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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Nov 09. 2020

외국어와 사랑에 빠지는 일

불어를 배워서 좋은 점 

"왜 불어를 배우게 되었나요?" 처음 만나는 이들은 으레 같은 질문을 던지지만 매번 그럴싸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대학교에서 처음 배웠으니 꽤 오래된 일이기도 하거니와,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재수를 할 때 우연히 읽은 책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내 생애 가장 많은 독서를 한 시절이기도 했다. 집에서 홍세화의 '파리의 택시 운전사', 목수정의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 등의 책을 발견해 탐독했다. 프랑스의 가치와 문화는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처음으로 프랑스라는 나라가 내 삶에 들어왔다. 재수생으로서 무엇보다 자유와 새로움을 갈망했던 시기였기에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프랑스의 '자유'가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불문학과에 지원했고 알파벳도 한 자 모르는 채 불문학도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moi et toi (뜻: 나와 너, 발음: 무아 에 뚜아)라는 '모이 에트 토이'라고 자신 있게 읽는 수준이었다. 대학교 교양 수업으로 불어의 기초를 겨우 익혔던 언니가 내 발음을 마음껏 비웃었다. 


수업에서 처음 접한 불어의 낯선 소리는 아름다웠다. 허밍을 하는 듯 리듬이 넘쳐흘렀고, 귓가에 속삭이는 듯 다정했다. 불어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당시 불어를 향한 나의 사랑은 허무맹랑했다. 교환학생을 앞두고 프랑스인 직원과 여러 번 통화할 일이 있었다. 통화 내용의 절반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긋나긋 설명해주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어찌나 섹시하던지. 얼굴도 모르는 그를 거의 흠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가서 보니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대머리 아저씨였더랬다. 버스에서 들려오는 끊임없는 수다 소리도 우아하게만 들려왔다.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던 때였다. 아무리 한심한 이야기도 프랑스어라는 껍데기를 두르고 나타나면 격조 높은 토론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한심한 소리는 어떤 껍데기를 걸쳐도 한심한 소리란 것을 깨닫기 까지, 그러니까 불어의 마성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 해도 모국어가 아닌 언어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마법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여러 가지 이점도 있었다.


첫 번째 좋은 점은 문화 자산이 늘어난 것이다. 언어 감각은 없지만 눈치는 빨랐던 나는 아무리 이 언어를 열심히 해도 원어민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하단 걸 직감했다. 그 이유는 내게는 프랑스어권에서 자란 사람들이 가진 문화적 배경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커다란 구멍을 메우기 위해 문학 작품과 영화를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한국과 미국의 대중문화만을 접하고 자란 내게 보들레르의 시와 트뤼포의 영화는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왔다. 좋아하는 불어 단어 중  'nourrir'라는 동사가 있다. 첫 번째 뜻은 '먹이다'이지만, 상상력, 창의력, 영감, 사고, 정신 등의 명사와 결합하여 '채우다, 살찌우다, 함양하다'라는 뜻이 된다. 20대 초반 처음 접한 프랑스의 문화는 말 그대로 '나를 채우고 지탱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는 프랑스가 대단한 문화 강국이어서가 아니다. 문화에 우열이 어디 있으랴. 스페인어나 중국어 등 다른 외국어를 배웠다면 지금의 나는 그 문화로 채워져 조금은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되었을 거란 게 흥미롭다. 우연히 만난 프랑스어는 나의 세상을 넓혀주는 멋진 도구가 되었다.  


대학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프랑스의 예술가들의 묘지에서 (좌: 세르주 갱스부르, 우: 시몬 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두 번째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다중언어 사용자가 각 언어의 특성에 따라 성격이 바뀐다고 증언한다. 성격이 완전히 바뀌는지는 스스로 측정해볼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숨겨져 있던 면이 부각되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불어를 할 때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고, 거기에다 이유까지 붙이는 사람이 된다. 거절을 할 때도 불편함을 덜 느낀다. 이는 의사 표현이 논리적이고 솔직할수록 환영받는다고 프랑스 문화권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출처_이미지


또한 모국어에 없는 표현을 배우며, 사고방식을 전환할 수 있었다. 불어로 'Tu me manques'는 보고 싶다는 뜻으로 직역하면 '네가 내게 없다'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로맨틱한 표현인가. 이 말이 너무 좋아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남발했던 때도 있다. 어쨌거나 전혀 다른 문장 구조와, 모국어에 없는 표현을 배우면 '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하며 대단한 발견을 한 기분이 든다. 


세 번째로 불어를 배우면 다른 언어도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분명히 불어는 한국인에게 쉬운 언어가 아니다. 쓸데없이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다. 불어를 배우는 동기들끼리 프랑스인의 성격이 고약한 것은 언어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위 표에 따르면 전 세계 언어 중 한국어와 프랑스는 언어학적으로 가장 거리가 멀다. 프랑스어가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그건 학습자의 언어 능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나를 위로해왔다. 모국어와는 닮은 구석을 찾기 힘든 이 언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말하는 수준에 올라서면 다른 언어는 수월하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용기가 밀려온다. 



출처_에밀리, 파리에 가다


내가 만난 프랑스는 똘레랑스의 나라도, 로맨스의 나라도 아니었다. 이제는 이런 수식어가 붙는 걸 볼 때마다 코웃음을 치게 된다. 모든 사회가 그렇듯 장점과 단점이 있었다. 유감인 것은 환상을 와장창 깨는 모습을 수없이 맞닥뜨리며 단점이 훨씬 극명하게 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어에 대한 나의 깊은 애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즐겁게 배우고 있으며, 내가 놓지 않는 한, 이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안다.


다음 글에서는 게으르지만 끈질긴 불어 학습자의 공부 방법을 다뤄보겠다.  




참고

https://1boon.kakao.com/ttimes/ttimes_1703141849

https://www.theatlantic.com/international/archive/2013/05/language-distance-the-reason-immigrants-have-trouble-assimilating/275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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