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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ul 23. 2020

길 위의 끈질긴 괴롭힘, 캣콜링

여성에게 안전한 길거리란?  

이전 글을 다시 읽다가 '안전한 길'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안전하다'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형용사) 위험이 생기거나 사고가 날 염려가 없다. 출처-표준국어대사전


그렇다면 뚜껑 열린 맨홀이 없거나, 걷다가 멧돼지나 곰의 습격을 받을 위험이 없는 길을 뜻할까?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차적 의미의 안전한 길에 가깝다. 하지만 일어날 확률이 희박해 되려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린다.


사실 부모가 자신의 딸에게 안전한 길로 다니라 할 때의 의미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수상한 사람들이 배회하지 않는 치안 좋은 동네, 낯선 이가 쫓아오며 괴롭혀도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언제나 북적이는 길, 깜깜한 밤에는 사방의 가로등 빛이 환히 밝혀주는 골목...


이런 곳으로만 다닌다면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까? 우선 이런 길만을 골라 다니려면 이동의 자유가 엄청나게 침해당한다. 게다가 매번 수고를 감수한다고 해도, 불행한 일은 일어난다. 피해자의 주의 여부와 관계없이 가해자는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기에. 유럽의 길거리에서 가장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폭력은 '길거리 괴롭힘(Harcèlement de rue/ street harassment)'이다.


'예쁘다는 칭찬이 독이 될 때' 에서 드러나듯 나는 외모 평가에 민감하다. 이는 평생에 걸친 경험이 쌓여 만든 결과일 테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파리에서의 불쾌한 기억들 때문이다. 홀로 외출할 때면 어김없이 캣콜링을 당했다. 아무런 일도 없는 날은 '웬일로 운이 좋다'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파리는 내게 애증의 도시인데, 미워하는 감정의 팔 할은 길거리에서 비롯되었다. 바란 적 없는 평가와 기상천외한 희롱이 설레는 외출을 망쳐버리기 일쑤였다.



캣콜링과 플러팅의 명확한 경계

파리에 살 때 매일같이 무례한 품평에 노출되어야 했다고 말하자 듣고 있던 지인이 물었다. "관심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요?" 이 순진한 질문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캣콜링과 플러팅(flirting)과의 차이는 당해본 사람이라면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플러팅은 한국보다는 유럽에서 좀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작업'의 형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데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서 일단 상대에게 자신과 대화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살피고, 불편해하지는 않는지를 확인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플러팅이다.


캣콜링은 제 갈길을 가고 있는 불특정 여성(때로는 성소수자 남성)이 대상이 된다. 캣콜링을 하는 사람들은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을 아무런 필터 없이 쏟아낸다. 듣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지는 애초에 고려 사항이 아니다. 듣는 사람은 칭찬인지 아닌지 헷갈릴 겨를이 없다. 즉시 불쾌함과 모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대꾸해야 할지, 못 들은 척할지 망설여지는 칭찬은 없으리라.

체구가 작은 동양 여성은 가장 만만한 표적이 되었다. '니하오' '곤니찌와', 때로는 휘파람이 그들에겐 인사가 된다. 이렇게 간편하고도 일방적인 인사가 또 있을까?  

파리의 길거리에서 내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품평의 대상이 되었다. '목이 예쁘다' '네 발이 마음에 든다'라는 말도 들었다. 마치 정육점의 고기를 짚으며 이 부위가 괜찮다고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이다. 그 뻔뻔함에 기가 막혔다. 길거리의 낯선 이들이 나의 몸을 규정하고 제약했다.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여성들이 유사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서유럽 5개국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IFOP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86%가 길거리 괴롭힘을 당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몸을 평가하는 말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여성은 자신의 몸이 더는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kQLQPjHqbGg

2018년 프랑스에서 화제가 되었던 영상이다. 집으로 향하던 대학생 마리 라게르에게 한 남자가 나타나 성적인 언어로 희롱했고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이에 분노한 마리는 닥치라고 말했고, 남성은 옆에 있는 재떨이를 던졌다. 재떨이가 빗나가자 따라와 마리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후 마리는 당시 상황이 담긴 CCTV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고, 영상은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공분을 샀다. 마리는 자신이 당한 일은 수많은 여성이 겪고 있는 일상이며, 자신의 사건이 다른 점은 그저 목격자와 촬영 영상이 있었다는 것뿐이라고 했다. CCTV를 통해 남성의 신분을 확보했고, 마리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는 길거리 폭력을 강하게 처벌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거리나 대중교통에서 개인을 향해 성적인 모욕이나 협박을 할 경우 90유로에서 750유로에 달하는 벌금을 과하는 내용의 법이다. 시행 이후 1년 동안 700건의 벌금이 부과되었다고 하니 전혀 실효성이 없는 법도 아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했다

프랑스는 페미니즘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곳이다. 페미니즘의 토대가 되는 사상과 이론이 탄생했으며, 여전히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겪은 프랑스에서 양성 평등의 길은 여전히 멀기만 했다. 대중의 인식 수준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투 운동이 활발히 전개될 때에는 사회 각층에서 논란이 일었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유혹'하는 것은 프랑스의 오랜 문화인데, 이를 무작정 억압해버리면 로맨스가 파괴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유명 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남성에게는 여성을 유혹할 자유가 있다"며 미투 운동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했다. 성폭력과 유혹도 구분을 못하는 마당에, 길거리에서 여성이 듣는 언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리 만무할 것이다.


수년 전, 내가 파리에 있었을 때는 '길거리 괴롭힘'이라는 개념 자체가 널리 퍼져있지 않았다. 요즈음 상황이 나아졌는지는 직접 겪어볼 수 없으니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불편한 감정을 불편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생겼을 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길거리 괴롭힘'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아, 캣콜링도 폭력이라는 인식이 퍼졌길 바란다. 적어도 길가는 사람을 멈춰 세워 집요하게 말을 거는 행위가 당하는 사람에게 전혀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대다수가 알게 됐을 것이다.



누구도 길에서 불안감에 움츠러들지 않기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권리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21세기에 더는 길거리의 안전을 논할 이유가 없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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