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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경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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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색림 May 28. 2020

피, 땀, 욕

파출소 시절의 기록 (2013년)

흰 벽은 피로 얼룩졌다. 제복은 땀에 절고 찢어졌다. 영혼은 주취자들이 내뱉는 욕에 거칠어져 갔다. 파출소에서 보낸 1년 동안 나는 주취자를 제압하고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모르던 욕도 참 많이 익혔다.


그 때 남겨둔 짤막한 기록과 사진들을 여기에 모아봤다. 모아놓고 보니 그림일기 같다. 어려서 그랬는지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이 많다. 크게 다치지 않으면 감사했던 그 나날들이 돌이켜보면 참 소중하다.


2013년 6월 9일

주말 아침 주간근무를 위해 출근을 했는데 
근무교대하면서 다른 팀 직원분이 농담처럼 성적 발언을 나를 겨냥해서, 그것도 두 번이나 했다
성희롱 개념을 잘 모르시거나, 친하게 지내고 싶거나, 딸 같아서 그랬거나 야간 하고 나서 피곤한데 젊은 여직원 있네 농담이나 따먹을까 이런 생각일 수도 있지만
다른 직원들 앞에서 내가 '경찰'이 아니라 '여자'라는 것만 부각시키는 데서 기분이 나빴다
바로 "부장님,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라고 대응했더니 생각보다 의외로 "앞으로 안 그러마" 하셨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사실 성격만 봐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남자로 태어났을 거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경찰을 꿈꿨고 스스로 경찰의 길을 걷기로 선택했다

왜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부분을 건드려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가
왜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서 보지 않고 성적인 도구처럼 보는가  


2013년 6월 21일

밤새 근무하다 온 사람들 잠도 못 자게 붙잡아두고선 교육하는 것도 모자라 실적 운운하는 게 리더라는 사람이 할 일인가  


2013년 6월 24일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일 것을 강요하고 이상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변화와 혁신을 거부한다
진창 속에서도 별을 보는 사람들에게 '다른 길을 찾아보라'하며 특이한 사람,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고 다 내쫓고 상사가 시키는 것에 '예스맨'이 되는 영혼없는 자들이 '유능한' 사람이 되어 조직의 수장이 된다 

진짜 '현실적'인 것은 문제를 직시하고 바꿔야 할 부분을 바꾸는 것이지 그동안 해왔던 대로 상사의 입맛에 맞추고 답습하는 것이 아니다
이 조직이야말로 정말 현실성이 없는 조직이란 생각이 든다   


2013년 7월 10일

수진1파출소 젊은직원들끼리

옥탑방 바베큐파티

다행히 비도 안오고

숯불삼겹살은 입에서 살살 녹고

같이 구운 오리랑 새우랑

홍초소주는 쭉쭉 들어가고

바람은 살랑살랑

옥탑방 야경은 예술^^   


2013년 7월 22일

만나고 헤어짐이 반복되는 게 인생이라지만 짧은 만남만으로도 서로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위했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건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다 

정드니까 다른 곳으로 발령내고,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지는 건 정말 못할짓이다  


2013년 7월 27일

비 안오는 더운 금요일밤엔 출근과 동시에 무전기와 파출소 전화기에 불이 나듯 신고가 쏟아진다

서로 욕하고 때리고 뜯고 싸우고 패고 울고 때려부수고 집나가서 안돌아오고 길거리에 쓰러져 자고 시비걸고 협박하고 칼들고 소란피우고 경찰한테 화풀이하고 훔쳐가고 한번만 봐달라고 비는가 하면 고소할거라고 으름장놓고..

진상들의 난상콘서트다
아니 이건 거의 전쟁터다
눈코뜰새없다는 게 뭔지 알겠다

한바탕 전투가 끝나고 이제 겨우 한숨돌리며.. 후아   


2013년 7월 31일

우리 파출소엔 여직원 방이 따로 없고 파출소 건물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는 한 칸짜리 컨테이너박스가 휴식처다
남자 직원들도 오길 꺼려하는 곳이라 그런지 순찰도는 여자직원은 나 하나고 워낙 여직원 잘 안보내는 곳이라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것 같다

어쩌다 휴게 때 (그러니까 사건이 좀 적어서 잘 수 있는 날에) 자려고 누우면 바깥에서 들리는 차소리, 말다툼소리, 심지어 발자국 소리까지 다 들린다
처음엔 이게 적응이 안 되서 잠이 안 오면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휴게 아닌 젊은 직원끼리 카톡하고 놀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웜홀체험마냥 눈 감았다 뜨면 휴게는 끝나 있다

