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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경 Jul 21. 2022

9/11테러 20주년, 슬픔의 궤도를 추적하다

2022년도 퓰리처상 특집기사 부문 수상자 제니퍼 시니어 기자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책들은 매대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반대로 정작 퓰리처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보도 부문 수상작들은 뭔가 전문적으로 느껴져서 일반인들의 흥미를 자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 중 특집기사(Feature Writing) 부문 수상작은 기자가 아닌 일반인이, 혹은 글쓰기에 관심있는 이들이 읽어도 좋을 듯하다. 

이 부문의 심사 기준은 다른 부문과는 사뭇 다르다. 대개 기사는 명료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이 목적이기에 기자의 문체나 스타일이 드러나기 어렵고, 드러내는 것이 목적도 아니다. 하지만 특집기사는 딱딱한 기사가 아니라 주제를 깊게 파고드는 이야기로서의 성격이 강하기에 기자의 문체와 스타일, 창의성이 드러나며, 또 그것들로 평가된다. 기사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글쓰기, 문학성이 가미된 글쓰기를 맛볼 수 있다.


2022년 특집기사 부문 수상작은 더 아틀랜틱(The Atlantic)에 실린 제니퍼 시니어(Jennifer Senior)기자의 "바비 맥일베인이 남기고 간 것들(What Bobby McIlvaine Left Behind)"이다. 9/11테러 20년 후, 희생자 유족들의 슬픔을 추적하는 기사다.

(기사 원본: https://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21/09/twenty-years-gone-911-bobby-mcilvaine/619490/)


기사 내용 요약

제니퍼 시니어의 다섯살 아래 동생은 신입생 때 바비 맥일베인이라는 룸메이트를 만나 친해진다. 이를 계기로 제니퍼 시니어는 바비와 그의 부모님, 동생을 알게 되는데, 그의 가족들은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이다. 특히 바비는 환한 웃음을 가진, 야심차고 똑똑하면서도 다정한 사람이다. 그는 세계무역센터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지만, 테러 당일 오전 그곳 식당에서 열린 컨퍼런스 발제자가 된 동료를 도와주기 위해 잠시 들렀다가 참사를 당하고 만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 두 달 전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이틀 전 여자친구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의 죽음 후 남겨진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슬픔에 대처한다. 아들이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는 9/11 테러 음모론에 빠져 그쪽 방면의 유명인사가 된다. 그는 머릿속에선 매일매일 세계무역센터의 폭발이 되풀이된다. 반면 바비의 어머니는 슬픔을 억누르고, 상처를 내보이지 않는 쪽을 택한다. 그와 막 결혼을 약속했던 젠이라는 여성은 사건 직후 일정 기간을 바비 가족 집에서 보내는데, 이때 문제가 발생한다. 바비 생전의 기록들, 그가 남긴 일기장들과 노트들이 중요한 유물이 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의 일기장을 바비 아버지가 아내의 동의없이 젠에게 줘버린 것이다. 바비의 엄마 헬렌은 그 일기장을 보여달라고, 원본이 아니라도 좋으니 복사를 허락해달라고 수없이 부탁하지만, 이상하게도 젠은 이를 한사코 거절한다. 얼마 후 젠이 바비 가족을 떠날 때 헬렌과 젠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그들은 이후 20년간 서로를 만나지 않는다. 


기자는 희생자 유족을 취재하기 위해 바비가 남기고 간 사람들을 차례로 만난다. 아버지 밥 시니어, 어머니 헬렌, 남동생 제프, 그리고 연인 젠.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겉으로 보기엔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의 맥락을 그림처럼 완성해간다. 사실 유족의 슬픔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응 방식이 있게 마련이다. 밥 시니어의 대응 방식이 그러한데, 그는 9/11이 테러가 아닌 미국 정부의 설계된 폭파였다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에 집착한다. 하지만 기자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그의 행동에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길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슬픔이 무뎌지는만큼 아들에게서 멀어질까 봐 슬픔에서 벗어나길 거부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독자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젠과의 만남은 이 기사의 절정에 가깝다. 그녀는 도대체 왜 일기장을 공유하는 것을 거부했을까? 그게 뭐라고. 그런데 바비가 죽기 약 다섯 달 전, 불같은 성격을 지닌 아빠로부터 그녀를 보호해주곤 했던 그녀의 엄마가 죽었다. 바비마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로서는 두 번의 상실로 마음이 산산조각난 상태였던 것이다. 게다가 바비는 엄마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던 그녀의 버팀목이었다. 

    그녀에게 바비의 마지막 일기장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알고 보니 17 페이지밖에 안 되었던 그 일기장의 주된 내용은 그녀에 대한 사랑 고백이었다. (또 하나의 주제는,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상실이었다.) 그녀는 20년 전 자신의 행동이 지금은 이해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일기장이 그녀에게 남겨진 전부로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드디어 기자를 통해 바비의 부모님에게 문제의 일기장을 전달한다. 헬렌은 일기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젠에게 지녔을 의미를 이해한다.


기자에겐 이 일기장이 수수께끼를 해결할 마지막 퍼즐이나 다름없다. 인터뷰 초반에 기자는 'life loves on('삶은 계속된다'는 의미인 life lives on의 live를 love로 바꾼 문구)'이라는 문구를 접한다. 바비의 기록 어딘가에서 발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구는 이제 바비 가족의 가훈이 되었다. 하지만 의아한 것은 그 누구도 이 문구의 정확한 출처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20년 만에 돌아온 일기장에서, 저자는 이 문구를 발견한다. 하지만 바비의 독특한 필체로 인한 오해가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기자는 일기장 속에 묻혀 있던 더 의미심장한 기록을 발견한다. 정작 일기장에 묻혀있는 보물은 가훈이 아니었다.

