는 남자들처럼 집요하게 진리를 붙잡고자 하는 철학자들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로 해석했는데, 그리 이해해도 되나요?


니오: 그렇죠. 모든 철학자들이 진리 접근 방식에 있어서 여자를 이해하지 못한 남자처럼 행동했다는 거지요. 그들이 진리로 나아간 수단은 진지함과 집요함이었는데, 더 심각한 건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그리한다는 것입니다.


지오: 진리가 여자라고 한다면, 여자들은 진리가 뭔지도 모르면서 집요하기만 한 철학자들을 싫어할 거다? 음... 벌써 재밌어지네요.


니오: 나는 지나치게 엄숙하고 진지함의 대명사인 철학자들의 진리 추구 방법이 아주 맘에 들지 않아요.


지오: 그건 동감. 나도 철학자들의 엄근진은 별로.


니오: 엄근진이 뭐요? 지오의 말은 참 어렵군요.


지오: 요즘 젊은이들은 SNS 상에서, 음... 니오는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그냥 따라오세요.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으니... 암튼 말을 짧게 줄여서 하는 걸 좋아하지요. 엄근진은 방금 니오가 말한 ‘엄숙하고 근엄하며 진지한’의 첫 글자만 딴 말이에요. 주로 진지한 상황에 쓰이고 있지만 혼자 분위기를 잡는 사람을 비꼬는 경우에도 사용되지요. 니오가 싫어하는 철학자들의 모습을 얘기하기엔 이 단어가 딱인 듯한데요.


니오: 이해했소이다. 나는 왜 이리 똑똑한지. 자, 그럼 다시... 특히, 뭐 방금 그 엄근진의 최강 소크라테스가 하는 대화법을 한 번 봅시다.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으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방식은 정말 천박하기 그지없단 말이요. 자기도 모르면서 꼬투리를 잡아 계속 상대방에게 대답을 강요하는 그런 식으로는 진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죠.


지오: 참, 니오의 고질적인 잘난 척이 또 나왔군요. ㅎㅎ 그래서 생각난 건데, 니오의 자서전 격인 책 <이 사람을 보라>의 목차 제목요. 어쩜 그렇게 스스로에게 도취된 제목을 쓸 수 있지요?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오글거리는 제목은 그게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쓸 수 없을 것 같은데. 니오는 정말 자신감 하나는 인정입니다.


니오: 그게 왜요? 아니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게 뭐가 잘못됐을까요?  나는 그 <이 사람을 보라>라는 책에서 '어떻게 사람은 자기의 모습이 되는가?'를 얘기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누구인지를 밝혀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던 거요. 사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나를 '보여주지 않은 채 놔두지' 않았으니.


지오: 그러고 보니 그 책 서문에 이런 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기 때문이오. 무엇보다도 나를 혼동하지 마시오!"


니오: 맞아요. 잘 기억하고 있군요. 사실 내 과제의 위대함과 동시대인의 비소함 사이에서 오는 오해는 사람들이 내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았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사실로 나타나오. 나는 나 자신의 신용에 의거해서만 살아가지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한갓 편견일 수도 있지 않을까? …… 내가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식자'중 누구라도 붙들고 이야기해보면 된다…… 뭐 이런 생각이었달까.


지오: 세상 사람들이 니오의 생각을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 니오 본능의 긍지가 그렇게 거세게 저항을 한 결과가 바로 저 책인 거네요. <이 사람을 보라>는 결국 '나를 좀 제대로 보란 말이오!' 이 말이군요. 니오의 생각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게 답답했던 거죠. 그렇다면 이제 그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지금은 니오의 철학에 많은 사람들이 영향받고 있으니까요. 특히 예술가들에게 니오의 철학은 정말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제 느낌이지만요.