오늘은 신고 때문에 늦어서 자려고 이 컨테이너 박스 안에 몸을 뉘였는데 새벽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후드득, 이 작은 공간을 두들기는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처음 우리 파출소에 왔을 때, 다들 여경을 어떻게 거기다 발령을 내느냐, 거기 유배지나 다름없다, 등등 걱정을 쏟아내셨던 기억이 난다 
겁이 없어서인지 아무 생각없이 이것저것 배우려고 하다보니 이젠 많이 익숙해지고 할 때마다 나아지고 더 잘하는 것 같아 뿌듯할 때도 있고,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여자로 태어난 사실이 내가 선택한 경찰이 된 것에 여전히 어느 정도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속상할 때도 있었다
진상들이 술먹고 어거지부리고 술주정하면 화나고 왜 저럴까 싶다가도, 이부장님과 이순경님 발령나셨을 때 너무 서운해서 펑펑 울었을 정도로 좋은 분들과 만난 것을 생각하면, 지난 2달 반 남짓의 파출소 근무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비가 오니 말이 많아진다.
이래서 비오는 날 술마신 우리 고객님들이 말씀이 많으신가 보다 ^^
삼십분만 자고 다시 근무하다 퇴근해야겠다   


2013년 8월 5일 (1)

파출소에 흥건한 피를 닦아내니 새들이 지저귀고 동이 튼다

이런 날엔 직장교육 면제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2013년 8월 5일 (2)

새벽 내내 제복에 피묻혀가면서 칼부림 및 패싸움 사건과 그 이후에 쏟아진 폭행 시비 소음 신고 처리해서 한숨도 못자고 간 직장교육의 주제는 '건강한 삶 살기'

강사분이신 한의사님은 숙면을 취해야 백년만년 산다는 등 썰을 푸셨다
나는 내가 숙면을 취할 시간에 집에 가서 쉬지도 못하고 두 시간 꽉꽉 채워서 건강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숙면을 취하는 방법을 듣고 있었다
직원들 건강 지켜주고 싶으면 그냥 직원들 퇴근 후에 집에 가게 해 주면 된다

괜히 일벌리지 말고


2013년 8월 7일 (1)

요새 들어 파출소가 피로 얼룩진다 흫


2013년 8월 7일 (2)

만취상태로 행패부리던 주취자 집에 좀 보내려니까 나더러 '뭔 여자가 이렇게 독하냐'며 집에 갔다
근무하면서 쌍욕 아닌 말 중에 그나마 칭찬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유일한 듯

그래도 적극적 채증을 위해 구입한 헤드셋 캠코더 (귀에 걸치면 머리 옆에서 다 녹화되고 가끔 뛰어다니던 상황을 돌려서 보면 꼭 써든어택 같다) 가 효과가 있는지 녹화하고 있다고 경고를 몇 번 주면 쌍욕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평소 바른말 고운말만 써온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아무튼 사람들은 교활하다 


2013년 8월 16일

어제 야간근무하고 직장교육으로 비번의 반나절을 까먹고 오늘 아침부터 개인적으로 할 일을 오전내내 하다가 오후 한시부터 행사동원
행사동원 내내 대기
끝나고 바로 야간근무 출근

꾸준히 들어오는 신고에 신고 열심히 뛰고 
머리써서 서류작성하고 사람들을 달래고 혼내고 상담하고 났더니 무진장 배고프다 ㅠ.ㅠ 

생각해보니 두 끼밖에 안먹었다 그나마 한 끼는 샌드위치 한 끼는 컵라면...
휴게에 들어가는 이 시간에 뭘 먹을 수도 없고...
그나저나 야간근무 들어가는 직원을 낮에 동원시키는 건 좀 너무한 것 같다..   


2013년 8월 18일

아이들은 죄가 없다
단지 보고 자라는 걸 스펀지처럼 흡수할 뿐이다

역대 최연소 주취자 신고였는데 12살 꼬마가 자신에게 치사량에 가까운 깡소주를 두 병 가까이 마시고 괴로워해서 구급차가 데려갔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란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계속 줬댄다

칼부림 떼폭 자해 등등 
오히려 피보는 사건은 아무 감정도 안 드는데 단지 사람들이 가난과 사회에 대한 울분을 술로 풀고 주먹으로 푸는 게 다반사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야 했던, 자라나고 있는 그 가엾은 아이는 계속 눈에 밟힌다 

맘이 아프다   


2013년 8월 21일

파출소생활의 묘미 중 하나

히히   


2013년 8월 24일

"토론할 때는 윗사람의 의견과 상관없이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게 토론 단계에서의 충성이다.
 (...) 어디서나 주인으로서 주체적인 의식을 지니며 조직에 기여하면 그게 바로 올바른 충성 아니겠나."

-본문 중-

조직에 무조건적이고 무비판적인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읽어봤으면 하는 책   


2013년 8월 25일

영화에서 보면 수갑도 참 멋지게 채우드만

실제론 반항하는 피의자 수갑채우고 끌어올리면서 아스팔트에 긁혀서 손에서 피나는 이 안타까운 현실..

