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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ul 15. 2020

스위스와 한국, 달라도 너무 다른 부모 자식 사이

프랑스어로 'Couper le cordon'이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자면 '탯줄을 자르다'라는 말인데,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비슷한 의미의 한국어로는 '이유(離乳), (젖떼기)'가 있다. 언니와 나는 종종 우리가 경제적 독립은 겨우 겨우 해냈지만, 아직 정신적 독립은 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대화를 자주 한다. '이유'는 양방향에서 일어나는데, 나의 부모님 역시 자식을 정신적으로 완전히 분리해내지 못하셨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두 분은 아침저녁으로 내 생사를 확인하신다. 딸을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두고픈 마음에 내가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신다. 직접 말은 안 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내색하시며.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나는 이곳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새삼 지구 반대편에 와있음을 느끼곤 한다.

 


서른 살 친구 A는 열여덟 살에 집을 떠났다. 해외에서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다니다 얼마 전 고국으로 돌아왔다. 스위스를 떠난 지 오래되어서 다시 살 곳을 찾아야 했다. 친구는 제네바에 사는 엄마의 집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았다. 돌아오기 전부터 하우스메이트를 찾다가 다섯 명이 함께 사는 집을 구했고, 귀국과 동시에 그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나는 왜 집을 구하는 동안이라도 부모님 댁에 머물지 않았냐고 물었다.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한 번 집을 떠난 자식은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게 우리 집의 룰이야

"내게 부모님은 긴급한 상황이면 언제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존재야, 그래도 내 힘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땐 절대 손을 벌리지 않아"

게다가 엄마는 새로운 남자친구와 살고 있어, 사생활을 침해하고 싶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자기는 엄마의 새 파트너와도 친하지 않아 세 명 모두가 불편할 거라는 것이다.



스물아홉 살 친구 B는 도시를 떠나본 적 없는 제네바 토박이다.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 스물다섯 살에 부모님 집을 나왔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독립했다고 했다) 그 집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의 작은 아파트를 얻어 살고 있다.

난 또 천진난만하게 친구에게 말했다. "오, 그러면 부모님 댁에서 자주 밥도 먹고 편하겠다!"

친구는 말했다. "아니, 일주일에 한 번 먹기도 힘들어. 나도 내 삶이 있으니깐.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너그러운 편이라 먹을 걸 자주 나눠주셔. 내가 필요하면 도와주시기도 하고."

부모에게 '관대한, 너그러운(généreux)'이라는 형용사를 붙인다는 게 재미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어떤 한국인도 자신의 부모를 그렇게 묘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부모의 아낌없는 베풂에 익숙하니깐. 받는 게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니깐. 서울에 있다가 가끔 집에 내려가면,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고 끼니마다 엄마의 진수성찬을 받아먹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 B는 독립한 이후엔 부모님께서 한 달 동안 여름휴가를 가실 때만 본가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부모님 대신 정원을 가꾸고, 고양이를 돌봐주기 위해서다. 그는 작은 아파트에 살다가 혼자 넓은 집을 쓸 수 있어 좋다며 해맑게 웃었다.  



친구 C에게는 베트남계 미국인 여자친구가 있다. 미래를 약속한 사이라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자 미국으로 갔다. 친구는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미국에서 거의 반백 년을 살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은 베트남을 떠나오던 7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서른 살 먹은 귀여운 딸이 외간 남자와 한방에서 자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식사 후 친구 C는 호텔방으로 보내졌다. 친구는 호텔 침대에 홀로 누워 더없이 우울했다고 했다.

"13시간을 날아서 미국으로 갔잖아. 그런 문전박대는 생전 처음이었어. 애인 방 말고 남는 방도 있었다고"

죽상을 하고 있는 친구를 달래려고 진땀을 빼야 했다. 아시아 문화권에선 처음 보는 사이에 집에서 재워주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차라리 그냥 친구라면 몰라도 깊은 사이일수록 조심스러운 법이라고 말해줬다. 또 아마 호텔방을 예약해준 것이 그들 기준에선 최대의 환대였을 것이라고.

기분을 풀어주고자 주절주절 거렸지만 실은 나 자신도 내 말에 설득되지 않았다. 나도 그들의 부모가 어쩐지 쌀쌀맞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선 그렇게 진지한 사이가 아니어도 집에 놀러 온 자녀의 이성 친구에게 방을 내주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고작 해외 생활 몇 년에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된 것일까.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두가 다른 것처럼, 한 사람이 구성하는 가족, 혹은 한 사람을 탄생시킨 가족 역시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그저 내 경험과 내 주변을 통해서만 가족을 이해할 뿐이다. 그 속에서 문화적 특수성을 끌어내 보자면, 서구권에서는 가족이라는 집단보다 가족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행복에 더 큰 가치를 두고, 물리적·정서적 독립이 빠른 편이다. 웬만해선 금전적으로도 서로 의지하지 않는다. 아주 부자 부모가 아니고서야 결혼하는 자식에게 돈을 보태지 않고, 자식들은 부모가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지 않는 한, 은퇴한 부모에게 다달이 용돈을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어버이날에 돈으로 만든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 A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돈 자랑이 금기시되는 사회에서 돈을 선물로 준다는 것은 멋없고 속물스러운 것으로 비친다.



이러한 문화 차이는 말 그대로 차이에 불과하지, 옳고 그름은 없다. 다만 만약 언젠가 부모가 되는 날이 내게도 온다면 어떤 부모가 되어야 좋을지 생각해본다. 사실 엄마 아빠의 지극히 한국적인, 넘치는 애정과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당신들의 삶을 흐릿하게 지우는 희생에 죄책감도 느낀다. 그러면서도 내 인생에 불쑥 끼어들 때마다 짜증이란 짜증은 다 부리며 내 영역을 주장한다. 두 사람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는 느낌이 들어야 직성이 풀리지만, 동시에 영원한 응석쟁이 막내딸로 한없이 보살핌은 받고 싶다. 이렇게나 모순덩어리인데 감히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 힐링캠프, 구글 이미지 검색


배우 강혜정은 자식을 하늘 위로 높이 날리고 싶은 욕심을 거두고, 그저 바람 가는 대로 놔주면 더 자유롭게 날아갈 거라고 했다. 멋진 생각이다. 이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아는 쿨한 스위스 부모들은 모두 수준급 연날리기 선수일 것이다. 그들에겐 자식이 품을 떠난 인생도 그 자체로 완전한 듯하다. 나이가 들어서 더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으면 싶다.  

하지만 결국 오늘의 나를 빚어낸 것은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는지, 안전한 길로 다니는지, 자식의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두 사람의 사랑이었다. 그러니 연줄을 잘 놓아주는 서양의 쿨한 부모가 되는 일은 내게도 요원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미움보다는 감사와 애정이 가득한 관계였으면 한다. 나의 부모님과 내가 가꿔 온 관계가 그러하듯... 다만 서로에 대한 의무의 무게는 한결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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