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
"사니까 사는 걸까?"
사니까 살긴 했다. 그렇지만 늘 삶의 목적을 찾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목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내 삶의 목적은 성장이었다. 앞으로 달려 나갈 이유가 뚜렷하고, 어딘가에 도착함으로써 성장하는 삶. 도착지는 대학 입학이었고, 취업 성공이었다. 때론 아르바이트나 10개국 여행처럼,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소박한 성취도 있었다. 나는 늘 무엇인가를 이루고,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자 했다. 목적이 없어도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런 삶이 힘들지는 않았다. 성취욕이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큰 편이었고, 바쁘게 살 때 스스로를 향한 만족도도 높았다. 육체적인 피곤함과 정신적인 스트레스와는 별개로,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가고 있다는 느낌은 나를 기분 좋게 했다.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좋은 평가에는 마음이 들떴다. 성장이 내 불꽃이라 확신했다.
문제는 목표를 잃어버렸을 때였다. 정말로 내가 이걸 이루고 싶은 걸까? 끝없이 자문했다. 지구통행증에 붙여질 스티커 '불꽃'이 성장이라 믿었던 나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게 내 불꽃이 아닌가? 그럼 뭐가 내 불꽃이지? 나는 어떤 걸 할 때 심장이 뛰지? 근데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는데? 나는 애초에 이 불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의 흐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부정적으로 흘러갔고, 평범한 일상은 성공과 성장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회색빛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참으라고, 버티라고 했으니까.
나의 질문들을 '조 가드너'와 '22번'이라면, 어떤 답변을 내놓았을까. 조는 자신의 불꽃이 재즈라고 확신했고, 재즈 피아니스트로서의 데뷔만을 쫓았다. 학교 선생님으로서의 삶을 증오한 건 아니었지만, 그리 행복해하지도 않았다. 22번은 자신의 불꽃을 찾지 못해 상처 받고 냉소주의에 빠져버렸다. 우리는 둘 중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성공하지 않아도, 꿈이 없어도 된다는 이야기는 이제야 조금씩 들린다. 조와 22번, 22번의 수많은 멘토들은 그걸 몰랐을 뿐이다.
사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느 정도 영화의 메시지를 예측할 수 있다. 이야기는 특별한 반전 없이, 선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향해 달려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 받은 지구의 어른들은 이 영화에 위로받는다. '삶의 목적은 모두가 달라'와 '목적 따위는 없어도 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지구통행증의 불꽃은 삶을 즐길 준비가 되었을 때 생긴다. 베이킹을 했을 때 즐거워서, 오롯한 감각으로 냄새와 햇빛을 받을 때 즐거워서 생겼을 뿐이다.
지구로 갈 준비가 되었냐는 물음은 결국 삶을 즐길 준비가 되었냐는 물음과 같다. 상처 받고 좌절하는 게 지구에서의 삶이지만, 즐거움을 느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구에서 살 수 있다.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이어도 좋다. 무엇이 됐든 우리네 인생을 즐길 수만 있으면, 유세미나에서 지구통행증을 붙이고 지구로 날아갈 수 있다.
삶은 지속된다. 재즈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후에도, 조는 멀끔한 옷을 입고 공연장에서 연주해야 한다. 삶은 유한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무한하다. 이 기나긴 삶은 고작 목적 하나로 달라질 수 없다. 영화의 쿠키 영상에서 테리는 영화가 끝났으니, 어서 가라고 한다. 맞다. 영화는 끝났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극장을 나온 후, 하늘을 보면서 삶을 즐기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