에잇 없어보여 짜증나  


2013년 9월 8일

추석을 앞두고 소고기를 훔치다 발각되어 파출소로 온 부부
평소 부모님께 고기 한 번 제대로 사드린 적 없는 죄스러움 때문에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져 범행을 저질렀다는 남편의 진술서를 읽다가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   


2013년 9월 14일

같은 일을 똑같이 해도 왜 여자 경찰관이 하면 독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경찰관이 되고 싶었지 독한 여경 소리 듣고 싶었던 건 아닌데 피의자 체포하고 수갑채우고 법대로 하면 피의자들이 꼭 독한년 뭔 여자가 저리 독하냐 한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여자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낮길레..
그보다 내가 경찰이란 것보다 여자란 것에 왜 그렇게 신경을 쓰지?
여자로 태어난 건 선택할 수 없었어도 경찰이 되기로 한 건 내가 선택한건데 

내 선택을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다

모욕죄 처리하고 모욕 그 자체보다 이게 더 기분나쁜 게 이상한건가  


2013년 9월 23일

간밤에 휴대폰 절도가 발생했다
CCTV 돌려보고 용의자를 특정하고 PC방 업주의 도움으로 신원정보까지 확인해놓고

발생보고로 인계하려 했는데 새벽에 옆 관내 파출소에 피해 핸드폰이 들어왔다고 연락이 와서 가서 직원들과 확인하니 

용의자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용의자에게 전화해서 파출소로 좀 와 보라 했더니 또 순순히 오길래 담담하게 사건을 설명했더니 처음엔 잡아떼다가 임의동행해서 나중에 강력반에 인계했을 때서야 비로소 자기가 우발적으로 훔친 거라고 실토하며 정말 미안하다고까지 했다

나한테 미안할 건 없는데... ^^
뭔가 처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 주도로 범인을 검거해 보니 뭔가 짜릿하고 재밌고

범행을 실토할 땐 기분이 좋고 뿌듯했다!
폰 주인이 폰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2013년 10월 2일

우리팀 이부장님 승진기념 케익

:)

훈훈한 교대시간   


2013년 10월 8일

아끼고 좋아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오는 건 가뭄에 봄비 오는 것처럼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특히나 그게 몸살걸려 약먹으며 정신줄 부여잡고 직원이 모자라 야간근무 억지로 출근한 날이면 더욱 그렇다

진심을 나누는 친구는 손에 꼽지만, 이 미친 세상을 헤쳐나가는 데엔 손에 꼽을 정도의 진실된 친구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 


2013년 10월 9일 (1)

진짜 야간에, 이 좋은 한글날에 기념으로 한국어로 된 욕이란 욕은 다 들은 것 같다 
그래서 들은 대로 다 수사보고에 써주고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모욕죄도 추가해주면서 난생 처음 그렇게나 많은 욕을 내 손가락으로 타자도 쳐 보았다
알고보니 그놈은 공무집행방해 전과 3범...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위대한 세종대왕님의 한글을 욕되게 한 죄 추가해서 영장받고 벌금이나 대박 나와라 이 나쁜놈아  


2013년 10월 9일 (2)

한글날 첫 한 시간 반 동안 육두문자만 계속 듣는다

수갑만 네 번 쓰는 오늘 야간은 활활 타오르는 불의 화(火)요일


2013년 10월 15일

오늘 야간근무 주제곡: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


2013년 10월 16일

문득 겨울이 온 느낌이다

추워진 수진동의 달밤   


2013년 10월 25일

폭행사건을 마무리짓고 한 시간 늦게 휴게를 위해 컨테이너박스 여경방에 들어와 난로 쪽으로 발을 뻗고 누워서 쉬는 것

얼었던 발 끝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 되게 좋다 힣  


2013년 10월 27일

어젯밤엔 사건이 흡사 전쟁터에서 총알 쏟아지는 것처럼 떨어지는 와중에 공무집행방해도 두 건이나 있었는데 팀원분이 공상을 입으셨다
질 나쁜 놈이 와서 행패부리는 게 복불복이긴 하지만.. 팀장직무대리하고 있던 내 책임인 것 같아서 온종일 미음이 안 좋고 울적하다..


2013년 11월 12일

"불안과 주저와 고뇌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살아 있는 한 그런 것들에서 헤어날 수 없고, 헤어나려 몸부림칠 필요도 없다.

살아 있으면서 절대적인 안녕을 얻으려 한다면, 살아 있되 삶을 내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마루야마 겐지-  


2013년 12월 3일

오랜만에 서점나들이

너무 오랜만에 갔는지 낑낑대며 한아름 안아다가 카운터에 쾅 내려놓으니 알바가 웃었다

책 사면서 카드할부 2개월은 처음 해보는데 알바가 더 웃었다..

