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1일의 기록
2017년은 내게 있어 경찰이 아닌 기자로 생활한 첫 해였다. 평생 경찰로 살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은 사표를 내면서 산산조각이 났지만, 기자를 꿈꾸거나 준비한 적 없는 나에게는 너무도 벅찬 한 해였다. (지금 회사에 지원한 건 순전히 언론사는 면접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였다.)
‘언시생’이라는 별칭을 가진 언론인 지망생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몰랐었다. 연습으로라도 기사를 써 보거나 흉내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백지같이 하얀 상태로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심판을 취재한다고 헌법재판소를 매일같이 들락거리면서 1월, 2월이 다 갔다.
경찰을 할 때는 한 번도 경찰로서의 자질이나 적성을 의심한 적 없을 정도로 경찰 일에 자심감을 갖고 있던 나였는데, 꿈꿔본 적도 없었던 기자 일을 하면서 ‘내가 기자를 해도 되나’하는 회의감이 자꾸만 들었다. 경찰대학을 다니면서 고전을 읽거나 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도 없던 터라 스스로의 무식함과 부족함만 자꾸 보였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내색은 안 했지만 열등감이 속을 갉아먹었다. 한편으로는 나보다 더 유능하고 기자 준비를 오래 한 사람들의 자리를 뺏은 건 아닐까, 우리 회사가 나를 과대평가해서 뽑는 실수를 저지른 건 아닐까 하는 이유없는 죄책감에 움츠러들기만 했던 게 2017년 상반기였다.
여름휴가 때 읽으려고 가져간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벼락같은 위안의 말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움츠러든 나머지 이 길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견해로서는 오히려 식민지적인 가치관•문제의식•세계관을 주입하는 것을 소임으로 하는 이 나라의 대학교육을 받은 젊은이보다는, 차라리 공장노동자나 농사꾼이나 지게꾼이 뭣인가를 느끼고 분발해서 기자가 될 수 있는 길이 트여 있었다면 우리의 기자풍토가 오늘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 리영희, <기자 풍토 縱橫記> 중 -
2017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영화 <1987>을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 집에 오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얼얼한 것이 꼭 사표쓰기 전 병가를 내고 깨면 울다 지쳐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며 아무것도 안 먹고 물만 마셨던 그 사흘간의 봄날에 느꼈던 기분이었다. “애국”이라는 미명 하에 야만적인 폭력을 휘두르고도, 사람을 죽여놓고도 뻔뻔했던 경찰도 나의 선배고, 엄혹했던 그 야만의 시대에 보도지침을 무시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집요하게 취재해서 보도한 기자들도 나의 선배다.
경찰이 하는 일과 기자가 하는 일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탐사보도 기자의 취재활동은 법적 권한만 없을 뿐이지 경찰 정보관과 수사관이 하는 일을 합친 것과 같다.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직업적 사명도 닮아 있고, 공익을 져버리고 사익을 추구했을 때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크다는 점도 비슷하다. 나에게 피부로 와닿는 가장 큰 차이점은 의전이나 보고서 글자 사이 간격 조정 같은 쓸데없는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제로섬 게임 같은 승진 레이스도 없고, 윗사람에게 잘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언론사라서가 아니라 지금 있는 회사가 그런 것 같다).
새해에는 기자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좋은 기사를 써 보고 싶다. 제대로 된 취재로 세상을 올바르게 바꿔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야 1987년을 살았던 모두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