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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슬 Dec 30. 2020

나도 프롬에 갈 수 있을까?

영화 <더 프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음악과 춤을 즐길 수 있는 시간. 설렘과 신남으로 가득 차, 보는 사람마저 들뜨게 만드는 공간이 '프롬'이다. 프롬에 갈 드레스를 고르며 꺄르륵거리는 학생들을 보며, 한국에는 왜 프롬 문화가 없는지 낙심한 적도 빈번하다. 좋아하는 남자가 멋진 양복을 입고 나를 데리러 온다니. 아빠가 남자친구에게 무서운 눈빛을 보내며, 어깨를 두드리는 건 웃음을 자아낸다. 춤을 못 춰도 괜찮다. 엉성하게 어깨를 흔들면 되니까! 


파트너 신청을 하지 못해서 안절부절못하는 주인공을 볼 때마다 답답하다. "당장 달려가서 프롬 가자고 해!" 하지만 그게 하이틴 로맨스의 묘미니까,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다. 귀여운 사랑싸움에 지쳐 게이 친구와 함께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주인공도 있다. 게이 친구는 '핫한' 친구가 아닌, 너드에 가깝다. 동성애자 캐릭터를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니. 한숨만 나온다. 머릿속에 그간 봤던 수많은 하이틴 로맨스가 떠오르지 않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더 프롬'은 이런 플롯을 전복시켰다. 주인공 에마로 인해 프롬이 취소된다. 에마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프롬에 참석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학부모회는 동성애자가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동성애자를 프롬에 참석시킬 수 없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고등학교의 가장 큰 축제인 졸업파티가 취소되자, 학생들은 에마를 괴롭힌다. 너 때문에 프롬이 취소됐어! 



에마의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브로드웨이의 스타 디디 앨런(메릴 스트립)과 베리 클리크먼(제임스 코든), 앤지(니콜 키드먼)와 트렌트(앤드류 라넬스)다. 디디와 베리의 신작 뮤지컬은 말 그대로 처참히 망했다. 1회 차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 될 수준으로. 앤지와 트렌트도 주연을 맡지 못해, 조연을 전전하며 브로드웨이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간절했다.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사건이. 


그래서 이들은 에마를 도우러, 인디애나주로 향한다. 예상할 수 있듯, 이들은 에마와 친구가 된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에마에게 들려주고, 속내를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 치밀하게 계획했던 '이미지 개선'은 차츰 흐릿해진다. 결국 이 영화는 에마의 성장 영화가 아니라, 어른들의 성장 영화다. 뻔한 이야기인가? 그런데 왜 지금까지 이 뻔함을 우리는 볼 수 없었을까? 



우리 사회는 동성애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거다. 우여곡절 끝에 프롬이 개최되는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에마를 위한 프롬과 학생들을 위한 프롬 2개가 열린다. 당연히 에마의 프롬에 간 사람은 에마뿐이다. 레즈비언 에마가 갈 수 있는 공간은 이성애자들에 의해 정해졌다. 에마는 프롬에 갔지만, 가지 못했다. 에마는 경계를 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


경계를 넘을 수 없던 에마는 경계를 넓힌다. 모두를 위한 프롬을 개최한다. 인종, 성 정체성, 나이와 상관없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올 수 있는 프롬. 당연히 이 과정은 배우들이 함께 한다. 돈과 명예밖에 모르던 디디가 블랙카드를 던지는 모습은 웃음이 나온다. 뻔하게도, 모두를 위한 프롬에는 에마의 여자친구와 학부모회의 회장도 참석한다. 모두를 위한 프롬에는 포용과 사랑뿐, 배제와 폭력은 없다. 



뮤지컬 영화답게, 기깔나는 노래들이 나온다. '위대한 쇼맨'처럼 화려한 CG는 없다. 대신, 일상적인 공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환상적인 공간에 가는 게 아니라, 에마가 사는 환경에서 노래를 부른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공간의 경계를 생각하게 한다. 에마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까지이며, 에마는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마는 누구와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가? 에마가 학교에서, 집에서, 프롬에서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그곳은 에마의 공간이다.  


한편으로는 개연성이 아쉽기도 하다. 극심한 갈등이 노래와 짧은 대화로 풀려,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결말로 갈수록, 전개의 속도도 빨라진다. 하지만 이런 영화도 필요하다. 현실에서 할 수 없으니, 영화에서라도 유쾌하게 해결해보는 거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프롬은 이성애자를 위한 프롬이었다. 프롬은 당연히 열리는 거였고, 프롬으로 인해 생기는 사랑과 갈등뿐이었다. 레즈비언 하이틴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운 뮤지컬 영화는 없었다. 



그러니 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가볍게 즐겨보자. 이토록 유쾌하고, 가볍고, 사랑스러운 영화는 또 찾기 힘들다. 신나는 노래를 감상하다 보면, 2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모두를 위한 프롬에는 나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아시아 여자인 나도 멋진 옷을 입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은 채 복도를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영어를 하지 못해도,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싶다. 늘 주인공의 프롬을 함께 해주던 게이 친구도 자신의 애인과 춤을 출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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