내 카드값...도 카드값이지만

일단은 너무 행복하다♥흐흐   


2013년 12월 4일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은 계속 울기만 하고, 신고도 하고 현장에 갔을 때 날 불러서

이쪽이에요, 아빠가 욕을 하고 난리에요, 엄마가 맞진 않았지만 아빠가 술병을 던졌어요, 하고 또랑또랑하게 말하며 우는 엄마를 연신 다독거리는 똑똑하고 차분한,

여섯살이라기엔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아이.

쉼터에 데려가기 위해 파출소로 오는 길에도 엄마 그럼 나 내일 유치원은? 우리 햄스터 밥은 누가 주지? 하고 묻는데 

하마터면 내가 눈물이 날 뻔했다

한창 어리광 부리고 예쁨받을 나이에 이렇게 너무 일찍 세상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고 자라야 하는 아픔을 왜 이 착하고 똑똑한 아이가 받아야 하는 걸까

오늘도 세상의 아픔과 그에 대한 나의 무기력함에 마음에 멍이 드는 기분이다


2013년 12월 9일 (1)

전쟁같은 일요일 야간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은 욕보다 더 많은 욕을 먹고 사기 공집방 모욕 공용물손상 폭행을 처리하고 내면정화를 위해 먹는 팀장님표 라볶이 

욕 많이 먹어서 오래 살고 라볶이 많이 먹어서 쑥쑥 자랄 것 같다

우리 팀장님의 셰프손놀림~~   


2013년 12월 9일 (2)

퇴근 후 아침부터 카페에 출근해서 연구보고서 작업하는데 아직도 분이 가시질 않아 졸리지도 않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술마시고 파출소와서 행패부리는 사람 때문에는 화도 안 난다

공무집행방해에 모욕 더한 골치아픈 사건 자기한테 떨어졌다고 같은 직원이면서 파출소 직원이라고 화풀이하고 막말을 해대고 가뜩이나 술취한 사람한테 욕먹고 맞은 직원에게 계급에 따른 무기력함과 모욕감을 준 싸가지없는 형사과 직원을 우리 파출소로 발령내버리고 싶다 

앞으로는 사건 넘기러 갈 때 내가 직접 가기로 했다

계급이 높건 낮건 같은 회사 직원 존중 못하고 반말하고 지 성질대로 구는 놈들한테 따끔하게 한 마디씩 돌려줄거다  


2013년 12월 11일

추운 겨울밤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주객들은 보통 처음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자기 말만 하는 것이 평생 무시만 당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나타나는 방어기제이기 때문이다

잠깐만 서 있어도 엄청 추운데 그런 땅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데까지 1시간 넘게 쭈그리고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기는 죽어버려야 된다며 한탄하는 사람을 (그것도 연속으로 두 명이나!)

붙잡고서 죽지 말고 살아야 된다고 수십 번은 다독거려드렸다

아주머니는 좋은 사람이에요,

할아버지 아프시지 마세요,

덕분에 손발이 얼어서 난로 앞에서도 한참동안 녹지 않았지만..

결국 일어나서 내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할 땐 그래도 조금 뿌듯했다

일하면서 고맙단 말 들을 때가 참 좋다   


2013년 12월 16일

제대로 하는 일은 없으면서 폼나보이는 일만 하려 하는 겉멋 든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아니 소수를 빼고 남은 거의 대부분인 듯.
이런 사람에겐 뭔가를 물어보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모르겠단 말은 죽어도 안하고 일단 아무렇게나 대답하고,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정면돌파할 용기는 없으면서 

그런 문제에 달려드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일신의 안위와 출세를 위해 기존 제도를 어떻게 이용해먹을지 궁리하는 자신이 '현실적'이고, 기존 제도를 더 발전시키려는 사람을 보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거나 '현실감각이 없다'고 비웃는다
눈치 살살 봐가면서 잘하주면 슬슬 기어오르고, 함부로 못하겠다 싶으면 끽소리도 못한다

이런 사람은 보고만 있어도 짜증난다
얼마 전에 슬슬 간보는 것 같아 직설적으로 말했더니 그다음부터는 끽소리도 않는다
그래서 더 싫고 짜증난다 ㅡㅡ  


2013년 12월 29일

"무시당하면서
또 남을 무시하고
억압당하면서
또 남을 억압한다.
층층이 계급마다 틀어쥐고 억누르니
움직일 수 없을뿐더러
움직일 엄두도 내지 않는다."

-루쉰, 《무덤》<등불 아래서의 만필> 중-   


2013년 12월 30일

"노예가 주인이 되면
'나리'라는 호칭을 절대 없애지 않는다.
종종 그의 주인보다
더 거드름을 피우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가소롭다."

-루쉰,《이심집》<상하이 문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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