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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슬 Aug 23. 2020

취준생도 신문 읽기는 힘들어요

일자목을 가진 사람이 쓴 신문 디자인에 대한 고찰

쇼파에서 읽으면 늘 구깃구깃



요새 종이 신문을 누가 읽어? 저요!

매일 3시간씩 테이블에 거대한 신문을 펼쳐놓는다.

보수성향의 신문을 빼놓고는, 가리지 않고 읽는다.

그래도 선호하는 신문은 한겨레, 경향, 한국일보다.

요새는 인터넷으로도 신문 전체를 볼 수 있지만,

나는 블루라이트가 무섭기 때문에 종이 신문을 본다.




"신문을 왜 읽어요?"


나도 그럴듯한 이유를 들고 싶다.

나는 “읽어야 돼서" 신문을 읽는 것뿐이다.


방공국 입사를 준비하는 언론고시 취준생 중, 신문을 안 읽는 사람이 있을까? 안 읽으면 상식 시험을 통과할 수 없고, 작문에 쓸만한 글감을 모을 수 없다. 피디는 그나마 낫다. 기자지망생은 각종 시사 뉴스쇼까지 챙겨본다.

나한테 신문은 “취업 목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도 나름 멋있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있어서

신문은 세상사의 집약체다. 경제, 정치, 문화, 사회, 스포츠 등 신문을 읽으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논조가 다르기 때문에 풍기는 뉘앙스는 다르지만, 정보에만 집중하면 된다. 누가 어떤 말을 했고, 어디서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정도만 파악한다. 확실히 신문을 읽으면, 세상과 맞닿아있는 기분이 든다. 내가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구나.


덜 무식해져서

똑똑까지는 아니고, 적어도 무식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각종 용어나 상식을 (적어도 이름 정도는) 알 수 있으니까. 언론고시생들은 보통 상식 스터디를 한다. 각자 담당한 신문에서 주요 상식 키워드를 뽑고, 함께 읽어볼 만한 칼럼과 기사를 공유한다. 나는 작문만 하기도 버거워서, 상식 스터디는 아직 들지 않았다. 혼자 망부석처럼 신문을 읽는다.




빨간색, 파란색보다 초록색이 괜히 더 온화한 느낌


나는  이렇게 신문 읽는  힘들까?

신문 읽는 시간을 낭만적으로 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시도했었다.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틀고, 사랑하는 커피를 마셔봤다. 깔끔한 형광펜이나 색연필을 들고 줄을 치며, 나름 지적인 모습을 거실에서 연출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어느 정도 낭만적인 마음으로 신문을 읽었지만,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러다 문득 이유를 알게 됐다.

나는 신문 디자인이 정말 싫다.

테이블 하나를 거의 꽉 채우는 사이즈


우선 너무 크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큰 종이가 있다니.

어마 무시한 크기 때문에 앉아서 읽어도, 서서 읽어도 불편해진다. 앉아 읽으면 완벽한 거북목의 자세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들고 읽기엔, 종이가 너무 크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공원이나 지하철에서 신문 읽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얼굴에 비해 종이가 너무 크다. 서서 읽으면? 팔이 아프다. 팔이 아프고 하단의 기사를 읽기 위해 또 목을 숙이게 된다. 거북목의 반복이다.


그러면 반을 접으면 될까? 소용없다. 물론 몇 개의 기사는 완벽히 50%의 분량만 차지해서, 반을 접으면 편리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사는 간격과 배치가 제각각이다. 반을 접었을 때, 뒷부분까지 내용이 이어진다. 그럼 또 종이를 돌려가면서 기사를 읽어야 한다. 귀찮은 일이다. 대형 2단 독서대를 쓰면, 조금은 편하다. 하지만 "조금" 편한 것뿐이다.





온갖 일이 매일, 매시간 일어나는 세상을 생각하면, 사실 지금의 사이즈도 모자라다. 더 많은 일을 담을 수 없기에, 핵심만 담아도 모자란 사이즈.


그래도, 독자 입장에선 너무 크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책이 나오고, 스마트폰에 맞춰서 세로형 영상이 등장한세상이다. 신문만 디자인의 변화가 없다. 인터넷 뉴스, 인터넷 신문 구독 등 매체의 변화만 있을 뿐, 왜 디자인의 변화는 없을까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해도, 종이 신문은 사라지면 안된다. 신문은 우리 사회의 집약체고, 인터넷 뉴스를 이용하지 않는, 못하는 사람은 늘 있으니까. 디자인이나 언론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나는 그냥 신문을 좀 편하게 읽고 싶다. 거북목과 목디스크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신문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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