지오는 이 위대한 철학자가 그토록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그 시대의 분위기를 떠올리며(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사람들은 니체를 무시했고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니오의 말에 100% 공감하고 있었다. 그가 늘 강조했던 '자신으로 살라'라고 한 그 말대로 살기 위해 그는 그렇게 스스로도 고군분투했던 거다. 지오가 생각하기에 니체에게 더 큰 비극은 자신의 철학이 세상에 알려지고 사람들이 그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 그의 정신은 암흑 속에 갇혀버렸다는 것이다. 광장에서 말을 끌어안았던 그 사건 이후 10년이라는 그 기나긴 세월을 니체는 철저하게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외로운 생을 지속해야만 했다. 바로 지오가 찾아간 니오가 처한 현실은 그러했다. 이 생각에 잠겨있던 지오, 그녀는 자꾸 멀리 가는 생각을 다시 눈앞의 니오에게 데려다 놓는다.


지오: 아쿠, 미안해요. 니오. 진리에 대한 얘기 하다가 그만 너무 멀리 와버렸네요. 가만있자. 아까 니오가 소크라테스를 돌려 까는 듯한 얘기를 하다 만 것 같은데..ㅎㅎ 니오는 소크라테스의 그 집요한 질문 방식도 맘에 안 든다고 했는데 그러면 철학은 어찌해야 합니까?


니오: 생각해 보세요.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너 자신으로부터 객관적이 되라는 것인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보편적 이성으로부터 객관적인 것을 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나는 난센스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사태를 바라봄에는 언제나 관찰자 자신이 포함되기 때문에 인식 주체로부터 분리된 완벽한 객관적 이성이란 불가능한 것이라는 말이죠.


지오: 그러고 보니 소크라테스가 지향한 학문적 인간은 이 불가능한 것을 요청한 것이군요.


니오: 자기 자신을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모든 인간에게 가장 먼 존재는 자기 자신입니다. 모든 예민한 사람들은 이 불편한 진리를 알고 있지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이 '신의 입으로부터 인간을 향해 말해진 격언(?)'은 거의 악의적인 요구입니다.


지오: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했네요. 소크라테스! 그 이름을 내가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ㅎㅎ


니오: 자기 관찰이 절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증언해주는 사실은 거의 모든 인간이 도덕적 행위의 본질에 대해 말하는 방식에서 알 수 있지요.  


지오: 오.. 도덕적 행위. 바로 그겁니다, 그거. 오늘 내가 니오와 얘기 나누고 싶은 주제가 바로 선과 악, 도덕이지요. 흥분하셔서 그런지 지금 진도가 너무 빠르네요. 이게 벌써 나오면 안 되는데 ㅎㅎ 암튼 우리 엄근진을 벗고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눠봅시다.


니오: 진지함도 때로는 오만일 수 있지요. ‘철학자는 꿀을 모으는 꿀벌처럼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는 자만이 행복에 대해 혼동하지 않는 법이니까. 춤추지 않고 지나간 하루는 그 하루를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없고, 웃음이 동반되지 않는 진리는 진짜 진리라 할 수 없어요.’


지오: 세상에.. 가슴 뜨끔합니다.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정말 이 문장들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네요. 비록 나는 철학자는 아니나 문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걷고, 뛰고. 참... 사실 난 춤만 빼고 다 할 수 있긴 한데.. 음.. 그래도 자신은 없지만 춤추는 법도, 아니 무엇보다도 웃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니오: 철학은 가볍고 재미있게 해야 합니다. 철학이 결코 쉬운 영역은 아니지만 그것에 다가가는 방식은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지오: 그래서 그런가. 니오의 책은 제목부터 느낌이 다릅니다. 다른 철학서들 같은 딱딱함도 없고 서정적이면서도 유쾌함이 묻어난다고 할까. 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 제목이 참 좋습니다. 이것 말고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아침놀], [즐거운 학문], [이 사람을 보라], [우상의 황혼]... 이러한 책 제목이 벌써 귀하의 학문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니오: 그렇습니까? 그렇게 봤다면 잘 본 것 같군요.


지오: 말하고 보니 지금 우리는 철학하는 태도에 대한 얘기만 한 것 같네요. 진리가 뭔지는 아직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궁금합니다. 진리가 대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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