    기자는 어떤 운명의 장난으로, 바비가 죽기 전 '상실로 인한 슬픔'이라는 주제에 몰두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바비는 엄마를 잃고 괴로워하는 젠을 보며 왜 남겨진 사람들은 이렇게 괴로워야만 하는지, 과연 이게 떠난 사람이 원하는 일일지 고뇌한다. 마치 자신에게 닥칠 운명과 가족들이 겪을 슬픔을 예견한 듯이 말이다. 고민 끝에 그는 상실, 고통과 같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아직 어떤 방식으로 슬픔에 대처했는지 언급되지 않은 멤버가 있다. 바로 바비 동생 제프이다. 제프도 바비의 죽음 이후 살아남은 자신을 자책하는 등 괴로운 시간을 겪었지만, 동시에 그는 결심한다. 내 삶이 이렇게 무너져내리는 것은 형이 원하는 것이 아닐 거라고. 그는 삶에 최선을 다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네 명이나 낳는다. 그리고 네 명의 손주는 헬렌과 밥 시니어를 지탱해주는 새로운 관계, 삶의 의미가 되어준다. 바비의 말처럼 설사 아픔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계속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이다. 

    헬렌은 만약 인생을 되풀이해야 한다면, 바비를 잃는 고통을 다시 겪어야 한다고 해도 기꺼이 그러겠다고 말한다. 바비라는 사람을 알고, 보살피고, 사랑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으니까. 기사 제목인 "바비 맥일베인이 남기고 간 것들"의 의미가 밝혀진다. 바비가 남기고 간 것은 자신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서로를 향한 헌신과 사랑은 의미있었다는, 그를 위해서라도 너무 아파하지 말라는 따듯한 위로다. 


기사가 전달하는 것들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기자가 얼마나 섬세한 감정들을 전달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내 언어로는 기사 마지막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정확히 표현해내기 어렵다. 

    이 기사는 16장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지면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해낸다. 그 첫 번째는 우리를 남겨진 사람들, 헬렌, 밥 시니어, 젠의 입장에 이입시키는 것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죽음일수록, 유족들 마음의 풍랑은 잠재워지지 않는다. 풍랑이 점점 거세져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전투적인 활동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대개 이쯤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의 시선은 못마땅함이나 비난의 시선으로 돌변한다. 밥 시니어에 대한 시선이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누군가가 상실에 대처하는 방식을 쉽게 비난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둘째는 망자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 사이의 화해를 이뤄주었다는 것이다. 바비가 남긴 일기장 중 좀더 어린 시절에 썼던 일기장에는, 심지어 사춘기에 썼던 일기장에도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뚝뚝 묻어난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쓴 마지막 일기장, 갈등의 발단이 된 바로 그 일기장에는 여자친구 젠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비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이들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멀어진다. 하지만 기자가 먼지 쌓인 일기장을 복원시킴으로써, 헬렌과 젠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바비가 하늘에서 이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일기장을 입수하는 것은 이야기의 변곡점이 되는데, 기자가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굴해내기 때문이다. 기자는 몇 달 후 죽음을 맞게 될 이가 죽음과 상실의 고통에 대해 성찰한 역설과 함께, 그의 깨달음이 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녀가 발견한 의미는 바비의 가족뿐 아니라 사랑하는 누군가를 상실한, 또는 언젠가는 상실할 수밖에 없을 우리 모두의 마음에 와닿는다. 슬픈만큼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과 순간들이 있었음을, 그 순간들은 고통을 겪더라도 기꺼이 감당할 값어치 있는 것임을, 그리고 인생이란 잃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해나가는 것임을 느끼게 한다.


글이 돋보이는 이유: 몰입을 유도하는 구성

긴 글을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내는 능숙함, 군데군데 빛나는 문학적인 비유들,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면서도 잃지 않는 따듯한 시선 등이 돋보이지만, 그중 유난히 날 감탄케 한 것은 구조상의 탁월함이다.

    이렇게 긴 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아마도 끝까지 독자의 관심을 잃지 않는 것일 거다. 기자는 초반에 헬렌과 젠의 갈등을 소개하며 갈등의 씨앗이 된 일기장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life loves on'이라는 문구의 출처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 궁금증은 기사를 이끌어가는 일종의 힘이 된다. 그리고 문제의 인물(그러니까 젠)을 만나고, 일기장을 손에 넣으면서 독자들이 초반에 던졌던 질문들이 해소된다. 어떤 답은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는 반전이다. 예를 들어 아무도 가훈의 출처를 모른다고 했지만 사실은 모두 알던 순간이 있었다든지. 하지만 시니어 기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새로운 의미에 도달한다. 

    그림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을 찾아가는 여정, 갈수록 고조되는 감정, 반전, 쌓아왔던 것들이 폭발하듯 분출되는 결말 등... 어떻게 보면 서스펜스 소설에 나올 만한 기법이다. 몰입을 높이기 위해 글의 구성과 배치에 굉장히 공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글을 맞닥뜨린 것이 행운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글이 있는데, 바로 이 글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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