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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주영 Sep 23. 2021

아버님의 망고(mango)


몇 년 동안 이렇게 말짱한 하늘의 봄날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날씨가 쾌청한 요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날씨 화창’은 <코로나 19>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춰서이기 때문이라는 뉴스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고 영화 제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세기말이 이렇게 어이없게 시작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미래가 강제적으로 앞당겨진 느낌이기도 하다. 매년 같은 봄일 줄 알았는데 이번 봄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이 봄이 지나고 이 상황이 끝나면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얼마만큼 삶이 달라 질까 싶기도 하다. 5년 전 딱 이 맘 때의 봄이 그랬다. 특별할 거 하나 없는 봄이었지만 내겐 많은 것을 남긴 봄이었다. 시아버님이 편찮으셨다. 간경화 말기로 2월부터 병원에 입원하셔서 가족 모두가 아버님과 봄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었다.   

   

남편의 아버지이자 아이들의 할아버지인 나의 시아버님은 1937년생 소띠 정영표 씨 이시다. 6.25 전쟁 중에 까까머리 중학생이 한 달이면 고향에 돌아갈 줄 알고 피난 온 남한에서 결국 혈혈단신 고아가 되어 4명의 자식과 8명의 손자 손녀를 얻으셔서 대가족을 이룬 특별할 거 없는 흔한 인생이셨다. 소와 닭을 기르시고 농사를 짓고 목수로 일하며 단 한 번도 당신을 위해 시간을 써보신 적 없으신 것이 나의 아버님 정영표 씨의 삶이셨다.     

 첫인사 자리에서 아들의 여자 친구인 내가 부끄러워 먼 곳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하시 던 분,

손자들을 포대기로 업고 동네 마실을 다니셨던 분, 재취업을 한 며느리에게 물려줄 건 없어도 아이들은 봐주겠다고 하시던 분, 새벽 출근, 늦은 밤 퇴근하는 며느리를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셨다가 ‘밥은 먹고 다니냐’는 명대사를 던지셨던 분. 나물은 일일이 다듬고 마늘은 알알이 찧어서 보내 주셨던 분, 북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환갑과 칠순 잔치를 모두 거부하셨던 분. 특별히 말씀이 많지는 않아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신 분. 아버님은 내겐 그런 분이셨다.      


그런 아버님이 어쩌면 마지막일지 몰라 온 가족이 교대로 병원에서 간병하던 때가 2015년 봄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처음으로 아버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기도 한 때였다. 평생 힘든 일을 하기 위해 노동 주인 막걸리를 놓지 않은 아버님의 병명은 알콜성 간경화였다. 그 병은 특별한 치료법도 특효약도 없이 서서히 몸이 정지되어 가는 그런 병이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는 것이 건강의 척도임을 증명하듯 의료진들의 질문도 ‘얼마를 먹었냐? 얼마를 배출했냐? 얼마나 잤냐?’가 대부분이었다. 아버님의 고통에 비해 너무 당연한 질문 들이었다. 지칠 만도 한 병원 생활 중에도 아버님은 교대하며 간병하는 자식들에게 먼저 ‘고맙다, 고생했다, 미안하다’란 인사말을 잊지 않으셨고, 각종 검사와 주사로 바늘을 온몸에 꽂아 대는 간호사들에게도 아프다는 소리보다 ‘수고하셨어요’를 잊지 않으셨다.

아버님의 상태는 나아질 일 보다 나빠지는 일이 더 예정되어 있었고 결국 배변이 힘들어 관장과 소변줄도 착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아버님이 너무 안쓰러워 기분 좋은 생각이라도 하시라고 ‘젊어지실 수 있으면 뭐가 제일 하고 싶으세요?’라고 여쭤보니 아버님의 답 ‘주사가 아프지 않으면 난 오늘이 제일 좋다!’라고 하셨다. 아버님이 많은 것을 하고 싶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요즘이 제일 힘들 줄 알았는데 오늘이 제일 좋으시다니... 한 없이 모자란 맹추 같은 며느리였다. 힘든 오늘이 제일 좋을 만큼 아버님의 젊은 시절은 고단 하셨던 거였고 맹추 같은 며느리는 그제야 아버님의 수고스러운 인생이 그려졌다.


