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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ul 08. 2020

그리움을 달래는 글쓰기

아무리 시시해도 써야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불확실해진 시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답이 없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행복했던 지난날을 애틋하게 그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준비도 없이 덜컥 브런치를 하게 된 것도 반짝이던 순간을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금세 이 작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달았다.


그리움을 담은 글은 추억을 불멸화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나의 추억 속에는 대체할 수 없는 사람과, 그 사람의 말소리와 표정, 그 날의 공기와 향기가 있다. 욕심이 많은 나는 이 모든 것에다 내가 느꼈던 감정까지 담아, 풍성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싶다. 그런데 턱없이 부족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학창 시절 이후 글이라 할만한 글을 써본 적이 없으니깐. 수포자였으면서 수능날 갑자기 그분이 오셔서 1등급이 나오길 바랐던 것만큼이나 허황된 꿈이다.  


아래는 여름을 주제로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서랍에 넣어두었던 글의 일부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사는 건 큰 복이다. 계절마다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으니깐! 모든 계절을 공평하게 좋아하려 하지만, 여름이 좋은 이유를 열 가지는 더 나열할 수 있다. 여름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는 여름 하면 떠오르는 근사한 추억 덕분일 것이다.
여름 방학이면 어김없이 할아버지 댁에 갔다. 하루 종일 정체불명의 온갖 벌레와 사투를 벌여야 하고, 더운 날이면 진한 향기가 배가 되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시골집이었다. 그래도 방학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이유는 할아버지의 과수원 때문이었다. 자두밭은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남부의 햇살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였다. 할아버지는 밭에서 기웃거리는 나를 불러다 자두를 따주셨다. 고심해서 제일 탐스럽고 어여쁜 한 알을 고르셨다. 당분이 많은 맛있는 자두에는 하얀 가루가 뽀얗게 묻어있다. 그 하얀 가루가 사라지고 반짝반짝 윤이 날 때까지 당신의 낡은 셔츠에 닦아 건네셨다. 한 켠에 푹 익어 떨어지거나, 못생긴 자두가 담긴 들통이 줄지어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갓 딴 탱탱한 자두는 특상품으로 분류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바로 먹기엔 너무 새그러웠다. ('시다'의 경상도 방언) 별로 내키지 않아도, 할아버지 앞에선 신 맛에 찌푸려지는 눈살을 숨기며 먹었다. 나눌 말이 그리 많지 않은 할아버지와 손녀였지만 자두 한알을 두고 나눌 마음은 컸나 보다.
내가 편애한 것은 할아버지의 복숭아였다. 배만큼이나 커다란 백도였다. 팔목을 타고 과즙이 줄줄 흐르는 복숭아는 유럽의 납작 복숭아 저리 가라 할 만큼 달콤했다.
포근한 여름밤 냄새를 맡으면 사랑하는 계절이 다시 돌아왔음을 느낀다. 그럼 햇살을 머금은 여름 과일을 잔뜩 산다. 언니는 숨도 안 쉬고 과일을 먹어 해치우는 나를 보고 과일 청소기라고 했다. 복숭아, 자두, 수박, 멜론을 한입 크기로 썰어놓고 종일 먹는 것이 여름날의 행복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내가 있던 과수원에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그런데 쓰고 보니 내 기억과 가장 가깝게, 생생하게 그려내지 못해 속상했다.


단숨에 읽히고 담백하면서도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꾸미지 않고도 아름다운 글이었으면 한다. 참 욕심도 많지. 글의 비루함에 낙심하고 있을 때, 피에르 쌍소의 책에서 위안이 되는 구절을 발견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른 타입의 예술가들이 걷는 길을 생각해보고 싶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예술작품은 길고 긴 인내심의 열매이다. 그들은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던 기나긴 침묵 후에 비로소 말을 꺼내려는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이런 태도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 하나는 그 분야에서의 재능이나 천재성이 천천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 작가나 화가들은 표현할 어휘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밤낮으로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마침내 가장 적절한 것을 찾아내게 된다. ... 장 지오노는 언젠가 말하기를 5백 페이지의 분량에 담아낼 수 있는 한 사건이 자신의 삶 속에 그야말로 뒤죽박죽인 채로 어느 순간 자신에게 내동댕이쳐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야기를 풀어내기까지 10년, 20년의 세월을 기다릴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중


위 대목에 등장하는 '예술가', '재능', '천재성'과 같은 단어를 감히 내게 갖다 붙일 수 없다는 것을 재빨리 인정했다. 그런 내게는 글 쓰는 일이 더더욱 어렵고,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시간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대단한 작품을 쓰려는 야망이 없는 것은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꼭 훌륭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저 내 이야기를 써야지.


그리움을 기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그 과정에는 적어도 내 기억을 글로써 보존할 수 있다는 사사로운 기쁨은 있을 것이다. 시시해도 써야지. 꾸준히 쓰다 보면 원하는 방향에 천천히 가까워지리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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