마지막에 간성혼수 증상이 왔을 때에도 아버님은 꿈속에서 계속 일을 하고 계셨고, 일이 끝이 없다는 걱정의 잠꼬대를 하시곤 했다. 마지막엔 음식을 거의 드시지 못해 온 가족의 미션은 아버님이 드실 만한 것을 찾아 매일 아버님의 입에 넣어 드리는 것이었다. 씹지도 못하시고 간성혼수로 정신을 차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져 부드러운 식감의 음식을 구해 오는 것이 가족들의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죽, 요구르트, 푸딩, 연두부, 계란찜 등등 마치 이유식처럼 아기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만 겨우 겨우 넘기고 계신 어느 날, 잘 익은 망고를 구해 아버님에게 갔다. ‘아버님 망고예요, 잘 익었어요, 부드럽고 달아요’라고 얘기하고 숟가락으로 망고를 떠서 입에 넣어 드렸다. 한 입, 두입, 세입 잘 드시더니 아버님이 갑자기 나를 부르시는 거다. ‘어미야~ 어미야~’ 궁금해하는 내게 ‘망고 땡이다!’ 라며 나를 보고 활짝 웃으시는 것이다. ‘망고 땡!, 만고 땡!’ 아버님에겐 그 순간 부드럽고 달콤한 망고가 ‘만 가지 고통의 멈춤-만고 땡’과 같은 것이었다. 병실 안의 아버님과 나도 함께 땡!! 그 순간이 내 가슴에서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멈춰 버렸다. 웃어야 하는데 눈물이 났다. 끝까지 농담을 놓지 않으신 멋진 순간이었다. 아버님의 가장 고통스러운 날들 중 가장 맑은 미소와 길이 남을 농담을 던지신 것이다.

그해 5월 11일 아버님은 담담하게 떠나셨다. 며칠 만에 가장 좋은 바이탈 사인을 보여 주셨고 안심한 자식들이 잠깐 비운 사이 임종하셨다. 아버님 다 우셨다. 요란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농담하듯이 마지막 순간을 자식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으셨던 거다. 2015년 아버님과 보낸 봄을 통해 어쩌면 나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온몸으로 전해주고 가신 듯하다.     


그 무렵 나는 제작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 가시 돋친 고슴도치 같았고 많이 고통스럽게 보냈다. ‘좀 더 독해져야 성공하는 거 아닌가?’ 하는 질문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만할까?’하는 좌절과 ‘인생은 전쟁처럼 싸워 이겨야만 되는 과정’이란 독기들로 내면이 소란스럽던 때였다. 마지막 병원 생활에서의 아버님은 두 주먹 불끈 힘주고 불평불만으로 세상이 모두 미워 보이는 내게 아버님은 ‘얘야 그렇게 힘주면 너만 힘든 거란다. 힘을 풀고 손바닥을 펴보거라, 펴야지 움켜쥘 수도 있는 거지’ 하시는 거 같았다.

인생의 정산은 마지막 한 평의 침상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고맙다’란 말로 맘을 전하고, ‘오늘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후회 없이 살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망고 땡’할 수 있는 농담의 여유를 간직한 품위를 지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잘 살아 낸 인생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인생 문제지의 정답은 늘 간단하고 쉽다란 사실을 79세 인생의 마지막 문을 서서히 닫고 있는 아버님이 온몸으로 알려주신 것이다.       

5년이 지난 2020년 또다시 내게 어려운 봄이 왔다. 예측하지 못했고 계획이 어긋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엔 모두에게 힘겨운 봄날이다. <코로나 19>가 인류 역사상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난이도의 재난이라고 하는데 3차 세계대전이나 핵전쟁을 고민하던 인류에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감기 바이러스가 인류 최고의 재난이라니.. 마치 신이 인간에게 ‘이건 몰랐지?’ 하는 블랙 유머를 건넨 느낌이다.


2020년, 온 지구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봄이 지나면 우리는 얼마나 달라질까? 정말 미래가 앞당겨지는 것일까? 아니면 블랙 유머로 시작한 신의 농담이 종말이라는 진담으로 변하는 것일까? 거창한 이 질문의 답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일상의 소중함과 무심하게 진행되던 것들의 편안함과 모든 나라들은 연결되어 있고, 그 영향은 생각보다 우리의 생활과  많이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바쁘게 바쁘게 돌아가는 지구의 인류에게 강제 멈춤의 이 시간이 어쩌면 내게 온 두 번째 변화와 성찰의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불안은 두려움을 키울 뿐이고, 격려와 응원은 비난보다 큰 힘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모호한 불안과 불평이 아닌 구체적인 해결 방법과 실천이며 배척과 차별보다는 연대와 포용이란 생각이 든다. 아버님이 알려주신 인생의 마법을 2020년 코로나의 시대에 적용해 보려 한다. 여유를 가지고 유머러스하게 주변에 맘을 전해 보면서 잘 이겨내 보려 한다. 올해도 무사히 5월 11일 온 가족이 모여 아버님의 제사에 망고를 올리고 할아버지 덕분에 이국의 과일을 먹는다고 할 수 있길 바라본다. 우리 모두가 ‘만고(萬苦) 땡’이 되는 그 시간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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